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5.06.27 16:33

(57강) 여호와 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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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22:1-14http://onlycross.net/videos/gen/gen-220114.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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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7.이삭이 그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이르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8.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9.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13.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14.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설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서 이삭을 죽이려고 할 때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을 부르며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한 숫양이 뒤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숫양을 이삭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다는 본문의 내용은 아브라함의 일대기에 가장 유명하고 순종적 신앙의 절정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거의 아브라함의 순종과 아들을 바치는 헌신에 초점이 모아져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순종과 헌신을 본받아 목사에게 순종하고 교회에 헌신할 것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러한 말들은 본문 내용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억해야 할 것은 아브라함의 순종은 아브라함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에게서는 결코 나와질 수 없는 순종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점은 말씀에 순종한 아브라함이 아니라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순종하게 하신 하나님에게로 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21:33절에 보면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고 찬양했다는 뜻입니다. 여호와가 어떤 분인가를 알게 됨으로 인해서 그 이름을 높이고 찬송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여호와가 누구신가를 알게 된 것은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찾아와 머리를 숙인 일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고 하면서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네가 머무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자신과 자신의 땅을 후대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비멜렉이 머리를 숙이는 것은 아브라함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예상했던 것은 사라로 인해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라를 누이라고 하여 자신을 보호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그랄과 아비멜렉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상황은 오히려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으로 흘러갑니다. 이 일로 인해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을 실감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1절에 보면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부르셨다고 합니다. 그 일 후는 말씀드린 것처럼 21장에서 아비멜렉이 머리를 숙이고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에게 언약을 세운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찬송하게 된 후에 라고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합니다. 시험의 내용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무슨 이런 시험을 하시는 것일까요? 아브라함이 자기에게 소중한 아들도 아끼지 않고 바치는지 바치지 않는지 보시려고 시험하시는 것일까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은 하나님은 과연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칠 것을 모르셨느냐는 것입니다. 모르셨다면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 흠이 가게 됩니다. 아셨다면 굳이 시험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알고 계셨으면서도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본을 보이게 하여 믿는 자에게 아브라함처럼 순종할 것을 가르치기 위함일까요? 그런 것이라면 하나님의 의도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스스로 아브라함과 같은 순종을 보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시험하시는 것은 아브라함을 세워서 믿음이 무엇인가를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아브라함이라는 한 인간을 높이고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믿음이 무엇인가를 드러내기 위함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으로 인해 드러난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위대한 사람으로 세상에 세우기 위해서 아브라함에게 함께 하시고 일하시고 인도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을 택하여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만드시고 그 믿음을 세상에 보이심으로 참된 믿음이 무엇인가를 증거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시험을 통해 드러난 참된 믿음은 무엇일까요? 히 11:17-19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삭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을까요? 그 답은 약속에 있습니다.

 

 

21:12절에 보면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삭이 아닌 아브라함에게 나는 자가 아브라함의 씨라면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씨고, 다른 자식도 아브라함의 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삭에게서 나는 자만 아브라함의 씨로 인정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미 아브라함의 자손이 번성하게 하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번성케 되는 약속의 성취에 이삭은 빠질 수가 없습니다.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아브라함의 씨로 인정되기에 이삭에게서 아들이 있기 전까지 이삭은 죽을 수 없는 몸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약속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전능한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삭이 죽는다 해도 다시 살리셔서 약속을 이루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의 순종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성취하시고 말씀대로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임을 믿는 믿음이 이삭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고 말씀에 순종하게 한 것입니다.

 

 

12절에서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하신 것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몰랐다가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이삭도 아끼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임이 드러났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뒤에 있던 숫양으로 번제를 드리고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합니다. 여호와가 준비하셨다는 뜻입니다. 결국 이삭은 하나님이 준비한 제물로 인해 살아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어떻게 연결될까요? 하나님이 준비하신 그리스도가 제물이 되셔서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가 살았음을 말해줍니다. 즉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우리는 죽은 자가 아닙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그 약속이 성취된 자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져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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