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5.05.16 20:09

(51강) 롯의 두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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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19:30-38http://onlycross.net/videos/gen/gen-193038.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30.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

31.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32.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3.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4.이튿날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 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 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5.그 밤에도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6.롯의 두 딸이 아버지로 말미암아 임신하고

37.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의 조상이요

38.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자손의 조상이었더라

 

 

<설교>

 

본문은 롯과 그의 두 딸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서 구원 받은 후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죽은 사람의 수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 같은 엄중한 심판에서 오직 롯과 두 딸만 구원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입은 결과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구원 후의 이야기는 평생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믿음으로 잘 살았다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쉽게 가질 수 있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본문의 내용은 이방 세계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낯 뜨거운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러한 내용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소돔에서 구원받은 롯과 두 딸은 소알 성으로 갔다가 다시 롯이 소알에서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산으로 올라가 굴에 거주하게 됩니다. 이미 천사는 롯에게 소돔의 심판을 말하면서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들은 롯은 산에까지 가다가 재앙을 만나 죽을까 두렵다고 하면서 가까운 소알 성으로 가게 해 달라고 요청했었습니다. 천사가 제시한 길을 거부하고 자신이 보기에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천사는 롯의 요구를 들어주었고 롯과 두 딸은 소알로 도망한 것입니다.

 

 

그처럼 롯의 생각을 따라 스스로 원해서 가게 된 소알이라면 그곳에서 만족하며 잘 살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또 다시 두려움이 생긴 것인지가 의문입니다. 본문에서는 두려움의 이유를 말하지 않지만 롯의 두려움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모든 것이 우리를 행복하고 안전하게 해주는 옳은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롯은 두 딸을 데리고 결국 천사가 말한 산으로 도망하게 됩니다. 처음에 롯은 산으로 도망하는 길이 오히려 자신에게 위험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20절에서 “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라고 말한 것을 보면 산으로 도망하는 길이 너무 멀어서 도망하는 도중에 재앙을 만나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가까운 성 소알을 선택하여 그리고 도망하였지만 소알에 있는 것이 두려워 진 것입니다. 소돔에 유황과 불이 비같이 내려지면서 심판을 당하는 것을 보고 가까이 있는 소알도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이유든 롯의 선택과 두려움은 우리의 일상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롯의 두려움은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 의한 것입니다. 산으로 가기를 두려워한 것도 눈에 보이는 상황과 환경 때문이고 소알에서의 두려움도 눈에 보이는 상황과 환경 때문입니다, 그러면 롯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이 가게 하시고 인도하시고 허락하신 일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천사는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은 산으로 도망하는 롯을 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말씀하신 멸망을 면하는 길이 산으로 도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산으로 도망하는 길에서 어떤 재앙을 만난다고 해도 롯을 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을 믿었다면 롯은 소알이라는 자기 선택을 내어 놓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말씀드린 것처럼 롯이 자기 선택을 내어 놓았고 자신이 선택한 길로 갔지만 결국 두려움에서 해방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에 자신에게 해가 될 것으로 여겨졌던 산으로 가게 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선택보다는 하나님의 선택과 인도하심이 더 신뢰할만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롯의 선택을 허용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판단과 선택의 헛됨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두려움에 의해 소알을 떠나 결국 산으로 도망을 하게 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한 자신의 불의함에 눈을 뜨게 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이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든든함이라는 것을 배우게 하기 위함입니다. 물론 롯이 이러한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은 없지만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할 내용인 것은 분명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여러분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힘이라고 믿으십니까? 머리로는 하나님이라고 하시겠지만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힘이 되는 재물과 권력으로 흘러갑니다. 하지만 그 어떤 사람도 재물과 권력 안에서 안전함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재물과 권력에 둘러싸여 있다 해도 여전히 염려와 불안과 두려움에 묻혀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장 지혜로운 것은 하나님이 가장 안전한 피난처가 되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라는 것은 육신을 지켜주고 해를 당하지 않게 해주신다는 의미가 아님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롯이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할 때 큰 딸이 염려한 것은 가문을 이어갈 후손이 없다는 것입니다. 31절에 보면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라고 말하는데, 롯이 늙어서 아이를 잉태하게 할 수 없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늙어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젊은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다는 것은 여자가 남자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으면 여자의 후손이 아니라 남자의 후손이 되기에 결국 롯의 후손을 이어갈 수 없게 된다는 뜻인 듯합니다.

 

 

어쨌든 두 딸은 롯의 후손을 잇기 위해 인간적 방법을 행하게 되는데 롯에게 술을 마시게 하여 하루씩 차례로 롯과 동침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방법으로 롯의 큰 딸은 모압의 조상인 모압을 낳게 되고, 작은 딸은 암몬 자손의 조상인 벤암미를 낳게 됩니다.

 

 

이들의 행위는 도덕적으로 지탄 받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롯과 롯의 두 딸을 과연 구원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지가 의문입니다. 롯이나 롯의 두 딸 모두 도무지 구원 받은 자의 행위라고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본문은 롯과 두 딸의 구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구원 받았다고 하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두 딸이 롯과 동침하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후손에 대한 열망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후손에 대한 강한 욕망이 아버지와 동침하려는 잘못된 방법까지 생각하고 선택하게 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실제 모습입니다.

 

 

우리는 늘 강한 욕망에 이끌려 갑니다. 욕망에 의해서 내게 유리한 길을 선택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대해서는 이미 눈에 들어오지 않고 들리지도 않습니다. 내 욕망을 채울 수 있는 것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고 그것을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이 욕망을 해결한 길은 없습니다. 다만 욕망에 이끌려 가는 자신을 실감하면서 확실하게 붙들어야 할 하나를 보게 될 뿐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입니다. 자신의 죄를 보면서 용서의 은혜가 얼마나 강한지를 확인하고 그 은혜를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롯과 두 딸에게는 구원 받을 만한 자질이 없습니다. 소돔의 심판을 받은 사람들이나 소금기둥이 된 롯의 아내나 롯과 두 딸 모두 죄 가운데 있기는 동일합니다. 그런데 왜 롯과 그 두 딸은 구원을 받았을까요? 우린 그 답을 ‘하나님의 은혜’로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는 구원의 이유를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구원 될 수 없는 자가 구원에 속하게 된 것에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깊이 깨닫고 나 같은 자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자로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거 하는 것이 구원의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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