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6.02.13 18:32

(87강) 에서의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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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36:1-8http://onlycross.net/videos/gen/gen-360108.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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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2.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인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고

3.또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을 맞이하였더니

4.아다는 엘리바스를 에서에게 낳았고 바스맛은 르우엘을 낳았고

5.오홀리바마는 여우스와 얄람과 고라를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들들이요 가나안 땅에서 그에게 태어난 자들이더라

6.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7.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8.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

 

 

<설교>

 

에서의 족보를 보면 족장과 왕으로 가득한 그의 자손이 어떻게 얼마나 번성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족보만 보면 에서는 복을 받은 가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에서의 족보를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에서는 하나님이 미워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밖에 있고 사랑 밖에 있는 에서이기에 그가 복을 받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원칙에서 어긋날 수밖에 없습니다.

 

 

1절을 보면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에돔 족속의 조상은 에서더라”는 말로 끝납니다. 에서로 시작해서 에서로 끝나는 족보는 비록 족장과 왕으로 가득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 밖에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에서 가문의 번성을 하나님의 복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에서로 시작하여 에서로 끝나는 것은 에서의 족보는 에서라는 존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에서의 운명으로 끝날 족보임을 보여줍니다. 에서의 운명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 미움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에서의 번성이 무의미하고 헛된 것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복은 무엇일까요? 저주가 에서의 가문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면 복은 에서의 족보에서 벗어난 것이 됩니다. 에서의 족보에서 벗어난 것은 하나님의 저주라는 운명에서 벗어난 것이고 그것은 구원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에서의 족보는 에서의 번성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참된 복은 번성에 있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번성은 야곱도 추구했던 것입니다. 야곱도 하나님의 복을 자신의 번성으로 여겼습니다. 이것이 자신에게 갇혀서 자기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해하고 욕망하는 복입니다. 하지만 야곱은 하나님의 간섭과 함께 복이 무엇인가를 알아갑니다. 자신의 번성과 성공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이 아니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도우시는 것도 아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누가 과연 복 있는 사람일까요? 신자는 그 답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아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답이 삶의 의미가 되고 이유가 되고 방향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을 아는 신자는 자신의 번성과 성공을 추구하지 않게 됩니다. 자신이 알게 된 답이 진리임을 알기에 진리를 믿고 진리를 따라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외적 조건으로는 에서가 복을 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하나님의 복에 거하는 사람은 야곱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약속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에서와 야곱 중 누구의 길로 가기를 원하십니까? 당연히 야곱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미움 받는 길은 저주이고 사랑 받는 길이 곧 생명임을 아는데 에서의 번성에만 마음을 두고 에서의 길을 원한다면 그는 세상만을 바라보는 자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에서의 번성으로부터 자유하지 못합니다. 우리 안에 자리한 욕망은 언제나 자신의 본성과 성공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욕망을 편들기 위해 말하는 것이 영육 구원입니다. 영혼이 구원 받고 육신이 잘되는, 쉽게 말해서 에서와 야곱 모두의 길로 가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에 반기를 들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택으로 사랑할 자와 미워할 자를 나누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은 인간하기 나름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정성과 열심을 동원하여 복과 구원을 얻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자기에게 갇힌 사람들이 자신의 구원을 위해 만들어 내는 인간의 논리이고 종교일 뿐입니다.

 

 

야곱과 비교해서 에서에게 없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간섭입니다. 야곱에게는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고 약속하시며 하늘의 비밀을 보여주시고 인도하셨습니다. 그 같은 하나님의 간섭으로 인해 야곱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아가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에서에게는 그 같은 간섭이 없습니다. 이것을 롬 1:28절에서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라고 말합니다. 내버려두셨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기에 하나님이 없는 부패한 마음 그대로 살아가도록 버려두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미워한 자들을 향한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에서의 가문처럼 비록 지금은 번성을 이루었다 해도 에서의 가문은 하나님의 내버려두심으로 인해 항상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에서에게 ‘하나님이 널 미워하기로 하셨고 내 버려두셨다’라고 말하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왜 나만 버려두십니까?’라고 항의할까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너를 내 버려두셨다’라고 말하면 과연 뭐라고 반응할까요?

 

 

세상은 하나님의 버려두심에 대해 아쉬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잘 살고 있고 잘 살 수 있다고 자신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신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미움이 현실에 큰 고통이나 재난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자기 이름과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길에 있는 것이 곧 저주라는 것을 에서의 족보가 보여줍니다. 번성이 복이 아니며 자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에서의 번성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자손들이 수백 수천으로 늘었다 해도 결국에는 에서 안에서 저주로 끝날 운명들일 뿐입니다. 아무 희망이 없는 가문입니다. 오직 약속의 자손이 주어진 가문에게만 희망이 있기 때문에 이삭을 낳은 아브라함 가문에게만 희망이 있을 뿐입니다. 그 희망이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로 오셨기 때문에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확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희망으로 자리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선택해서 그 인생이 잘 된 것은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시각에서는 잘 된 것이지만 세상 기준에서 보면 잘 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죽하면 야곱이 바로 왕 앞에서 자신의 인생을 험악하다고 표현했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이 선택한 자기 백성을 끌어가시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바울을 비롯한 사도들의 인생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함께 모든 인생이 하나님께 저당 잡혔고 순전히 하나님의 뜻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하나님의 선택에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이 자기 인생의 편함과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에서의 족보는 타인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에서의 족보임을 생각한다면 에서의 족보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존재를 위해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이 에서의 족보에 담겨서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31절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던 왕들은 이러하니라”고 말하고 이어서 왕이 된 자손들이 언급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서의 가문에서는 왕이 등장합니다. 왕은 한 나라의 주인으로 여김 받습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아니라 사람의 다스림으로 유지되는 나라입니다.

 

 

백성들은 사람의 다스림을 원합니다. 나라를 잘 다스릴 사람이 왕이 되어서 자신들을 부요하고 평안하게 살게 해줄 왕을 원합니다. 이스라엘이 왕을 구한 것도 그런 이유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에서 가문의 속성이고 이 속성이 우리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결론은 내 인생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잘되고 인생이 형통해지는 것에 삶의 이유와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노아 때의 사람처럼 사는 것입니다. 자신이 중요하고 자신을 사랑함으로 하나님도 마음에서 멀어진 상태로 교회를 찾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니라 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에서의 족보에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이루고 싶어 하는 족보가 에서의 족보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악함이라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하나님이 붙드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자신이 비록 타인에 비해 초라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실망할 이유가 없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붙들려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자신이 십자가를 알게 되고 그리스도를 소망하게 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사랑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끝이 어떻게 다른가를 생각하십시오. 에서로 시작해서 에서로 끝나는 에서의 가문은 그 끝이 미움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반면에 야곱 가문의 끝은 구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의 성취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 안에 있는 신자의 끝은 영광이고 생명인 것입니다.

 

 

여기에 마음을 둔다면 세상에 대해 아쉬울 것은 없습니다. 불안해 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매일매일 만나를 허락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세상 일이 힘들어도 인내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이 끝이 아님을 알고 영원한 나라가 약속되어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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