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4.07.27 10:11

(13강) 생명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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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3:20-24http://onlycross.net/videos/gen/gen-032024.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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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설교>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부릅니다.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는 뜻입니다. 아담은 왜 갑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부를까요? 그것은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징벌을 받게 된 처지에서 바라보는 아내가 예전의 아내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15절에서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친다는 것입니다. 그냥 들으면 이상한 말씀이 아닐 수 없지만 뱀의 유혹으로 인해 선악과를 먹음으로 죽은 자가 되고 하나님의 징벌 아래 있게 된 처지에서 그 말씀은 하나의 소망으로 다가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하와가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씀이 이루어질 도구가 됨을 생각한다면 하와는 단순한 아내, 여자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징벌하신 것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시고 생명나무도 그룹과 두루 도는 불 칼로 지키게 하십니다. 결국 인간은 평생을 수고와 고통으로 살다가 죽음에 이르는 운명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라면 성경은 하나님의 징벌로 종결되었어야 합니다.

 

 

성경이 인간의 죽음으로 시작한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죽음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죽은 자에게 행하실 하나님의 일이 있음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하나님은 그것을 15절의 말씀으로 드러내신 것입니다. 즉 여자의 후손이 죽음에 처한 인간이 바라볼 유일한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생명나무를 없애지 않고 그대로 두신 상태에서 그룹과 불 칼로 지키게 하신 것일까요? 생명나무를 아예 없애버리신다면 그것은 죽음에 처한 인간의 생명을 위해 일하지 않으신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인간을 징벌하신 것으로 더 이상 하실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생명나무를 지키게 하셨다는 것은 인간의 생명을 위해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성경은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일이 어떻게 성취되는가를 증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생명나무를 지키게 하신 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을 22절에서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신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선악을 아는 것은 하나님만의 일인데 인간이 자기 나름대로 선악을 판단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판단하시는 일을 인간이 판단하면서 나름대로 선악을 구별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에덴에서 쫓겨나야 하는 이유입니다.

 

 

본래 피조물은 하나님이 이루시고 주신 것 안에서 살아가면 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선악을 알게 된 인간이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자신에게 좋고 나쁨으로 판단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 요구하게 된 것이고 원하는 것이 주어지는 것을 복으로 간주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모습은 기도에서 여실히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선악을 알게 된 인간이 생명나무를 바라볼 때 어떤 생각을 하겠습니까? ‘생명나무 열매를 먹으면 내가 영생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생명나무 열매를 취하게 될 것입니다. 본래 생명나무는 선악을 알지 못한 상태의 인간에게 허락된 것이었습니다. 즉 선악을 알지 못한 그 상태가 곧 영생인 것입니다.

 

 

선악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는 ‘생명나무 열매를 먹으면 내가 영생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먹지 않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에 먹을 뿐입니다. 하지만 선악을 알게 되었을 때는 영생을 추구하는 욕심으로 생명나무를 먹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영생을 원합니다. 진시황제의 평생소원이 영생이었습니다. 그래서 불로초를 찾아 헤맨 그가 어느 곳에 생명나무가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연히 자신의 영생을 위해 생명나무를 취하려고 혈안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생명은 하나님과 관계없이 인간에 의해서 취해지는 것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하나님은 생명이 이런 방식으로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기에 그룹과 불 칼로 지키시고 인간은 에덴에서 쫓아내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힘으로는 누구도 생명을 취할 수 없도록 조치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취지를 알지 못한 인간들이 생명 앞에서 선악을 알게 된 인간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자신의 영생을 위해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생명나무를 취하려는 속성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복을 받을 수 있을까?’이런 궁리에 빠져서 자신에게 득이 되는 행동을 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악을 알게 된 인간이 하나님을 믿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의 생명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의도로 생명나무를 지키게 하시고 인간을 에덴에서 쫓아내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것에도 그러한 뜻이 담겨 있습니다.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손수 만들어 입은 치마를 벗기셨음을 말합니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이 최초로 한 일은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치마를 만들어 입은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죄를 감추고 부끄러움이 없는 떳떳한 자로 자신을 보이기 위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선악을 알게 된 인간의 행동이며, 지금도 인간은 이러한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행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손수 가죽옷을 지어 입히심으로 인간의 부끄러움을 가려주십니다. 바로 이것이 에덴에서 추방당한 인간의 생명을 위해 하나님이 어떤 일을 하실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일을 행하시고 이루셔서 인간의 부끄러움을 가려주시고 생명에 있게 하실 것이며, 우리의 부끄러움을 가리시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실 것을 모두 담고 있는 것이 가죽옷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생을 하나님의 원칙에 맞추어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거부하시고 어떤 방식으로 영생을 이루시는가를 분명히 알아야 하고 그것이 믿음의 바탕으로 자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은 모든 인간은 에덴에서 추방된 자로 스스로의 힘으로는 생명의 길로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룹과 불 칼이 지키고 있는 생명의 길을 자기 힘으로 뚫고 생명나무를 취할 인간은 없습니다. 이 길은 그 어떤 자기 선함과 공로로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선함과 공로가 무엇인가를 저울질하기 이전에 성경은 ‘선악을 아는가 모르는가’를 묻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인간도 이 물음에 ‘나는 선악을 모릅니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행이나 도덕과 상관없이 인간의 힘으로는 생명에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 신앙은 이것을 아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도 인간의 고집은 ‘나는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나는 믿음이 있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의를 행할 수 있습니다’라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인간적 생각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성령의 다스림에 있지 않은 것임을 놓치면 안 됩니다. 그럴 때 그러한 고집을 버리게 하시고 ‘하나님만이 하십니다’라는 고백이 있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이 막으신 길을 열어주시는 방식으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막으신 그 길은 열리지 않습니다. 대신 하나님은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길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택하신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새로운 그 길로 가게 하십니다. 결국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허락되어 있을 뿐입니다.

 

 

에덴에서 쫓겨난 것이 인간임을 아는 신자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힘과 노력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따라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으며 하나님이 행하시고 이루신 일에만 모든 초점을 두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살게 합니다’라고 고백하며 감사하고 찬송하게 됩니다.

 

 

생명은 의인에게만 허락됩니다. 그리고 의는 우리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이루신 의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신자는 주의 의가 내게 들어온 것으로 기뻐할 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는 죽는 순간까지 자기 의를 부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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