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5.04.26 09:17

(48강) 소돔성의 악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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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19:1-11http://onlycross.net/videos/gen/gen-190111.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2.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3.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4.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5.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6.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7.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8.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9.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10.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11.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설교>

 

 

아브라함을 떠난 두 천사가 소돔 성에 도착하고, 마침 성문에 앉아있던 롯이 그들을 보고 집으로 데려가서 무교병을 구워 대접합니다. 그런데 외부 사람들이 롯의 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모여 집을 에워싸며 그들을 내어놓으라고 협박합니다. 이유는 그들을 상관하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적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남자들이 남자를 성적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은 그들이 오늘날의 동성애자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사실 19장에서 소돔이 심판으로 인해 멸망하기까지 언급된 그들의 악함은 이 내용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이유를 성적 문란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조금 무리가 있는 이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레위기에 보면 남자가 남자와 동침하는 것을 가증한 일로 규정하고 반드시 죽이라는 법이 있습니다. 이 법을 기준으로 하면 소돔은 동성애 하나만으로도 죽임을 받아야 할 죄 가운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문 내용은 아직 동성애에 대한 하나님의 율법이 등장하기 전이고 더군다나 소돔이 이스라엘이 아니란 점을 생각하면 동성애 죄라는 법을 기준하여 소돔의 악함을 규정하고 심판을 정당화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소돔 사람들의 협박에 대한 롯의 반응입니다. 8절을 보면 롯은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고 합니다. 아직 시집가지 않은 두 땅을 내어 놓을 테니 자기 집에 들어온 두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나그네 두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두 딸을 대신 희생시키고자 하는 롯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혹 롯이 두 사람이 천사인 것을 알고 천사를 보호하기 위해서 딸을 희생시키고자 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천사들은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보내셨다는 사실을 13절에서 롯에게 밝힙니다. 그것은 보면 롯은 아직 두 사람을 나그네로만 알고 있을 뿐 천사인줄은 몰랐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롯의 행동을 우리의 사고방식으로 납득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롯의 행동은 분명 세상의 기준과 사고에서 크게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롯의 행동이 이해 안된다는 것보다 이해할 수 없는 롯의 행동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 처음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면 두 천사가 소돔에 온 이유는 심판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롯을 구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성문에서 롯을 만난 후에 심판에 대해 말하고 소돔 성에서 도망치라고 알려주면 될 것입니다. 굳이 롯의 말을 따라 집에까지 가서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천사는 롯의 간청을 따라 집으로 가게 되고 그로 인해 소돔 사람들의 악행이 드러난 것입니다. 만약 이런 일이 없이 소돔을 심판하셨다면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소돔은 그들의 악행이 무엇인지 드러나지 않은 채 심판을 받고 사라졌을 것입니다. 심판이 목적이라면 굳이 소돔의 악행이 드러나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다는 것으로 심판의 이유는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심판의 전부라면 소돔과 고모라만이 아니라 노아 홍수 때처럼 세상 전부를 심판하셔야 합니다. 노아 때와 마찬가지로 세상 전부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롯의 행동에 대해 반발하고 싶어 할 것입니다. 나그네를 대접하고 보호하려는 마음은 칭찬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두 딸을 희생시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반발이 하나님에 대해서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롯은 두 딸을 희생시키고자 했지만 우리는 내 딸을 희생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딸, 즉 자식은 자신의 전부이기 때문에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이 가신 길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은 자신을 버리신 길입니다. 그것도 예수님과는 아무 상관도 없고 가치도 없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버리신 길로 가셨습니다. 이것이 롯이 두 나그네를 위해 두 딸을 희생시키고자 한 것에서 드러나고 있는 세상과 다른 길입니다. 우리가 볼 때 롯과 아무 상관이 없는 나그네는 대접은 할 수 있다 해도 자신을 희생하며 보호하고 대접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두 딸을 희생시키는 것에서 예수님의 희생을 엿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롯이 예수님을 예표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일반적 상식에서 나올 수 없는 행동을 한 롯을 통해서 예수님 역시 일반적 상식에서 나올 수 없는 길을 가셨고 신자 역시 일반적 상식, 사고와는 다른 길로 부름 받았고 그 길로 인도 받고 있음을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롯이 천사를 만났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천사를 만났다면 아마 좋은 일이 있을 것을 기대할 것입니다. 나에게 좋은 일이 있게 하려고 천사가 나타난 것이 아닌가라고 제멋대로 해석할 것입니다. 하지만 롯은 천사를 만남으로 인해 두 딸을 희생해야 할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천사를 만나지 않았으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과의 만남이 이런 것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을 만남으로 가장 귀한 것을 버려야 한다 해도 예수님을 만난 자로 살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 또한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으로 세상이 아닌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신자입니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해서 고난과 핍박이 있고 손해가 요구된다고 해도 예수님과의 만남을 피하고 포기하지 않는 그들이 세상이 아닌 하나님 나라 백성인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본문에서 엿볼 수 있는 소돔의 악함은 동성애라기보다는 자기 즐거움, 자기 쾌락에 몰두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즐거움이 되지 않으면 필요 없는 것으로 여기는 그 사고방식을 소돔의 악함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롯과 소돔이 구별됩니다.

 

 

롯은 두 사람을 지키기 위해 딸을 희생시킵니다. 자신과 혈육관계도 아닌 두 사람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버리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원하는 신앙세계일까요? 사람들이 원하는 신앙세계는 자기희생이 아니라 자기만족에 있습니다. 자신을 기쁘게 하고 만족하게 해주는 신앙 세계를 원합니다. 이런 점에서 롯과 소돔 사람은 크게 대비되어 구별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안다고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살아온 삶의 관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좇는 것이 자신이 버려져야 하는 길임을 생각하지 못합니다. 신앙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소돔의 길에서 벗어나 롯이 보여준 것처럼 세상이 납득할 수 없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눅 17:28절에 보면 롯의 때를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는 것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소돔은 그로 인해 심판을 받았습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자기를 위해 행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자기를 위해 사는 길에서 벗어난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것이 세상과는 다른 세계, 다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버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얻음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발견하고 깨닫게 될 때 자기 버림이라는 세상과 다른 길에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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