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5.06.06 19:46

(54강) 웃게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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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21:1-7http://onlycross.net/videos/gen/gen-210107.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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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2.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3.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4.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5.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 세라

6.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

 

<설교>

 

사라가 아들을 낳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신지 25년 만에 낳은 아들입니다. 그동안 아브라함에게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아브라함이 애굽과 그랄에서 사라를 누이라고 한 일은 하나님의 약속을 위태롭게 한 중대한 일로 볼 수 있습니다. 그 모든 위기의 일들이 하나님의 개입으로 해결되어 아들을 낳게 된 것입니다.

 

 

물론 사라가 아니라 다른 여인들을 통해서 아들을 낳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일하신다면 아들은 낳을지 언정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증거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아들을 주기 위해 일하신 것이 아닙니다.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나타내는 것이 이유이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 행할 수 없는 일들을 행하시는 것이고, 오히려 인간으로 인해 약속이 무너질 위기에 있을 때 하나님이 개입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약속의 성취에는 오직 하나님의 행하심만 있을 뿐 인간의 개입은 존재하지 않음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합니다. 이삭의 뜻은 ‘웃음’입니다. 아들 이름을 왜 ‘이삭’이라고 지었을까요? 사라는 아브라함을 찾아온 천사들이 내년 이맘때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한 말을 듣고 웃은 적이 있습니다. 천사의 말이 농담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6절에 보면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셨다는 것이 아들을 낳게 하셔서 너무 좋아 웃었다는 뜻일까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우리에게 좋은 일이 있게 하셔서 웃게 해주시는 하나님으로 이해해도 되느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이러한 웃음이 있는 삶을 원합니다. 하나님이 매일매일 자신으로 하여금 웃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한평생을 웃으며 살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그렇게 이끄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뜻일 뿐 하나님의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편안 삶에 뜻을 두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뜻을 두셨고 그 영광을 위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매일 좋은 일만 있는 가운데 웃으며 산다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을까요?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우리의 착각입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지 못하는 무지일 뿐입니다. 우리가 웃음이 있는 인생을 원하는 것은 삶을 즐기기 위해서입니다. 이것부터가 이미 자신을 인생의 중심에 두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이런 생각의 사람이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하나님이 세우신 뜻이 있습니다. 우리를 창세전에 택하시고 부르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되게 하신 이유를 에베소서 1장에서 분명히 증거합니다. 우리는 그 말씀을 속에 품고 그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그 뜻이 곧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찬송이 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신자는 그 뜻에 붙들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로 인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안다면 사라의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좋은 일로 말미암은 웃음이 있게 하신다 해서 그것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웃음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으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1절의 말씀에서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라는 이 말씀에서 강조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되어진 증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여기에 초점을 두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하시고 말씀대로 되어진 25년의 기간은 인간의 믿음 없음이 드러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인간이 말씀을 믿지 않고 자기 뜻을 세우고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자기 방법으로 살아가는 모든 것이 드러나는 기간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99세가 되고 사라가 89세일 때 찾아오셔서 내년 이맘 때 아들을 주시겠다는 황당한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누구라도 그 말을 들으면 웃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말씀대로 이루셔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하신 것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흘린 피로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으시고 용서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때가 되면 이루신다는 사실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 질 때 믿음은 위로와 기쁨과 힘으로 다가옵니다.

 

 

우리의 불안과 염려는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결과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개입하시어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말씀하신 대로 모든 일을 이루신다는 믿지 못하기에 불안해하고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웃음이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좋은 일이 없어서 웃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이루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에 웃음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라에게 그런 웃음이 있게 하시고 알게 하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리셨다가 아들을 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낳게 하신 하나님으로 인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됩니다.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있게 되고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에도 순종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기에 믿음은 우리가 복 받는 것과 무관합니다. 오히려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으며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증거하는 것이 신자의 본분인 것입니다.

 

 

현대 교회가 믿음에 대해 오해한 것은 믿음이 있으면 자기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세상의 종교에만 있을 뿐 성경에는 없습니다. 인간의 욕망에 의한 산물일 뿐입니다. 이것이 신앙이라는 옷을 입고 교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기에 신자라고 이름하면서도 믿음과는 다른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믿음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 말로 심각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삭의 출생은 사라에게만 웃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웃음을 주는 일입니다. 이것이 6절의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이삭의 출생을 듣는 모든 자에게 웃음이 있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며 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삭의 출생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표하기도 합니다. 즉 오늘 우리를 웃게 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오심의 소식인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것이 여러분을 웃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것들로 웃는 웃음은 지나가는 바람과 같은 것이기에 여러분의 마음에 자리할 수 없는 헛헛한 웃음에 불과합니다. 헌데 그 웃음이 있는 순간 느끼는 기쁨으로 자신이 행복하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오심은 말씀하신 대로 이루신 하나님을 알게 합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함께 하시고 우리의 모든 삶에 개입하시어 신실하신 뜻대로 인도하신다는 것이 복이며 은총입니다. 이 같은 사실이 우리를 웃게 합니다. 여러분께 이러한 웃음이 있다면 그것으로 기뻐하십시오. 그 웃음이 여러분을 절망의 상황에서도 기쁨으로 인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7절을 보면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라가 자식을 낳고 젖을 물리게 될 것이라는 말을 누가 아브라함에게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이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 사라도 아브라함도 그리고 누구도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가운데 하나님은 아들을 낳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게 하시고 그 전능하심으로 인해 웃게 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신자가 말씀하신 대로 이루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 외에 다른 믿음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 역시 약속을 이루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우리의 생명이 있기에 우리의 힘이나 실천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홀로 모든 일을 이루신다는 것을 신뢰함으로 불안과 염려가 없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설사 그 길이 죽음이 있고 고난이 있는 길이라 해도 이유 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심을 믿기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붙들려 살아가는 사람들에 불과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그리스도로 인해 웃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 붙들린 자로 살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고 이 기쁨으로 웃게 되는 것이 신자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어떤 웃음을 원하고 어떤 웃음으로 행복해지기를 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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