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5.09.12 19:43

(67강) 르호봇

조회 수 277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창 26:12-25http://onlycross.net/videos/gen/gen-261225.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동영상 녹화를 하지 못했습니다.

 

<본문>

 

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14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15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16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17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

18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19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를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20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1)에섹이라 하였으며 다툼

21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2)싯나라 하였으며 대적함

22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3)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장소가 넓음

23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24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25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설교>

 

오늘 본문은 이삭이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은 일과 하나님이 복을 주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하나님이 이삭에게 복을 주신 일은 뭔가 정상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복을 받았다면 복을 받을만한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인데 이삭에게서는 그것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이삭의 행위를 놓고 본다면 복이 아니라 책망을 받았어야 합니다.

 

 

이삭이 흉년으로 인해 그랄 땅으로 갔을 때 거기서 만난 그랄 사람들이 리브가로 말미암아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 리브가가 자신의 아내라고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누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삭이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의 앞날을 멋대로 상상하여 혹시 있을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믿음이 없는 모습이기 때문에 거짓말과 믿음 없는 것에 대해 책망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 생각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삭을 책망하기는커녕 오히려 복을 주어 거부가 되게 합니다. 이처럼 이삭에게는 복 받을 근거가 없음을 생각해 본다면 이삭이 복을 받은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본문의 내용을 가지고 ‘이삭처럼 하나님을 잘 믿어서복 받자’라고 말한다면 성경에 없는 말을 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먼저 이삭이 복을 받아 거부가 된 일을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거부가 되었다면 예상되는 삶은 무엇입니까? 재물을 가지고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거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거부만 된다면 부족함이 없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고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기 때문에 누구나 거부 되는 것을 희망합니다.

 

 

그런데 이삭을 보면 거부가 된 것으로 인해 시기를 받게 됩니다. 13-15절을 보면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고 말합니다. 거부가 됨으로 인해 그랄에서의 평화롭던 삶이 깨어진 것입니다.

 

 

이삭은 이방인입니다. 그런 이삭이 자신들보다 백배나 많은 소득을 얻고 자기들 땅에서 거부가 된 것은 기분 좋은 일이 될 수 없을뿐더러 시기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때에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워버립니다. 그리고 아비멜렉도 이삭을 불러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고 말합니다. 결국 이삭은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류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거부가 된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일들입니다.

 

 

이삭은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류하면서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을 다시 파게 됩니다. 이삭의 종들이 우물을 파서 물이 나옵니다. 그러자 또 다시 그랄 목자들이 와서 이 물은 우리 것이라고 다투게 됩니다. 이삭은 그 다툼으로 인해서 우물 이름을 에섹(다툼)이라고 합니다. 다시 다른 우물을 팠는데 그랄 목자들이 또 다투므로 그 이름을 싯나(대적함)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랄 목자들이 다투지 아니함으로 이름을 르호봇(장막이 넓다)이라고 하고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고 합니다.

 

 

이삭이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다고 말한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일단 이삭이 그랄의 살던 곳에서 떠나 골짜기로 오게 된 것은 하나님이 이삭을 거부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거부되게 하신 것이 살던 곳에서 쫓겨나게 하는 빌미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쫓겨난 것 때문에 우물을 파면서 뭔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뭔가 하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해 넓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삭이 리브가를 누이라고 한 것은 그랄 사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고, 그 두려움은 하나님이 그랄 땅에서도 이삭에게 함께 하심을 생각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경우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사라를 누이라고 속인 것 역시 아브라함이 있는 모든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결과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살던 곳에서 쫓겨나 골짜기에 거하게 되고 우물을 파면서 하나님이 어디에서든 자신에게 함께 하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삭이 거하던 땅은 척박하여 우물을 판다고 해도 쉽게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삭은 우물을 파면 물을 얻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이삭에게 함께 하신다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이삭이 어디에 거하든 그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게 되자 이삭은 모든 땅이 하나님이 하시는 땅이 됨을 알게 된 것이고 그 의미로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다”는 고백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삭으로 하여금 이삭이 있는 모든 곳에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심을 알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이삭을 단지 거부가 되게 하는 것에 뜻을 두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부가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알게 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삭에게 복은 거부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만약 이삭이 거부가 되지 않고 그랄 땅에서 계속 살았다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눈을 뜨지 못했을 것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삶의 환경을 두고 복의 여부를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 주어졌다 해도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일이 있고 그 일은 분명 우리로 하여금 더 큰 복의 세계에 대해 눈을 뜨게 하는 것임을 생각한다면 모든 환경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24절에 보면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고 말합니다.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함께 하시며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일하신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그 하나님이 이삭에게 함께 하시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삭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브라함을 위해서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삭에게 함께 하셔서 자손이 번성케 하심으로 아브라함이 약속에 참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한 자손은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자손의 번성을 말씀하시는 것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삭 또한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그 약속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삭의 복입니다. 이 모든 내막을 알게 된 이삭이 제단을 쌓고 여호와 이름을 부르며 장막을 친 것입니다.

 

 

이삭이 살던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로 왔을 때는 제단을 쌓지도 않았고 여호와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장막을 쳤습니다. 자신의 생존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마 살던 곳에서 쫓겨나 골짜기까지 오게 된 것 일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물과 다툼을 통해서 자신의 장막이 넓다는 것을 깨닫고 세 번째 우물을 판 후에는 르호봇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삭은 점차 하나님이 이끄시는 삶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눈을 뜨게 되고 자신에게 함께 하시며 언약을 이루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이삭에게 주어진 복의 의미입니다. 거부가 되게 하신 일에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삭이 거부가 된 것에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거부가 되게 하셔서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번성케 하십니다. 물론 이것은 재물과 상관없는 번성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넓어지고 그리스도로 부요하게 되는 번성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함께 하시고 높으신 그 뜻대로 인도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여러분에게 담대함으로 다가와지기 바랍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08 창세기 (68강) 복에 대한 오해 신윤식 2015.09.19 2850
» 창세기 (67강) 르호봇 신윤식 2015.09.12 2770
506 창세기 (66강)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신윤식 2015.09.05 2798
505 창세기 (65강) 장자의 명분 신윤식 2015.08.29 3087
504 창세기 (64강) 에서와 야곱 신윤식 2015.08.15 2826
503 창세기 (63강) 아브라함의 서자들 신윤식 2015.08.08 2985
502 창세기 (62강) 위로 받은 이삭 신윤식 2015.08.01 2529
501 창세기 (61강)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신윤식 2015.07.25 2737
500 창세기 (60강) 이삭의 아내 신윤식 2015.07.18 3167
499 창세기 (59강) 막벨라 굴 신윤식 2015.07.11 2905
498 창세기 (58강) 하나님의 맹세 신윤식 2015.07.04 2642
497 창세기 (57강) 여호와 이레 신윤식 2015.06.27 2971
496 창세기 (56강) 브엘세바 신윤식 2015.06.20 2666
495 창세기 (55강) 이삭과 이스마엘 신윤식 2015.06.13 3100
494 창세기 (54강) 웃게 하시는 하나님 신윤식 2015.06.06 2914
493 창세기 (53강) 하나님과 아비멜렉 신윤식 2015.05.30 2889
492 창세기 (52강)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신윤식 2015.05.23 2953
491 창세기 (51강) 롯의 두 딸 신윤식 2015.05.16 3523
490 창세기 (50강) 소금기둥 신윤식 2015.05.09 3377
489 창세기 (49강) 롯의 구원 신윤식 2015.05.02 2815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 31 Next
/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