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5.08.29 17:17

(65강) 장자의 명분

조회 수 308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창 25:27-34http://onlycross.net/videos/gen/gen-252734.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29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2)에돔이더라 붉음

31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3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

 

 

<설교>

 

하나님이 리브가에게 한꺼번에 아들 둘을 주십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우린 이런 경우를 두고 이삭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쌍둥이를 주셨으니 배의 축복을 받았다고 좋아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이삭의 인생이 기쁨과 행복만 있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두 아들이 리브가의 태중에서부터 싸웠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에게 바라는 것 중의 하나가 형제 우애입니다. 자식들끼리의 다툼과 시비는 부모에게 늘 근심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성경은 인간이 추구하는 가정의 행복과는 무관하게 하나님의 일만을 계시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채 자기 인생을 중심으로 하여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으로만 반응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리브가가 아이를 잉태한 것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 또한 이삭에게 아들이 없는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아들을 주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아예 이삭에게 자식이 없다는 것을 그의 문제로 취급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정작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로 여기시지 않으신다는 뜻이 됩니다. 오히려 우리가 문제로 여기는 사건들을 일으켜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심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리브가에게 아이를 잉태하게 한 것은 이삭과 리브가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을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취지를 가지고 하나님은 자기 일을 전개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로 인해 이삭과 리브가가 괴로움을 겪는다면 그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사실 이것이 우리의 갈등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한 가지만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괴로움을 겪는 일이라고 해서 모두 나쁜 일일까요? 물론 괴로움을 겪는 현실에서는 나쁜 일로 여겨지겠지만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는 나쁜 일이란 없습니다. 따라서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일에 우리가 참여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잠시의 괴로움에 대해서는 인내하게 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신자의 인생은 현재의 일로 판단할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과 함께 에서와 야곱이 태어났는데 에서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고 사냥꾼이 됩니다. 한마디로 남자답게 생겼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어서 장막에 거주했습니다. 외적 조건으로 보면 에서가 강하고 야곱은 약하게 보입니다. 또한 에서가 장남이기 때문에 큰 자고 야곱이 어린자입니다.

 

 

따라서 세상 질서를 따른다면 약자고 어린자인 야곱이 큰 자이며 강한 자인 에서를 섬기는 것이 옳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긴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큰 자가 되고 싶습니까 아니면 어린 자가 되고 싶습니까? 세상에서는 큰 자가 좋지만 하나님이 이루시는 나라에서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는 자입니다. 과연 어느 쪽에 마음을 두어야 할지 고민이 아닐 수 가 없습니다.

 

 

본문에 보면 에서가 사냥을 하고 돌아와 매우 피곤하고 배고픈 상태에서 야곱이 팥죽 끓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에서가 팥죽을 달라고 하자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자신에게 팔라고 합니다. 야곱은 아마 장자의 명분을 가로채기 위해 계획적으로 꾸민 일이었을 것입니다.

 

 

에서는 야곱의 말에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라며 팔아 버립니다. 이러한 에서를 향해 34절에서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다고 말합니다. 엄밀히 말하면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팔았다고 해서 야곱이 장자 되고 에서가 차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야곱은 무엇 때문에 장자권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판 것은 배고픈 상태에서 장자라는 명분이 배를 부르게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배고픈 에서에게 필요한 것은 배를 부르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배고픈 자신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장자라는 명분보다는 팥죽 한 그릇에 더 마음을 두게 된 것입니다.

