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5.08.15 17:10

(64강) 에서와 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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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25:19-26http://onlycross.net/videos/gen/gen-251926.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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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1.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20.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21.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22.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3.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24.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25.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26.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리브가가 그들을 낳을 때에 이삭이 육십 세였더라

 


<설교>

 

본문 앞에 언급된 이스마엘 족보를 보면 열두 아들을 소개하면서 이들을 열 두 지도자들로 말합니다. 이것을 보면 이스마엘의 아들들로 인해서 열 두 부락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7:20절에서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라고 말씀한 것처럼 이스마엘의 자손은 크게 번성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은 137세에 죽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언급되는 것이 이삭의 족보입니다.

 

 

그리고 19절을 보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로 시작합니다. 이삭의 족보에 대해 말하는데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삭이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지만 리브가가 임신을 하지 못하여 자식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26절을 보면 리브가가 에서와 야곱을 낳았을 때 이삭의 나이가 육십 세였습니다. 사십 세에 리브가와 결혼한 후에 이십 년의 세월을 자식 없이 지낸 것입니다. 그동안에 이스마엘은 열 두 아들을 낳고 그 아들들이 부락을 세우고 지도자가 되는 번성을 이뤘음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음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분명 약속의 아들은 이삭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이 인간적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고자 했던 증거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상식대로라면 이삭의 번성하고 이스마엘이 아들을 날지 못하고 빈약한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늘 반대의 양상을 띠고 드러납니다.

 

 

21절에 보면 이삭이 리브가가 임신을 하지 못함으로 여호와께 간구하고, 여호와께서 이삭의 간구를 들으심으로 리브가가 임신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내용을 보게 되면 대개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삭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임신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삭이 기도하지 않았다면 리브가는 임신을 하지 못했을까요?

 

 

이스마엘에게 아들을 주시는 것은 단지 자손의 번성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삭에게 아들을 주시는 것은 약속의 성취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삭이 기도하지 않았다면 리브가의 임신도 없다’라고 말한다면 약속의 성취는 이삭의 기도에 달렸다는 결론이 됩니다. 그렇다면 리브가의 임신은 이삭의 기도에 의한 결과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초점을 ‘이삭이 기도했다’는 것에 두려고 하지만 그보다는 ‘기도하게 하신 하님’께 초점을 두는 것이 옳습니다. 따라서 20년 동안 리브가에게 임신을 허락하지 않으신 이유는 이삭으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답을 내릴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고향을 떠납니다. 그때 하나님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지 10년 후에 사라가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의 첩으로 주고 아브라함이 86세에 이스마엘을 낳습니다. 이것이 자식을 낳을 가능성이 없는 사라는 포기하고 가능성이 있는 하갈을 선택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브라함의 힘으로 이루고자 하는 인간적 방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을 기다리다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방법을 동원한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아브라함이 믿음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가나안 땅에서의 아브라함의 행적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하겠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겠다’고 한 것이나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에 의해서 롯과 그의 가족과 수많은 사람들이 붙들려 갔을 때 아브라함이 자신의 집에서 기른 군사 318명을 데리고 가서 싸워 롯을 포함해서 붙들려간 모든 사람을 구해온 일이나,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멜기세덱을 만나 전리품 십분의 일을 주면서 승리가 여호와로 말미암은 것임을 고백 하는 모든 행적들이 분명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음을 증거합니다. 그런데 왜 아들의 문제에서는 믿음으로 기다리지 못하고 하나님께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겠다는 말을 하고, 하갈을 이용해서 아들을 낳는 방법을 이용했을까요?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다고 해서 모든 삶에서 완벽한 믿음의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신뢰했다고는 하나 약속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눈이 열리지 않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이삭을 낳은 후에야 약속대로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어떤 하나님을 가르쳤을지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삭 자신이 약속대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증거물이기 때문에 리브가가 아이를 낳지 못해도 20년을 기다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20년을 기다리다가 하나님께 간구하고 리브가가 임신을 한 것입니다.

 

 

만약 이삭의 기도 없이 아들이 주어졌다면 기다리면 언젠가는 하나님이 그 뜻대로 이루신다는 의미만 강하게 부각될 것입니다. 믿는 자의 삶이 무엇인가보다는 ‘기다리면 되’라는 방식의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아님을 이삭을 통해 나타내기 위해 이삭으로 하여금 기도하게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20년 동안 아들을 기다리다가 기도했다면 그 기도는 단순히 아들을 달라는 차원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하십니다’라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기도할 수밖에 없게 하시고 기도를 통하여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며 하나님만이 하신다는 고백을 내용으로 하는 믿음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삭이 기도하고 리브가가 임신을 하였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이삭의 기도로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면 이삭의 가정이 하나님이 주신 두 아들과 함께 화목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것으로 이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두 아들이 리브가의 태속에서부터 서로 싸웁니다. 두 아들로 인해서 이삭과 리브가는 새로운 문제를 접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족보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번성하고 먹고 살다가 죽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것이 약속 밖의 인생입니다. 하지만 이삭은 계속 새로운 사건을 접하게 됩니다. 그 사건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시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무엇인가에 새롭게 눈을 뜨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성경을 안다는 것으로 되지 않습니다. 성경을 알고 복음을 안다면 그 앎이 삶 속에서 체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체험되어야 할까요? 자신을 움직이는 것은 머리에 담아둔 성경 지식이 아니라 악한 자기 본성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복음을 알고 성경을 아는 것으로 신앙생활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자에게서 나와지는 기도는 ‘하나님만이 하십니다’로 집약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사건으로 집어넣으신다 해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침묵하신다 해도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일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고 하나님으로 인해서 기뻐하고 감사하게 되는 것을 체험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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