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4.09.21 09:59

(20강) 하나님의 한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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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6:5-8http://onlycross.net/videos/gen/gen-060508.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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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설교>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한탄하게 하실 만큼 죄로 가득했고 사람들의 생각 또한 항상 악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그런 상태로 전락할 것임을 모르셨을까요? 만약 모르셨다면 하나님의 전지성은 금이 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당연히 세상이 어떤 상태로 되어질 것인가를 모두 아셨습니다.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해지고 모든 사람들이 항상 악한 생각으로 가득한 존재로 부패할 것을 아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를 하신 것은 세상의 창조가 하나님의 목적의 전부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사랑으로 세워질 새로운 창조에 뜻을 두신 것이고, 새 창조를 위해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길로 가는 것을 두고 보신 것입니다.

 

 

그러면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해지는 것은 하나님도 이미 예견하신 일인데 왜 한탄하시는 것일까요? 한탄은 되어진 일에 대해 탄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일이 어떻게 되어질지 몰랐다면 한탄할 수가 있지만 이미 알았다면 한탄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한탄은 후회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되지 않은 결과에 대해 탄식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6절에 보면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왜 땅에 사람을 지었을까”라고 탄식하면서 후회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왜 처음부터 마귀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완벽히 순종할 자질이 있는 사람으로 창조하지 않으셨을까요? 인간을 마귀의 유혹을 이기고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의 존재로 지으셨다면 사람 지은 것을 한탄하실 일도 없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세상 창조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의 전부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인해 기뻐하고 감사하는 나라를 세우는 것에 있습니다. 그 도구로 마귀를 존재하게 하시고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세상이 죄로 가득해지는 것을 두고 보신 갓입니다.

 

 

만약 세상 창조가 창조의 목적이라면 처음부터 마귀를 제거하시고 창조하셨으면 됩니다. 그러면 세상에 죄가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에덴동산은 그대로 유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의 의도였다면 성경은 창 1,2장으로 충분합니다. 인간의 범죄로부터 시작되는 창 3장 이후의 성경은 있지도 않을 것이고 있을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세상 창조에만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신 것은 사람 창조를 후회하셨다는 뜻이 아니라 땅 위에 지음 받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한탄의 대상일 뿐 누구하나 기쁨이 되지 못한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자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만 잘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내가 하나님께 한탄과 근심의 대상이라는 것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선을 행하고 도덕군자로 산다고 해도 하나님께는 한탄과 근심의 대상일 뿐이라는 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의 실상에 대해 납득하지 못합니다. 이유는 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죄를 모르기 때문에 현재 자신의 신앙생활과 도덕적인 삶을 보면서 이런 자신에 대해 하나님이 한탄하고 근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신앙생활을 성실하게 하고 도덕적으로 산다고 해도 자신을 보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상태로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고 자기 인생입니다. 그래서 행복한 자기 인생을 위해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 것입니다. 이처럼 행복한 자기 인생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은 악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도덕에 맞춰 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인의 삶이 되는 것으로 착각한 것입니다.

 

 

7절에 보면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고 말합니다. 완전히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실 정도로 죄로 가득한 세상이었습니다.

 

 

자신이 창조한 세상을 심판하는 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님이 창조하고자 하는 참된 세상은 따로 있기에 세상의 심판은 하나님께는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본문을 보면 심판을 목적으로 심판을 행하시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는 중요한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8절의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심판 속에서 은혜를 입을 자를 남겨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한탄하게 하고 근심하게 하는 세상을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그 안에 은혜를 입을 자를 따로 구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가 바로 노아였고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방주를 만들고 심판에서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단지 노아 한 가족을 구원하시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은혜를 입히셔서 구원하심으로 말미암아 은혜와 사랑으로 존재하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홍수 심판 후의 세계입니다.

 

 

 때문에 홍수 심판 후의 세상은 은혜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으로 구별되어지고 저주는 은혜를 모르는 상태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작정하신 일이었기 때문에 이 일은 이미 천지창조 때부터 진행되어 왔던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에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세워질 새로운 나라의 창조가 담겨져 있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하와를 즉시 죽음으로 집어넣으시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셔서 가죽 옷을 만들어 입히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한탄에도 이러한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을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크게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생각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스스로를 들여다보시며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라는 것을 절감하십시오.

 

 

우리가 언제 내 인생을 벗어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생각과 계획을 세운 적이 있습니까? 신앙생활을 했다고 해도 늘 내가 손해되지 않는 길로 갔을 뿐입니다. 이러한 우리가 심판을 받아야 할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절감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마음이 열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것이 놀라운 은총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옛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습성을 그대로 가지고 살아가며 보이는 것에 집착합니다. 이러한 악한 실상으로 인한 애통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바른 인식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마음이 열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한탄과 근심의 대상으로 바라보십니다. 우리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른 점은 은혜를 입힐 자로 택하시고 부르시고 은혜를 주셔서 구원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를 입지 못한 자와 대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입은 신자는 은혜만으로 감사와 찬송이 있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새 창조로 새롭게 된 신자입니다.

 

 

하나님의 새 창조 안에 있는 신자는 세상에 붙들린 인생을 추구하지 않게 됩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것으로 호화롭게 치장된 인생이라고 해도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무너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참된 희망이 되는 예수님에게만 소망을 두게 됩니다. 심판에서 우리를 건지지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분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인생의 전부임을 알게 되면서 예수님을 나에게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도 눈을 뜨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에 붙들려서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순종하는 삶에 마음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를 입은 신자에게서 나타나는 삶의 방향이고 우리를 이러한 삶의 길로 나아가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죄로 가득한 세상은 노아 시대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 속에 우리는 은혜를 입은 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심판 속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생명으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존귀한가를 마음 깊이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은혜와 사랑만으로도 기뻐하고 감사하는 신자로 세워져 가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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