창세기
2015.12.19 17:59

(80강) 하나님의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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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32:1-6http://onlycross.net/videos/gen/gen-320106.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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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2.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3.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4.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5.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6.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설교>

 

야곱과 언약을 한 라반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야곱도 고향을 향해 길을 가는 도중 하나님의 사자들이 야곱을 만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군대’라 지칭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합니다.

 

 

당시 고향으로 돌아가던 야곱은 에서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했습니다. 야곱이 에서의 축복을 가로채고, 그 일로 인해 분노한 에서를 피해 라반에게로 도망한 것이기 때문에 비록 이십 년의 세월이 지났다 해도 에서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야곱에게 하나님이 사자들을 보내어 만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을 찾아와 만났다면 그것은 야곱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표입니다. 또한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들을 하나님의 군대로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난 후에는 에서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이 맞습니다. 하나님의 군대가 함께 한다는 것을 믿는다면 에서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야곱에게는 여전히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3절에 보면 야곱이 먼저 에서에게 사자들을 보냅니다. 그런데 사자들이 돌아와서 에서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온다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은 야곱의 반응을 7절에서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라고 말합니다. 아마 에서가 자신을 치기 위해 사백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오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야곱을 보면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난 것이 야곱을 달라지게 하는데 아무 유익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기독교인이 많이 듣고 하는 말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함께 하시고 도우시고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인의 믿음으로 자리한다면 어떤 일에서도 불안과 염려와 두려움이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작은 일에도 흔들리고 불안해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기 방법을 찾는 일에 몰두하게 되는 것입니다.

 

 

9-12절을 보면 야곱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돌아가라고 하셨고 은혜를 베풀리라고 하셨으니 자신을 에서의 손에서 건져 달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겠다고 하셨으니 그 말씀대로 자신의 처자들을 지켜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14-15절을 보면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고 말합니다.

 

 

야곱이 기도한 후에 자기 소유 중에서 에서에게 보낼 예물을 골라 낸 것입니다. 야곱은 예물로 에서를 달랠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베풀어 에서의 손에서 건져 달라고 기도했으면서도 자신을 지킬 자기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야곱이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것이나 하나님께 기도한 것들이 야곱이 처한 상황에서 믿음의 모습으로 전혀 나타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야곱을 통해서 드러나는 우리의 신앙과 현실입니다.

 

 

지금의 기독교인들이 보여주는 신앙의 열심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열심이 신자를 염려와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도 늘 스스로를 지키고 책임지려고 하고 하나님께는 자신의 생각과 방법대로 잘 되도록 도와달라고 합니다. 야곱도 하나님의 일하심에 기대하고 자신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에서에게 보내는 예물이 효과가 있기를 기대했을 뿐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야곱이 라반과 헤어지고 나서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나게 되었지만 사람이 달라진 것은 전혀 없습니다. 여러분이 야곱처럼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는 체험을 했다면 믿음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으니 어떤 일에서도 불안해하고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지금 불안과 두려움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입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어떤 체험을 해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야곱은 고향을 떠나 하란으로 가는 길에 하늘이 열리고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아있고 천사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신비한 광경을 체험했습니다. 신비한 체험이 사람을 달라지게 할 수 있다면 그때부터 야곱은 달라졌어야 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하나님을 자기 멋대로 생각했고 라반의 집에서도 자신의 탐욕대로 살았을 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야곱에게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어 만나게 하시고 그들을 여호와의 군대로 알아보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뒤에 나오는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출 12:40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나오는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군대’로 지칭합니다. 이것을 보면 야곱에게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어 만나게 하시고 그들을 여호와의 군대로 알아보게 하신 것은 장차 야곱 자손인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군대가 되게 하시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여호와의 군대가 도무지 여호와의 군대답지가 않습니다. 여호와의 군대다운 모습으로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강한 힘입니다. 가령 오늘날 신자를 여호와의 군대로 지칭한다면 두려움이 없고 열심으로 무장된 신앙인으로 상상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은 강한 힘과는 거리가 멉니다.

 

 

사백삼십 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이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여호와의 군대’로 지칭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군대 되게 하는 것이 세상의 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월절의 어린양의 피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장자 재앙에서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 살아난 사람들입니다. 결국 어린양의 피가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군대로 일컬음 받게 한 것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군대인 이스라엘의 싸움의 무기는 어린양의 피입니다. 자신들의 힘이나 열심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를 믿는 것이 이스라엘의 군대다움을 증거하는 요건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유월절을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군대는 어린양의 희생의 피로 살아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들이 세상에 나타내야 하는 것은 어린양의 피가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내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로움이나 열심 있는 신앙이 죽음에서 건지는 힘이 아니라 어린양의 희생의 피가 생명의 능력이 됨을 증거하는 것이 여호와의 군대이기 때문에 군대로서 중요한 것은 죽음에 갇힌 인간의 본질을 아는 것이고, 죽음에서 우리를 건지지기 위해 어린양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인간이 변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변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변화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기적의 체험을 한다 해도 불안과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자신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위기 상황에 부딪히면 어김없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게 됩니다. 어떤 체험이 이같은 불안과 두려움을 사라지게 할 수 있을까요?

 

 

신자는 이러한 자신의 나약함에서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를 깊이 확인하게 될 뿐입니다. 은혜를 확인하고 은혜의 세계에 깊이 빠져 들수록 은혜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자신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게 되고 십자가만 자랑하고 십자가만 알고자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군대다움입니다.

 

 

신자가 여호와의 군대답게 되기 위해 해야 할 것은 없습니다. 강한 믿음을 가지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 두지 않는다는 증거입니다. 듣기에 좋은 말로 청중을 선동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에 마음을 두십시오. 그것이 여호와의 군대다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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