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5.02.08 10:01

(38강) 의로 여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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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15:1-6http://onlycross.net/videos/gen/gen-150106.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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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설교>

 

1절을 보면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왜 아브람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당시 아브람에게 두려움이 되는 어떤 문제가 있었거나 아니면 앞으로 두려워 할 문제가 닥친다는 것을 암시해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데 아브람이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이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람이 무엇을 두려워했는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2절에서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고 말한 것을 근거로 해서 자식, 즉 상속자가 없는 것으로 두려워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상속자의 문제는 두려움보다는 근심의 문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상속자가 없으면 가문의 대가 끊긴다는 점에 두려움이 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또한 정확한 답을 될 수 없다고 봅니다.

 

 

어떤 사람은 패배한 연합군이 다시 공격해 올 것에 대한 문제로 두려워했다고도 합니다. 이미 적은 수로 승리한 경험이 있는 아브람이 전쟁 문제로 두려워했을까 라는 의문도 있지만 인간의 연약함을 생각해 보면 아예 가능성이 없는 말도 아닐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브람이 무엇을 두려워했는지의 문제보다는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는 말씀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방패를 주시고 상급으로 뭔가를 주시겠다고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방패고 상급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자신을 보호할 것을 구할 필요가 없고 신앙생활을 잘해서 하나님께 상을 받겠다는 생각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 됩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믿음이 어떻게 잘못 이해되고 있고 어떤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방패가 될 만한 힘 있는 것을 얻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방패로 생각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권력을 방패로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나는 네 방패다”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세상의 무엇이 하나님보다 더 든든한 방패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을 뚫고 해할 수 있는 능력과 권세가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의 지극히 큰 상급이 되신다면 굳이 하나님께 상을 받고자 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주신다고 해도 하나님이 상급이 되어주신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자는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인해 이미 가장 든든하고 부족함이 없는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땅의 것을 소유하여 그것으로 자신을 보호하고자 한다거나 세상이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을 상으로 받고자 한다면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고 의지하는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브람이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2절)고 답합니다. 그리고 또 다시 말하기를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3절)고 합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주시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방패와 상급은 아브람이 롯을 구하기 위한 전쟁에서 경험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방패가 되어 주셔서 아브람이 보호 받고 승리할 수 있었으며 그 상급으로 롯과 그의 가족을 구출하고 많은 재물을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람이 갑자기 자식 이야기를 끄집어냅니다. 하나님이 많은 수의 자손을 약속하셨지만 실제 현실은 자식이 없어서 종의 신분으로 있는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아들, 상속자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아브람은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을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실현 가능성을 현실의 조건으로 따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시고 아브람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고 하시고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아브람의 의로 여기셨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 내용에서 주의할 것은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의인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나님을 믿어서 의인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믿는 자신에게 초점을 두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손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을 아브람의 의로 여기셨음을 주지해야 합니다. 이것은 믿음이 아닌 다른 것은 의가 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즉 믿어주는 행위조차도 의의 조건으로 여기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람은 무엇을 믿었고 어떤 믿음이 의가 되는 것일까요? 아브람은 단순히 후손이 많아질 것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것이라면 아브람의 믿음은 자신의 가문 번성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방향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가 믿음 아닌 것을 믿음으로 착각하고 있는 오류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지향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내게 복이 주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을 지향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아브람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게 될 것을 기대하는 믿음이 아니라 말씀을 하시고 말씀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지향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에는 이러한 다름이 있습니다. 이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여호와께서 의로 여기신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교회를 보면 ‘믿습니다’라는 말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믿음은 여호와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실 것을 믿는다는 수준에 있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도구 삼아 원하는 것을 얻겠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것을 믿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믿음이 아닙니다. 이것이 믿음이라면 예수님은 바리새인을 책망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차원 높은 믿음을 보여준다고 인정받았던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과 같은 사람들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믿음으로 보였지만 믿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몰랐습니다. 또한 자신들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서도 무지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단지 믿음 좋은 자신들을 복주는 분이었을 뿐입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을 의로운 자로 여겼지만 그것은 자신들의 행함을 기반으로 한 스스로의 생각이고 착각이었을 뿐입니다. 의의 조건을 자신에게서 찾은 것입니다

 

 

아브람은 자신에게 자식이 없기 때문에 엘리에셀이 상속자라고 말합니다. 자식이 없으니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람의 해결책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람의 해결책을 받아주지 않으시고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상속자가 있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아브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곧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됩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은 믿음의 내용은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내세웠던 자신의 해결책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이 믿음이 아브람에게 의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믿는 믿음은 인간의 행함과 방법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개입으로 이루어짐을 믿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으로 오실 구원자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의가 되는 믿음은 하나님의 개입과 약속의 성취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믿음은 자신의 행함으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행함은 단절되고 예수님의 이루심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죄로 인한 자신의 한계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의가 되심을 바라볼 뿐입니다. 예수님이 의로 오셨음을 믿기에 그 믿음이 우리에게 의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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