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5.08.08 18:28

(63강) 아브라함의 서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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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25:1-11http://onlycross.net/videos/gen/gen-250111.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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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2.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고

3.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며

4.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이니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

5.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6.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7.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8.그의 나이가 높고 늙어서 기운이 다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9.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10.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

11.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 이삭은 브엘라해로이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설교>

 

사라가 죽은 후에 아브라함은 그두라라는 후처를 맞이하여 6명의 자녀를 낳습니다. 그리고 그 자녀들이 또 자녀를 낳고 그 자녀가 또 자녀를 낳았다는 내용이 본문입니다. 24:1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라고 말하는데 그 당시가 이삭이 리브가와 결혼하던 때임을 생각하면 아브라함의 나이를 140세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즉 140세 이후에 후처를 맞이하여 그 후처로 인해서도 많은 자손이 번성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무엇 때문에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한 것과 그 자손들의 번성을 말하는 것일까요? 성경은 한 개인의 가정사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후처와 그 자손들의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사라의 여종이었다가 아브라함과 동침하여 이스마엘을 낳은 하갈도 후처입니다. 그런데도 성경이 하갈과 아브라함의 서자라고 할 수 있는 이스마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스마엘과 이삭이 대립적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마엘은 인간적 방법과 행함의 산물로 지칭되고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담은 복음으로 지칭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삭과 이스마엘의 대립을 통해 복음과 율법이 서로 대립되는 관계에서 충돌 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이스마엘을 등장시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두라가 낳은 자손들은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왜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 되어야 하는지가 궁금하단 것입니다.

 

 

5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6절에서는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아브라함 생전에 자기 아들을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이삭과 이스마엘의 다툼을 경험한 바가 있습니다. 그 때문에 이삭이 서자들과 함께 있으면 또 다시 이스마엘과 같은 다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브라함은 이삭과 서자들을 서로 분리시켜 놓은 것입니다.

 

 

서자라 할지라도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런데 왜 굳이 이삭과 함께 할 수 없도록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일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시각에서 자기 아들들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속의 시각에서 보게 되면 비록 아브라함의 혈통이라 할지라도 구원과는 무관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삭에게서 난 자라야 아브라함의 씨라 부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육신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약속 안에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을 보면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이니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두라의 자손이라고 한 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의 서자들이 아무리 번성한다고 해도 그두라의 자손일 뿐 아브라함 자손으로는 인정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약속과도 상관없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번성에만 뜻을 둔다면 아브라함 자손으로 인정되지 않아도 번성하면 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현대인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습니다. 약속의 자손, 택한 백성, 그런 것보다 번성에 더 뜻을 두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약속의 자손은 현재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데 있어서는 쓸모없는 것이지만 번성은 현재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행복한 삶을 이루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번성의 때가 화살같이 지나가고, 헛되다는 것을 알지 못한 결과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당장은 약속이 쓸모없게 보이지만 약속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영광에 있게 되는 때가 가까이 있음을 잊은 어리석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것을 주었고 서자들에게는 재산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이삭은 아브라함의 전 재산을 받았고 서자들은 재산 중에 일부를 받았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모든 소유를 주었다면 전 재산을 받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만 생각하면 이삭과 서자들의 차이는 재산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생각할 것은 모든 소유를 주었다는 것이 전 재산을 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이삭이 ‘상속자’임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모든 것을 받을 유일한 상속자이고 서자들은 비록 아브라함에게서 재산을 받긴 했지만 상속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잔 아닌 자의 차이가 뭔가를 보여주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을 하나님이 심판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인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인간이 악하기 때문에 심판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왜 하나님은 인간을 악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드셨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에 어떤 인간도 스스로 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의해 세상에 나고 존재합니다. 산속 절에서 목탁을 두드리는 승려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있게 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에 의해 존재하는데 왜 그들은 사랑하지 않고 심판할까요? 하지만 하나님이 있게 하셨다고 해서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아브라함에 의해서 존재하고 아브라함의 아들인데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그두라의 자손으로 불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에 의해 존재하지만 본질은 그냥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을 책임지십니다. 아브라함이 서자들에게 재산을 준 것처럼 모든 피조물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도록 재물을 허락하시고 햇빛과 공기를 주십니다. 그렇지만 결정적인 것은 하나님이 택하여 부르신 약속의 자녀는 아니란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창조한 세상에서 나름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약속의 자녀와 다른 점은 상속자가 아니란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약속의 자녀는 이삭이 아브라함의 모든 것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의 모든 것을 받을 상속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창 15:4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나게 하신 이삭이 아브라함의 유일한 상속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유일한 상속자로 오신 분은 누구일까요? 당연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모든 것을 받을 상속자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상속받을 아버지의 모든 것은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땅의 것을 상속받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영원한 것을 상속받으실 분으로 오신 것입니다. 이상한 것은 어차피 하늘에 계신 예수님이 상속자이신데 왜 세상에 오셔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바로 하나님이 택한 약속의 자녀를 상속자의 반열에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상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수 안에서 하늘의 것을 상속받을 자로 만들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 있는 아버지의 것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늘의 것을 상속받을 상속자입니다. 때문에 재물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에 집착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의 보물은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받을 사람이라는 것에 마음을 두시면 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신자는 하늘의 것을 상속받을 그 날이 있음을 믿기 때문에 현재의 모든 삶에서 참고 인내하며 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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