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5.07.18 19:27

(60강) 이삭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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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2.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3.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4.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5.종이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6.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아니하도록 하라

7.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

8.만일 여자가 너를 따라 오려고 하지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9.그 종이 이에 그의 주인 아브라함의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이 일에 대하여 그에게 맹세하였더라

 

<설교>

 

24장은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 될 여인, 즉 며느리를 구하는 과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며느리를 구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기에 24장 전체가 그 일을 다루고 있는 것일까요? 물론 한 집안에 며느리를 구하는 일은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며느리를 구하는 것과 아브라함이 며느리를 구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면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며느리는 한 여자를 가족으로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기 마음에 드는 여자를 며느리로 맞이하고 싶어 합니다. 이런 점에서 아브라함이 며느리를 구하는 것은 그 시작부터가 다른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며느리를 구하기 위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을 파견합니다. 이 종은 15장에서 언급된 엘리에셀로 추정됩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이 자식이 없을 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상속자로 내세울 만큼 신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종에게 자신의 허벅지 밑에 손을 넣으라고 하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합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거주하고 있는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택하지 말고 아브라함의 고향 갈대아로 가서 이삭의 아내를 택하라고 지시합니다.

 

 

가나안은 이방 땅이기 때문에 이방 여인을 며느리로 맞이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고향 땅이라고 해서 가나안에 비해 특별히 다르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고향인 갈대아도 우상을 섬기는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보면 아브라함이 종을 갈대아로 보내어 이삭의 아내를 택하라고 하는 것은 단지 신앙 좋은 여인을 며느리로 맞이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5절을 보면 “종이 이르되 여자가 나를 따라 이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라고 말합니다. 종이 묻는 것은 이삭의 아내 된 여자를 택한 후에 그 여자가 자신을 따라 아브라함이 있는 땅으로 오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삭을 데리고 그 곳으로 돌아가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결혼이 성사되기 위해서는 종이 이삭의 아내 될 여인을 구한 후에 이삭이 그 땅으로 가서 여인을 만난 후에 서로 마음이 통하여 다음에 부모가 만나 양가의 결혼을 허락하는 것이 일반적 절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지금과 결혼 풍습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결혼 당사자들이 서로 만나든, 아니면 양가 부모의 허락이 있든 어떤 절차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여자가 아브라함이 있는 땅으로 오지 않으려 한다 해도 이삭을 데리고 그 땅으로 가지 말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 땅을 떠나 아브라함이 있는 곳으로 오지 않으려고 한다면 내 며느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어떤 여인이 종의 말만 듣고 얼굴 한번 보지 못한 남자와 결혼하기 위해 집과 고향을 떠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런 여인을 며느리로 구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이 자신처럼 고향 땅을 떠나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는 여인을 이삭의 아내로 간주하는 이유는 7절에서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고향 땅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7절)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고향 땅을 떠나게 하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여자가 갈대아를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면 ‘이 땅에 네 씨에게 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믿었던 것은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사자를 종보다 먼저 보내셔서 이삭의 아내 될 여자를 종과 만나게 하실 것이니 데려오라고 한 것입니다.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고 하신 약속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이고 따라서 이삭의 아내 될 여인이 하나님이 사자를 앞서 보내어 택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아브라함이 며느리를 구하는 일의 중심은 하나님의 약속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에 들고 아브라함에게 필요한 며느리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도구로 사용될 며느리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게 된 아브라함의 삶이 세상의 일반적인 원칙을 따르지 않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를 구하는 것까지 일반적인 원칙을 따르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본문이 우리도 아브라함과 같은 방식으로 며느리를 구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며느리를 구하든 뭘 하든 자기 유익과 자신의 뜻을 좇아 행하는 세상의 원칙으로부터 벗어난 모습으로는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으로 산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럴 때 내 뜻대로 되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주의 뜻으로 알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자가 아브라함이 있는 곳으로 오지 않을 때 이삭을 데리고 가지 말라는 것은 아브라함 자신이 나온 땅이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한 약속의 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신을 고향 땅에서 불러내신 것처럼 며느리 역시 불러내실 것을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땅에서 불러냄을 받아야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있는 곳에서 잘 살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생명의 땅으로 나를 인도하시기 위해 기존의 땅에서 불러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인도인 것을 믿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이런 여자를 며느리로 주십시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약속을 주시고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이 이삭의 아내를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라면 우리는 되어진 모든 일을 하나님이 하신 일로 받아들이며 순종하게 될 것입니다. 무슨 일에서든 나의 조건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만 믿게 되는 것입니다.

 

 

종이 갈대아로 가서 리브가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리브가의 집으로 가서 자신이 아브라함에게 보냄 받고 온 일과 리브가를 만나게 된 것에 대해 말합니다. 종의 말을 들은 라반과 브두엘은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고 하면서 리브가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령대로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고 합니다.

 

 

이처럼 리브가가 이삭의 아내 되는 일에 있어서 인간의 생각과 방법과 계산은 전혀 개입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내용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일하십니다. 이 믿음 안에서 불안은 없습니다. 불안과 염려는 자신의 뜻을 가지고 있음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뜻은 육체로, 세상으로 향해 있지만 하나님의 뜻은 생명으로 향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복된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신자는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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