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6.01.16 15:47

(83강) 이스라엘의 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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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34:1-7http://onlycross.net/videos/gen/gen-340107.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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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1.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2.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3.그 마음이 깊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연연하며 그 소녀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말로 위로하고

4.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청하여 이르되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 주소서 하였더라

5.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럽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의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6.세겜의 아버지 하몰은 야곱에게 말하러 왔으며

7.야곱의 아들들은 들에서 이를 듣고 돌아와서 그들 모두가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하지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더라

 

 

<설교>

 

33장에서 에서와 야곱이 화해를 하고 에서가 야곱에게 자신과 함께 떠나자고 합니다. 하지만 야곱은 자식들이 연약하고 양 떼와 소가 새끼를 데리고 있다는 이유로 에서 먼저 가게하고 자신은 숙곳으로 갑니다. 그리고 다시 세겜으로 가서 장막을 치고 장막 친 밭을 하몰의 아들들에게서 백 크시타에 사서 자신의 터전을 마련합니다. 그리고 34장에서는 세겜 땅에서 일어난 한 가지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세겜 땅에서 일어난 사건은 야곱의 딸 디나가 그 땅의 추장 세겜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 것입니다. 1절에 보면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다고 말하는데, 아마 세겜 땅의 여인들이 입고 있는 옷이나 장신구에 관심을 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성폭행을 당하게 된 것을 두고 그 원인을 디나에게 두기도 합니다. 디나가 세속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신자는 세속적인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적인 말을 하기도 합니다.

 

 

또는 디나의 일로 인해 분노한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의 남자들을 죽이고 노략하는 것으로 복수하는 것에 대해 말하면서 신자는 복수를 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연 디나의 사건이 그런 교훈적인 의미를 주기위해서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을까요?

 

 

세겜은 디나를 욕보인 후에 디나에게 연연하여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디나를 위로하고 아버지 하몰에게 디나를 자기 아내로 얻게 해달라는 청을 합니다. 하몰은 아들의 청에 따라 야곱을 찾아와 디나의 일을 말하는데 들에서 돌아온 야곱의 아들들이 그 말을 듣고 크게 분노합니다.

 

 

하지만 하몰은 어떻게든 디나를 세겜의 아내로 삼기 위해 야곱에게 “9너희가 우리와 통혼하여 너희 딸을 우리에게 주며 우리 딸을 너희가 데려가고 10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주하되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9,10절)는 제안을 합니다. 야곱으로서는 디나를 세겜의 아내로 주면 세겜 땅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야곱은 세겜 땅에 장막을 치고 장막 친 밭을 백 크시타에 샀습니다. 이것은 야곱이 세겜 땅에서 오래 머물 계획을 갖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잠시 있다가 떠날 것이라면 굳이 밭을 살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몰의 제안은 야곱에게는 유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야곱의 아들들이 그리하지 못하겠다고 거부합니다, 이유는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자신들의 누이를 주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의 입장에서는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할례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증표인데, 할례를 하지 않은 사람과 통혼하는 것은 그들에게 수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야곱이 세겜에 거주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입니다. 창 31:13절에 보면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야곱이 라헬과 레아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말하는 내용입니다.

 

 

야곱이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가는 도중에 벨에서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 야곱이 누워 있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벧엘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벧엘에서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세겜이 아니라 벧엘로 갔어야 합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숙곳으로 가서 지내다가 다시 세겜으로 가서 장막을 치고 땅도 사서 지내는 것입니다.

 

 

35장에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벧엘로 가라고 하신 것을 보면 야곱이 세겜으로 온 것은 분명 잘못된 일입니다. 야곱이 잘못 가는 길을 하나님이 의도한 길로 돌려놓기 위해 벧엘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야곱이 세겜 땅에 정착하고자 한 이유를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세겜이 살기 좋은 땅으로 보였기 때문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하몰의 눈에 야곱은 단지 자신들의 땅에 들어와 터전을 마련하고 살려고 하는 족속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야곱이 어떤 신을 섬기든 상관없이 자신들과 다를 바 없이 좋은 땅에서 풍요롭게 살고자 하는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몰이 세겜에서 정착하는데 유리한 제안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한 집안 사람이 되면 너희는 우리의 힘을 누리며 살 수 있다’는 뜻도 담겨 있을 것입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땅 위에 세워져 있는 사닥다리 꿈을 꾸었습니다. 사닥다리에서는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합니다. 하늘의 존재인 하나님의 사자들이 땅과 하늘을 사닥다리를 통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그 땅이 사닥다리로 인해 하늘과 연결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사닥다리가 하늘로 연결된 통로이며 야곱은 그곳을 하늘의 문으로 지칭하였습니다.

