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5.06.13 17:38

(55강) 이삭과 이스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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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21:8-21http://onlycross.net/videos/gen/gen-210821.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8.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9.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10.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11.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12.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13.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14.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워 주고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하니 하갈이 나가서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더니

15.가죽부대의 물이 떨어진지라 그 자식을 관목덤불 아래에 두고

16.이르되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하고 화살 한 바탕 거리 떨어져 마주 앉아 바라보며 소리 내어 우니

17.하나님이 그 어린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시되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18.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

19.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밝히셨으므로 샘물을 보고 가서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다가 그 아이에게 마시게 하였더라

20.하나님이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21.그가 바란 광야에 거주할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에서 아내를 얻어 주었더라

 

<설교>

 

본문은 겉으로만 보면 한 집안의 가정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실부인의 자식과 첩의 자식이 함께 하는 관계에서 다툼이 발생할 수 있는 것도 충분히 예견되는 일이고 인간 사회에서 비일비재하게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 인간의 가정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일어난 일은 사소한 가정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해주는 계시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먼저 이삭과 이스마엘은 그 존재 의미부터 다릅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뜻에 의해 태어난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사람이 이루고자 하는 의도에 의해 태어난 아들입니다. 사라가 자신의 몸으로는 아들을 낳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하갈이라는 여종의 몸을 통해 아들을 낳고자 하는 인간의 계획과 방법의 결과물이 이스마엘입니다.

 

 

반면에 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이삭의 출생에 대한 말씀조차 신뢰하지 않았지만 말씀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에 의해 탄생한 아들입니다. 이것이 이스마엘과 이삭의 다름이며 이 둘을 언약적 의미로 해석하면 이스마엘은 옛 언약이고 이삭은 새 언약을 뜻합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본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8절에 보면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풉니다. 당시에는 아이를 모유로 키웠기에 젖을 떼는 기간이 지금보다 늦었다고 합니다. 대략 세 살이 될 때까지 젖을 먹였다고 하는데, 당시는 지금과는 달리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젖을 뗄 때까지 아이가 살아있는 것은 부모에게는 큰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잔치를 베푼 것도 그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잔칫날에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렸던 것이고 그 장면을 사라가 보게 된 것입니다. 이삭이 태어날 때 이스마엘의 나이가 14세였음을 감안하면 이삭이 젖을 떼는 날이 되었을 때는 17세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17세의 이스마엘이 3세의 어린 이삭을 놀리는 것을 본 사라로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을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이 세 살 밖에 되지 않은 이삭을 놀린 이유를 생각해 보면 장자권 문제가 큰 이유였을 것입니다. 이삭이 태어나기 전까지 아브라함의 상속자는 이스마엘이었습니다, 하갈이나 이스마엘도 사라가 아들을 낳을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자신이 상속자라고 믿고 있었는데 졸지에 이삭이 태어난 것입니다. 이삭으로 인해 이스마엘은 상속자의 위치가 흔들리게 된 것이고 그 때문에 보복의 차원에서 이삭을 놀린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사라가 보고 쫓아내고자 한 것입니다.

 

 

11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이스마엘도 그의 아들이기 때문에 이스마엘의 일에 대해 근심이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갈로 인한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창 16장에 보면 아이를 가진 하갈이 사라를 업신여깁니다. 사라가 그 사실을 아브라함에게 고하자 아브라함은 여종 하갈을 사라 마음대로 하라고 허락했고 사라는 하갈을 학대 합니다. 그리고 사라의 학대를 견디다 못한 하갈은 도망을 쳤고 빈들에서 다시 아브라함의 집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아와 이스마엘을 낳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이스마엘로 인해 갈등이 생긴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갈등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브라함입니까? 아니면 사라입니까? 아니면 하갈입니까? 아브라함이 가장 노릇을 잘 하지 못해서 발생한 갈등일까요? 아니면 하갈이 아들을 가졌다는 것을 빌미삼아 사라를 업신여긴 결과일까요? 아마 뚜렷하게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모두에게 잘못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누군가의 잘못을 드러내고 그를 책망하는데 목적을 두지 않습니다. 성경이 관심 두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어떻게 성취되는가를 증거하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창 12:2절의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는 약속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삭의 출생은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 되심을 보여주는 것이 됩니다.

 

 

이삭의 출생을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 되심으로 이해한다면 이스마엘의 출생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인간적 방법과 계산과 힘으로 약속을 이루고자 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고 따라서 이삭과 이스마엘의 관계에서 갈등은 필히 있을 수밖에 없는 결과인 것입니다. 결국 옛 언약과 새 언약 사이에 있는 갈등을 이삭과 이스마엘의 출생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갈 4:22-24)

 

 

바울이 말하는 것은 약속으로 말미암은 자가 영적인 사람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람이 되라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누가 영적인 사람인가를 선포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영적인 사람, 즉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의 선택이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은 반드시 영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어 있고 육체를 따라난 자의 길이 아니라 약속으로 말미암은 자의 길로 가게 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의 사건을 이러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근심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12,13절)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또 다시 여종의 아들도 네 씨라고 말씀하시면서 이스마엘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이삭에게서 자는 자도 아브라함의 씨,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씨로 말씀하는 것 같지만 이 두 씨는 전혀 다른 씨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에게서 났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씨가 맞습니다. 그러면 이삭도 아브라함에게서 났으니 이삭을 아브라함의 씨라고 하는 것이 맞는데 하나님은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이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이삭을 아브라함의 씨로 인정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삭은 아브라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은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아브라함의 씨로 인정될 자는 이삭에게서 나는 자, 즉 하나님의 약속으로 말미암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은 인간적 방법, 즉 인간의 행함에 의한 아들입니다.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아들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씨로 인정하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됨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에 의한 것이지 인간의 조건과 행함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함과 실천으로 신자 됨의 여부를 저울질 하고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 밖에 있는 세계의 일일 뿐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떡과 물 한 가죽부대를 가져다가 하갈의 어깨에 메어주고 이스마엘을 데리고 가게 합니다. 하갈이 이스마엘과 함께 브엘세바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물이 떨어지자 이스마엘을 관목 덤불 아래 두고 아이가 죽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며 소리 내어 웁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하갈을 불러 이르기를 “하갈아 무슨 일이냐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내용들 역시 우리의 생각에 어긋납니다. 이스마엘이 육신의 자식이라면 그가 죽든 말든 내버려두는 것이 옳을 것 같은데 하나님은 오히려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시고 이스마엘에게 함께 계시며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게 하십니다. 이스마엘을 지켜주시며 번성의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마엘의 번성은 참된 복이 아니라 말 그대로 세상에서의 번성일 뿐입니다. 아무리 번성을 한다 해도 이스마엘은 약속으로 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이스마엘의 번성이 필요한 것은 약속의 아들을 위해서입니다. 세상의 번성을 보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약속으로 인해 주어진 영광된 나라를 소망하는 그들을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의 약속 안에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미 약속이 성취된 세계에 들어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힘과 방법으로 뭔가를 성취해야 할 것을 요구받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약속으로 성취된 언약의 나라를 소망하고 세상의 번성에도 흔들리지 않고 그 나라만을 참된 나라로 바라보는 것으로 하나님의 아들 됨이 증거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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