 

 

에서의 생각은 현재의 시각에서 보면 실용주의적 사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나를 배부르게 하고,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되지 않으면 쓸모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교회가 이와 같은 실용주의적 사상 위에서 소위 복음을 말합니다. 믿으면 지금 복이 되고 유익이 되는 복음을 말하기 때문에 가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팥죽은 보이는데 장자권의 의미는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십자가, 죄, 이러한 내용들은 그 어떤 뛰어난 말재주로 전한다 해도 에서가 팥죽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호감을 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셨을 때도 사람들은 결국 모두 떠났지 않습니까? 복음은 절대로 사람들이 좋아하고 호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오히려 듣기 싫어 귀를 막으려 하고 복음 전하는 자를 배척하는 것이 당연한 반응입니다. 때문에 복음을 복음 그대로 드러내면 사람들이 떠날 것이 예상되기에 교회가 복음을 감추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복음을 알지 못한 것도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장자의 명분을 사고자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장자의 명분을 사면 자신이 장자가 되어 이삭의 모든 재산을 상속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을까요? 야곱도 장자의 명분을 샀다고 해서 아버지 이삭이 자신을 장자로 인정하고 재산을 상속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장자권은 상속권을 뜻합니다. 단지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상속받게 되는 것이 장자입니다. 야곱은 아마 장자권에 그 같은 축복의 의미가 있음을 생각한 것 같습니다. 반면에 에서는 장자였지만 장자권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몰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판다 해도 아버지 이삭의 재산을 상속 받는 일에 문제가 없는 이상 장자라는 명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장자권을 사고자 한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자기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자기 것으로 하고자 하는 탐욕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에서는 지금 자신의 배를 부르게 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고 좋은 것이라는 사고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두가 동일하게 자기중심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지금 당장 내 배를 부르게 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것을 상속받을 상속권이라는 것에 대해 많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그 상속권이 여러분의 배를 부르게 해주던가요? 괴로움에서 기쁨이 되게 하고 눈물이 나오는 현실에서 눈물 대신에 감사의 기쁨이 넘치게 하던가요?

 

 

에서는 전형적인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늘 내게 배부름을 줄 수 있는 것을 좇아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약속에도 무관심입니다. 신자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속에 그리스도가 있는 그가 하나님의 장자이고 상속자이며 큰 자라는 것입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는 것은 야곱이 인생 말년에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가서 애굽의 바로를 축복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장자로 드러납니다. 이것이 신자가 품고 있는 하나님의 축복이며 이 복의 영광됨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증거 될 것입니다. 그 때까지 신자는 보이는 것을 유익한 것으로 좇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좇으며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알게 된 것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08 창세기 (68강) 복에 대한 오해 신윤식 2015.09.19 2850
507 창세기 (67강) 르호봇 신윤식 2015.09.12 2770
506 창세기 (66강)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신윤식 2015.09.05 2798
» 창세기 (65강) 장자의 명분 신윤식 2015.08.29 3087
504 창세기 (64강) 에서와 야곱 신윤식 2015.08.15 2826
503 창세기 (63강) 아브라함의 서자들 신윤식 2015.08.08 2985
502 창세기 (62강) 위로 받은 이삭 신윤식 2015.08.01 2529
501 창세기 (61강)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신윤식 2015.07.25 2737
500 창세기 (60강) 이삭의 아내 신윤식 2015.07.18 3167
499 창세기 (59강) 막벨라 굴 신윤식 2015.07.11 2905
498 창세기 (58강) 하나님의 맹세 신윤식 2015.07.04 2642
497 창세기 (57강) 여호와 이레 신윤식 2015.06.27 2971
496 창세기 (56강) 브엘세바 신윤식 2015.06.20 2666
495 창세기 (55강) 이삭과 이스마엘 신윤식 2015.06.13 3100
494 창세기 (54강) 웃게 하시는 하나님 신윤식 2015.06.06 2914
493 창세기 (53강) 하나님과 아비멜렉 신윤식 2015.05.30 2889
492 창세기 (52강)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신윤식 2015.05.23 2953
491 창세기 (51강) 롯의 두 딸 신윤식 2015.05.16 3523
490 창세기 (50강) 소금기둥 신윤식 2015.05.09 3377
489 창세기 (49강) 롯의 구원 신윤식 2015.05.02 2815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 31 Next
/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