 

 

세상 모든 곳이 저주 받은 땅입니다. 문화와 문명의 발달 여부와 상관없이 모든 땅이 하늘과 단절된 저주 아래 있습니다. 야곱이 이것을 생각한다면 벧엘에서 꾸었던 사닥다리가 세워진 그 곳을 하늘과 연결된 축복의 땅임을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세겜이 아무리 살기 좋은 땅으로 보인다 해도 벧엘로 갔어야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하늘과 연결된 땅보다는 살기 좋은 땅을 택하여 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잊지 말아야 할 내용입니다. 세상이 저주 아래 있다는 사실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주의 땅인 세상에 예수님이 오셔서 하늘과 연결된 통로가 되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늘의 문이 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돌아갈 곳은 항상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살기 좋은 세상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든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만이 생명이 됨을 잊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과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벧엘에서 야곱에게 확인시켜 주신 축복은 사닥다리입니다. 야곱이 축복을 위해 장자 명분을 사고 이삭을 속여 축복을 받기도 했지만 사닥다리가 아니면 결국 저주의 땅에서 저주 받은 자로 끝나야 할 인생일 뿐입니다. 그런 야곱에게 축복은 곧 하늘과 연결된 사닥다리임을 보여주시면서, 진정한 축복이 무엇인지 아는 야곱으로 세워가고자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축복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축복이 되심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세상과 다르게 사는 것은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께 마음을 두는 것이고, 예수 안에 있는 것을 가장 복된 삶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신자에게 수치가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게 된 복 됨을 잊고 세상과 동일하게 땅의 것을 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4절에 보면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는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치가 됨이니라”고 말합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과 통혼하는 것을 자신들의 수치로 말하지만, 사실 그들이 세겜으로 온 것부터가 수치였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이 법을 핑계로 세겜의 남자로 하여금 할례를 하게 하고, 할례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틈을 타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의 남자들을 모두 죽이고 야곱의 다른 아들들은 성으로 가서 노략하는 이 모든 일들이 그들 스스로 세상과 다르지 않은 인간임을 보여주는 수치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27절에 보면 “야곱의 여러 아들이 그 시체 있는 성읍으로 가서 노략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그들의 누이를 더럽힌 까닭이라”고 말하지만 이미 자신들이 스스로를 더럽혔다는 사실은 생각지를 않습니다. 벧엘로 가야 할 자신들이 세겜에 와 있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수치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수치는 많은 것을 누리는 자를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축복의 자리에 앉히셨는데 그 복을 복으로 누리지 못하고 마음을 세상에 두고 세상의 것으로 살고자 하는 것이 신자 된 우리의 수치입니다. 수치를 수치로 바라볼 수 있는 그것이 자신을 바르게 보는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의 당당함을 찾아가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세겜으로 간 야곱을 벧엘로 가게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세상으로 마음이 향하는 우리를 붙들어 그리스도께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복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시고 그 복으로 감사하고 기뻐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이 기쁨을 얻고자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행하심이고 은혜입니다.

 

 

우리에게 축복은 그리스도라는 것을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하늘의 통로가 되시고 길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관계 밖에 있는 모든 자는 이미 생명과는 단절된 것입니다. 세상을 성공과 물질의 기준으로 보지 마시고 하늘과의 관계에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과 단절된 관계에 있는 것이야 말로 저주임을 잊지 않는다면 여러분께 가장 복된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과 다른 길로 끌어가십니다. 성공과 돈을 복으로 여기는 세상에서 믿지 않는 자보다 크게 성공하고 많은 돈을 벌게 하시는 것으로 세상과 다름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은 우상일 뿐입니다. 신자의 구별은 모든 사람이 세상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고 자기 자리를 굳히려고 할 때 그리스도가 길이 되심을 믿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야곱이 세겜에 있는 것이 수치입니다. 야곱이 드러내는 것은 언제나 죄의 모습 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야곱을 하나님은 끝까지 붙들어 가시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는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음 놓고 죄 짓자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무능과 악함이 드러나는 그 순간이 절망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보게 되는 기회가 된다는 사실이 기쁨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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