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5.01.04 09:44

(33강) 아브람의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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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12:10-20http://onlycross.net/videos/gen/gen-121020.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16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17 여호와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로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신지라

18 바로가 아브람을 불러서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19 네가 어찌 그를 누이라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이제 데려가라 하고

20 바로가 사람들에게 그의 일을 명하매 그들이 그와 함께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를 보내었더라

 

<설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언약의 내용은 새로운 땅, 큰 민족, 이름이 창대해지는 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브람에 대한 성경 내용을 전혀 모른다고 했을 때 언약 이후에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반드시 언약을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에 아브람이 하나님이 주신 땅으로 가서 그 땅을 얻게 되고, 후손이 번창하여 큰 민족을 이루고 아브람의 이름이 높임 받음으로 온 세상에 창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언약이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람에게는 언약의 어떤 내용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거주하게 되었지만 그 땅을 소유하게 된 것은 아니며 큰 민족은커녕 아들로 인정 되는 이삭만 자식으로 두었을 뿐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람의 인해 복을 얻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가 세상에 복을 끼치는 일을 한 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본문에서는 아브람이 거주하던 땅에 기근이 심하게 들어 애굽에 거류하려고 내려간 것에 대해 말합니다. 어느 땅이든 기근은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약속의 땅입니다. 그렇다면 그 땅은 기근과 상관이 없어야 하고 살기 좋은 땅으로 달라져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이 생각하는 하나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은 세상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베풀어집니다. 이런 내용을 통해서 한 가지 확실하게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일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늘 우리의 생각과는 어긋나는 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이기 때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를 당황하게 하시면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아가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십니다.

 

 

가나안 땅에 심한 기근이 들자 아브람은 생존을 위해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애굽으로 가는 것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애굽으로 가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아브람 스스로의 판단이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아브람은 가나안 땅이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이기 때문에 그 땅에만 가면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는지도 모릅니다.

 

 

만약 아브람이 언약을 믿었다면 그 땅에 기근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다렸어야 합니다. 하지만 심한 기근 앞에서 아브람에게 중요한 것은 생존이었고 그 해결책으로 애굽을 택한 것입니다. 언약을 믿는 것보다는 현실에 따라 자기 생존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고 방향입니다. 아브람이 생존을 위해 애굽을 선택한 것처럼 우리 역시 생존을 위해서라면 말씀보다는 지금 당장 득이 되는 길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형통과 성공이 아니라 심한 기근을 준비해 놓으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심한 기근으로 아브람의 믿음 없음을 드러내십니다. 즉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고향을 떠났다고 해도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잘 알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고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처럼 언약을 주시고 곧바로 언약을 이루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람의 믿음 없음을 드러내시는 것으로 하나님이 이루시고 세우실 언약의 나라의 특성을 알 수 있습니다. 언약의 나라의 특성은 인간의 의와 열심과 행함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열심과 의로우심만이 높임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언약의 나라에 속한 백성들은 자신에게는 의가 없음을 알게 되고 의로 오신 그리스도를 소망하게 됩니다. 이것을 아브람을 통해서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한국이 전쟁의 위험 속에 있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평화로운 나라를 찾아 아민을 가기도 합니다. 아마 전쟁 위험이 지금보다 더 크게 부각된다면 우리도 여건만 되면 이민을 가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해질 것입니다. 그것이 자기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연스런 반응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의 애굽행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처럼 아브람의 애굽행이 우리에게 당연하게 여겨진다는 것이 우리 또한 아브람과 같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믿음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믿음의 자리에 있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답은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밖에 없습니다.

 

 

애굽으로 가는 아브람은 애굽이 가까워지자 한 가지 걱정을 하게 됩니다. 사래가 아리따운 여인인지라 애굽 사람이 사래를 차지하기 위해 자신을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래에게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13절)고 말합니다. 사래를 애굽 사람에게 주게 된다고 해도 자신은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것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이 애굽땅에서도 함께 하신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현재와 미래 모든 상황을 자기 마음대로 추측하면서 일어날 수 있는 불상사에 대비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 역시 우리가 세상을 사는 방식과 동일합니다.

 

 

우리도 ‘지금 상황이 이러니까 이렇게 될 것이다’라며 우리 멋대로 상상하고 우리 방법으로 대비하면서 살아갑니다. 세상 중심에 자신을 두고 있는 것이고, 모든 일이 자신에게 유익 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를 기대하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대와 생각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을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 아브람의 생각대로 애굽 사람들이 사래의 아름다움에 반합니다. 바로의 고관들도 사래를 바로 앞에서 칭찬하자 바로는 사래를 궁으로 끌어 들이고 사래의 오빠로 알고 있는 아브람을 후대하여 양, 소, 노비, 암수 나귀, 낙타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람은 그 약속의 중심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래가없어도 자신만 존재한다면 다른 여자를 통해서도 약속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직 약속의 실상을 알지 못하는 아브람의 착각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혈통적 후손의 번창을 약속한 것이 아니라 약속의 자녀로 인한 큰 민족을 약속하셨습니다. 때문에 아무 여인에게서라도 자식을 낳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래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심으로 사래를 바로에게서 구출하십니다. 아브람으로 인해 언약이 무너질 수 있는 것을 하나님이 개입하여 바로 잡으시는 것입니다. 결국 아브람은 언약에 있어서 훼방자였을 뿐입니다. 따라서 언약을 이루신 분은 순전히 하나님이시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내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훼방자일 뿐 결코 도움자가 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람을 통해서 드러나는 인간의 실상입니다. 이것을 소홀히 하기 때문에 인간의 공로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아브람을 책망하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아브람을 책망하지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바로에게 재앙을 내림으로 바로가 사래를 데려가게 하고 아브람과 함께 보내는 것으로 자신이 두려워했던 애굽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을 깨달으며 자신의 믿음을 한탄했을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책망입니다.

 

 

인간이 무엇을 하건 상관없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인간을 다스리시고 고쳐 가시면서 하나님이 뜻하신 모든 일을 이루어 내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힘으로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이 고백을 하게 되는 것도 우리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신자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실감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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