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4.11.30 10:17

(29강) 야벳, 함, 셈의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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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10:6-20http://onlycross.net/videos/gen/gen-100620.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6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7 구스의 아들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아들은 스바와 드단이며

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첫 용사라

9 그가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10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11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12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

13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14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 (가슬루힘에게서 블레셋이 나왔더라)

15 가나안은 장자 시돈과 헷을 낳고

16 또 여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17 히위 족속과 알가 족속과 신 족속과

18 아르왓 족속과 스말 족속과 하맛 족속을 낳았더니 이 후로 가나안 자손의 족속이 흩어져 나아갔더라

19 가나안의 경계는 시돈에서부터 그랄을 지나 가사까지와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을 지나 라사까지였더라

20 이들은 함의 자손이라 각기 족속과 언어와 지방과 나라대로였더라

 

 

<설교>

 

한 족속의 계통과 혈통 관계를 밝혀 놓은 책을 족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족보는 단지 가문의 혈통만을 밝히는 것을 목적하지 않고 그 가문이 어떻게 얼마나 번성했는가를 보여주는 것까지 의미를 두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높은 벼슬을 했으면 그것까지 기록을 하게 됩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고 성공한 조상들이 많을수록 자신의 가문을 자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장에도 세 족보가 등장하는데 노아의 아들인 셈, 함, 야벳의 족보입니다. 세 아들의 족보를 보기 전에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9장에서 술에 취해 하체를 드러내고 잠들어 있는 노아의 수치를 두 형제에게 이야기한 함은 저주를 받았고, 노아의 수치를 보지 않고 뒷걸음쳐 들어가 옷으로 덮은 셈과 야벳은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족보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셈과 야벳은 축복을 받은 사람답게 유명한 가문으로 번성하고 함은 저주 받은 사람답게 상대적으로 쇠약하고 몰락한 가문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함에 대한 저주는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이 저주가 그대로 시행된다면 함의 후손은 저주 받은 후손답게 비참한 모습으로 드러나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시기를 구했으니 야벳의 가문이 번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족보를 통해 드러난 것은 전혀 다릅니다.

 

 

먼저 8절을 보면 첫 용사 니므롯이 등장하는데 그는 함의 후손입니다. 니므롯은 첫 용사로 등장하여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고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이 용감한 사냥꾼이로다”는 속담까지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원하는 영웅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니므롯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을 건설하였으니 이는 큰 성읍이라”(10-12절)고 할 정도로 번성했습니다.

 

 

니므롯 이후로도 함의 자손에게서 블레셋이 나왔고, 시돈과 헷과 여부스, 아보리, 기르가스 족속 등으로 가나안이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함의 번성은 지금도 세상이 원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세상 기준에서 보면 함이야 말로 저주가 아니라 축복 받은 가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야벳과 셈은 어떨까요? 저주 받은 함이 그 정도이니 축복을 받은 두 형제의 가문은 함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축복으로 가득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10장의 야벳과 셈의 족보를 보면 ‘이것이 과연 축복 받은 가문인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빈약합니다.

 

 

먼저 1-5절까지의 야벳 후손의 이름은 몇 사람만 언급하고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언어와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5절)고 말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마치 몰락한 한 가문을 대하는 것처럼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21절부터 언급하는 셈의 후손은 야벳에 비해서는 낫다 할 수 있지만 함에 비하면 연약합니다. 니므롯 같은 영웅이 등장하지도 않고 큰 성읍을 이루었다는 말도 없습니다. 이처럼 세 형제의 족보를 비교하면 축복과 저주가 뒤바뀐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축복과 저주를 왜 이렇게 펼쳐 가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세상이 생각하는 축복과 저주와 하나님이 베푸시는 축복과 저주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세상에서의 힘과 번성이 축복이 아니라는 것을 저주받은 함의 번성을 통해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함은 분명 저주받은 자이기에 함의 가문에서는 축복의 모습이 등장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함의 후손이 어떤 번성과 성공을 이루었다고 해도 그것을 축복으로 간주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앞에서 말한 것처럼 창대하리라는 축복을 받은 야벳 가문의 빈약함은 ‘창대’라는 축복의 의미가 세상에서의 번성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 됩니다.

 

 

물론 함의 가문에 용사가 등장하고 번성했다고 해서 그것을 저주의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야벳의 가문에서도 셈의 가문에서도 얼마든지 용사는 등장할 수 있고 번성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함의 가문에 용사 니므롯이 등장하게 하시는 것은 세상이 영웅으로 대접하는 니므롯을 통해서 저주가 무엇인가를 나타내고자 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용사는 힘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니므롯을 영웅으로 높이는 것은 세상이 곧 힘을 추구하고 높이는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뜻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힘없음은 저주로 간주되고 도태될 뿐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주시고 베푸신다고 해도 자신에게 힘이 되는 것이 아니면 외면할 것이 뻔합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은 함의 가문에 용사가 등장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힘을 추구하고 힘을 쫓는 세상의 속성에 함께 하는 것이야 말로 저주에 속한 것임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은 힘을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힘을 부러워하게 되면 자연히 힘없는 자신에게 실망하며 스스로를 초라한 존재로 여기게 됩니다.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죄에서 건지시며 생명을 얻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이야기에는 아예 관심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구속의 은혜와 사랑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혀 힘이 되지 않음을 늘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인생의 끝을 보지 않는 상태에서는 얼마든지 타당성이 있습니다. 맞는 말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끝이 있음을 생각하고, 그 끝은 용사의 힘과는 전혀 연관이 없음을 염두에 둔다면 세상의 힘이 축복일 수 없다는 결론을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대개의 교회가 말하고 있는 복과 저주의 의미는 성경과는 다르게 크게 왜곡되어 있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세상의 끝을 바라보며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는 다른 참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함의 가문이 번성했고 용사까지 등장했지만 그들은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단절된 존재들일 뿐입니다. 블레셋과 다른 모든 자손들이 장차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과 상관없는 이방인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자로 영원한 저주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 함의 가문에 주어진 저주입니다.

 

 

반면에 셈의 족보에는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아브람이 등장합니다. 따라서 셈의 족보는 자손이 얼마나 번성했는가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언약에 속한 가문이 됩니다. 그리고 야벳은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한다고 했으니 그것으로 자연히 하나님의 언약에 거하는 족속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야벳과 셈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친히 간섭하시고 다스리심으로 반드시 언약을 이루실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람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으로 이루시는 큰 민족은 혈통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함의 후손이 어떤 번성을 이루었다고 해도 하나님이 보실 때 그들은 심판의 대상이며 저주에 속한 자들일 뿐입니다. 용사가 등장했다 해도 저주에 속한 자일뿐이기 때문에 의미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축복은 무엇일까요? 두말할 것 없이 언약의 성취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께 속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는 창대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로 영원한 하늘의 생명을 누린 자가 되었으니 세상은 알 수 없는 창대함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 축복을 세상의 것을 기준하여 저울질한다는 것은 참으로 미련한 짓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옥 간 부자가 복된 자입니까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거지 나사로가 복된 자입니까? 늘 스스로에게 물으면서 신자가 세상에서 추구해야 할 길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사로가 비록 거지로 고통의 삶을 살았고 저주의 삶처럼 보였지만 그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사로의 복이 마지막 때 증거 된 것입니다.

 

 

세상은 여러분의 눈으로만 보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바라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알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 이것이 곧 우리의 창대함이고 세상이 알지 못한 복에 참여된 것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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