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5.01.11 09:54

(34강) 아브람과 롯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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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13:1-13http://onlycross.net/videos/gen/gen-130113.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2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

3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5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7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

8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11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설교>

 

우리의 인생은 늘 선택의 연속입니다. 일상생활 자체가 선택과 선택으로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외식을 할 때도 어느 식당으로 갈지 선택을 해야 하고 몸이 아파 병원을 갈 때도 어느 병원으로 갈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만약 선택이 잘못되었다면 따라오는 것은 후회입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불리한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최대한 유리한 쪽으로 선택하고 자기 선택에 실패가 없게 하기 위해 사전에 정보를 수집하여 알아보기까지 합니다.

 

 

본문에도 땅을 두고 선택을 하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아브람과 롯인데 두 집안이 서로 분리하기로 하면서 각자 거할 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두 집안이 분리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은 가축 때문입니다. 아브람도 롯도 가축이 많았습니다. 가축이 많으면 가축을 먹일 풀이 넉넉한 땅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있었던 땅은 모든 가축을 먹일 만큼 초목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서 가축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는 일까지 발생합니다.

 

 

그래서 아브람이 롯에게 ‘우리가 한 친족이니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며 제안한 것이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9절)입니다.

 

 

아브람은 땅을 먼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롯에게 주었습니다. 자신은 롯의 선택을 따라 길을 달리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면 롯이 감동되어서 자신이 나쁜 쪽을 택하고 갈 것이라고 계산한 것일까요? 물론 그것은 아닙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브람은 어느 땅으로 가게 되든 개의치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아브람의 말에 롯은 눈을 들어 요단 지역을 바라봅니다. 롯의 눈에 요단 지역의 땅은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이 보였습니다.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땅이 비옥하게 보였고 그 땅에 들어가 살면 평화와 부요를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된 것입니다. 결국 롯은 요단 온 지역을 택하여 동으로 옮깁니다. 이렇게 해서 아브람과 롯은 헤어지게 되었고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게 됩니다.

 

 

아브람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아브람의 선택은 한편으로는 조카 롯을 위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아브람은 순전히 롯을 위해서 그러한 선택을 한 것일까요? 만약 아브람이 롯을 위하는 마음으로 땅의 선택권을 준 것이라면 처음부터 ‘요단 땅이 비옥하니 그리로 가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고 한 것은 롯을 위하는 마음이라기보다는 자신은 어느 땅으로 가건 상관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브람은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요? 12정애 보면 아브람은 자신이 거하는 땅에 기근이 들자 애굽으로 피신합니다. 애굽에 가면 먹을 것이 많으니 굶어죽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애굽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애굽 사람들이 두려워 아내인 사래를 누이라고 속이고 그로 인해 사래가 바로의 아내가 될 위기에서 하나님이 바로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사래를 돌려보내게 한 것입니다.

 

 

아브람이 경험하게 된 것은 이방인의 나라인 애굽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두려워 할 것도 염려할 것도 없습니다. 이러한 아브람에게 ‘어떤 땅이냐?’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세상 어디에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록 좋지 못한 땅으로 간다 해도 그것에도 하나님은 계실 것이고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에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즉 보이는 것을 의지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이에 반해서 롯은 자신의 가축을 먼저 생각했고 가축을 잘 기르고 부자 될 가능성이 있는 땅을 선택했습니다. 롯은 땅만 바라봤을 뿐 그 땅에도 함께 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보지 못한 것입니다. 때문에 13절에서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며 소돔의 악함을 말하고 있지만 롯의 눈에 소돔은 여전히 살기 좋은 땅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롯과 같은 선택을 할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 내가 잘 살 수 있는가’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선택합니다. 이것이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즉 롯의 선택은 지극히 상식적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람의 선택은 세상의 상식에서 벗어납니다. 하지만 아브람의 선택이 옳은 것이라면 신자는 세상의 상식에서 벗어난 길을 가는 사람이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에서 벗어나고 잘못된 길을 가는 것까지 이용하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배우게 하십니다. 이처럼 아브람도 조금씩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배우고 알아가게 된 것입니다. 때문에 아브람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아브람에게 간섭하시면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기근 때문에 애굽으로 도망치고 자기 목숨 살리고자 아내를 누리라고 속였던 비겁한 아브람을 좋은 땅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신 하나님이 위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아브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선택에 있어서 고민할 것이 없습니다. 어디를 가든 하나님이 계시고 구입한 땅 값이 오르건 오르지 않건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초점을 두는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단으로 간 롯은 장막을 옮겨 소돔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고 큰 죄인이었다고 말하는데 롯의 눈에는 소돔의 악함이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소돔의 풍요로움만 보였기에 그들에게로 점점 가까이 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소돔 사람의 풍요에 마음을 뺏긴 것입니다. 롯은 소돔에도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소돔의 악함에 대해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생각을 못한 것입니다.

 

 

14장에서 롯은 그로 인해 전쟁에 휩싸이고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보기에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같았던 좋은 땅이 전쟁으로 인해 엉망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눈에 좋게 보인다고 해도 모두가 좋은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14절에 보면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다시 땅에 대한 약속을 확인시키십니다. 인간이 선택하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고자 약속하신 그 땅이 참된 땅이 되는 것입니다. 신자가 이 약속을 믿는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땅에 미련을 두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에 복된 땅은 없습니다. 잠깐 환경적으로 살기 좋은 땅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죽습니다. 세상을 보면서 살기 좋은 땅이 어딜까 찾는 것이야 말로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어디에도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 없음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최고로 살기 좋은 땅을 골라서 갔다고 해도 결국 죽는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로 갈까요 우로 갈까요’라고 기도합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알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게 하신 곳으로 가면 성공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관심이 자신의 풍요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신자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눈에 보이는 것을 기준하여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간섭하시면서 하나님을 알아가게 하시는 것보다 복된 것은 없습니다.

 

 

좌로 가든 우로 가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신자는 ‘어디로 갈까요’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든 복을 나타내고 은혜를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살기를 소원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소원에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면 그가 진심으로 복된 자입니다.

 

 

여러분의 눈에는 풍요롭고 행복하고 잘 된 것으로 보인다고 해도 그것이 참된 현실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보이는 것에 속지 마시고 믿음이 보게 하는 보이지 않는 하늘의 것에 소망을 둘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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