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5.03.28 19:32

(44강) 영원한 언약

조회 수 292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창 17:15-27http://onlycross.net/videos/gen/gen-171527.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5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20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21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22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23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으니

24 아브라함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구십구 세였고

25 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십삼 세였더라

26 그 날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27 그 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태어난 자와 돈으로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

 

<설교>

 

1절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것은 굳이 말씀하지 않아도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주지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점은 우리가 주의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3년 만에 나타나신 하나님이 자신의 전능함에 대해 주지시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여러분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앞설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무엇입니까?’라는 의문도 없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에게 이미 구축되어 있는 신에 대한 상식으로 하나님의 전능성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성을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합니다, 이것이 신에 대한 우리의 상식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신 전능은 하나님이 언약을 주시고 그 언약을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지만, 우리가 원한 대로 무엇이든 이루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언약 안에서 홀로 언약을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인간의 협력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다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언약의 성취에서 확인하며 인간의 모든 행함을 부인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높이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완전한 행함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같은 믿음의 의미를 할례 언약을 세움으로 이스라엘에게 남겨 놓고자 하십니다. 할례의 의미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자손은 인간의 노력과 방법과 조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성취됨을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몸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할례의 의미를 알고 믿는 것이 중요한 것이며 이것을 마음의 할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15절에 보면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십니다. 이미 아브람을 ‘여러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라함으로 바꾸신 하나님이 다시 사래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라는 뜻의 사라로 바꾸신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어떤 일을 행하실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에 의해 이름이 바뀐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는 더 이상 자기의 인생이 없다는 선언이 되기도 합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란에서 떠날 때부터 이미 아브람의 인생은 없었지만, 장차 그들을 어떤 인생으로 이끌어 가실지를 이름을 바꾸시는 것으로 확실히 드러내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시면서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16절)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 대해 아브라함은 웃음으로 반응합니다. 자신은 백세가 되었고 사라는 구십 세이기에 아들을 낳을 수 없다는 생각에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처럼 여기는 웃음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다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고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게 해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19절)는 말씀으로 다시금 언약을 분명히 하시고 언약대로 되어질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대화에서 여러분은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어쩌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아브라함이 답답하게 여겨지기도 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말씀을 들었다면 아무 의심도 없고 믿고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만약 그런 생각을 한다면 자신에 대해 아직까지 무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선악과 사건으로 이미 드러났고 규정된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것을 웃음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의 웃음은 말씀에 대한 우리들의 웃음을 대변해주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역시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말씀을 비웃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라가 아이를 낳는 것은 아예 될 수 없는 일로 여겼기 때문에, 차라리 이스마엘이라도 번성하고 잘 살게 해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졌음을 보여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스마엘을 인정하고 번성케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방법과 수단을 인정하시는 것이 됩니다. 때문에 오직 사라의 몸에서 난 아들만을 약속의 아들로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라의 몸에서 나온 아들이 인간의 방법과 수단을 배제한 채 순전히 하나님의 전능하심에 의한 언약의 성취를 보여주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것은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20,21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아브라함의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으셨으면서도 아브라함이 요구한 대로 이스마엘에게 복을 주어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또한 그가 열 두 두령을 낳을 것이고 큰 나라가 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이 내용만 보면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자식으로 인정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언약은 사라가 낳을 이삭과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마엘은 아무리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큰 나라를 이룬다고 해도 하나님의 언약 밖의 존재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번성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언약 밖에 있는 세상도 얼마든지 번성하게 하고 큰 나라를 이루어 부요하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할 자는 오직 언약 안에 있는 백성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참된 복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세상의 부요가 아니라 언약의 백성으로 택함 받고 생명에 참여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약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신자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요동하지 않게 됩니다.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세상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찾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나 사래의 이름에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지 못하고 인간적 방법으로 말씀을 실천하고자하는 불신이 담겨 있습니다. 즉 실패의 이름인 것입니다. 그 이름을 바꾸신 것은 하나님이 부르신 자기 백성을 실패의 자리에 두시는 것이 아니라 성공으로 이끌어 내시고 성공자의 복을 누리게 하시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우리의 힘으로 이루어야 할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힘으로 하고자 하는 것을 아예 받아주지 않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함이 복이 되는 것도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은 언약 밖에 있는 인간이 만들어 낸 종교의 세계일뿐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 안에 있는 신자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은 언약을 이루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실패자를 버리지 않으시고 허물과 죄를 덮고 용서하시며 성공자의 자리에 있게 하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언약은 우리의 모든 것을 부인하게 할 뿐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88 창세기 (48강) 소돔성의 악행 신윤식 2015.04.26 2952
487 창세기 (47강) 아브라함의 항변 신윤식 2015.04.19 2809
486 창세기 (46강) 선택의 이유 신윤식 2015.04.12 3107
485 창세기 (45강) 사라의 웃음 신윤식 2015.04.05 3050
» 창세기 (44강) 영원한 언약 신윤식 2015.03.28 2926
483 창세기 (43강) 할례언약 신윤식 2015.03.22 2914
482 창세기 (42강) 전능한 하나님 신윤식 2015.03.15 2931
481 창세기 (41강) 하갈의 하나님 신윤식 2015.03.08 3156
480 창세기 (40강) 하갈과 사래 신윤식 2015.02.22 2990
479 창세기 (39강) 언약과 증표 신윤식 2015.02.15 3054
478 창세기 (38강) 의로 여기심 신윤식 2015.02.08 3281
477 창세기 (37강) 멜기세덱 신윤식 2015.02.01 3032
476 창세기 (36강) 롯을 구한 아브람 신윤식 2015.01.25 3057
475 창세기 (35강) 눈을 들어 바라보라 신윤식 2015.01.18 3340
474 창세기 (34강) 아브람과 롯의 선택 신윤식 2015.01.11 3378
473 창세기 (33강) 아브람의 거짓말 신윤식 2015.01.04 3389
472 창세기 (32강) 너는 복이 될지라 신윤식 2014.12.28 3574
471 창세기 (31강) 셈의 족보 신윤식 2014.12.14 3517
470 창세기 (30강) 바벨탑 신윤식 2014.12.07 3251
469 창세기 (29강) 야벳, 함, 셈의 족보 신윤식 2014.11.30 3427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11 ... 31 Next
/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