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3.10.06 09:52

(93강) 좋든지 좋지 않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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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42:1-6http://onlycross.net/videos/jer/jer-420106.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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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 이에 모든 군대의 지휘관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호사야의 아들 여사냐와 백성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다 나아와

2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탄원을 듣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해 주소서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많은 사람 중에서 남은 적은 무리이니

3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4 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말을 들었은즉 너희 말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무릇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숨김이 없이 너희에게 말하리라

5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가운데에 진실하고 성실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6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

 

 

<설교>

 


그동안 예레미야를 배척하고 그가 선포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싫어했던 유다 백성들이 예레미야를 찾아옵니다. 이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폐허가 된 유다 땅에 남아 있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예레미야를 찾아온 것은 유다에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전의 유다 백성이라면 예레미야에게 그런 부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말고도 평안을 선포하는 선지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레미야의 선포대로 유다가 망하고 예루살렘이 무너진 상황에서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참된 선지자였음을 알았기에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부탁에 대해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을 숨김없이 너희에게 말하겠다고 합니다(4절). 예전처럼 비록 그들에게 거북스러운 말씀이라고 해도 감추지 않고 그대로 선포하겠다는 뜻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이 당신을 보내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6절)는 말입니다.

 

 

이들은 유다가 무너진 지금의 상황에서 자신들이 갈 길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여호와께 물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말씀이 좋든지 좋지 않든지 그대로 순종하겠다고 합니다. 듣기 좋은 말만 듣고자 했던 예전의 유다 백성에 비하면 말씀에 대한 태도가 변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변한 것처럼 보일 뿐 말씀에 대한 그들의 속셈은 여전했습니다.

 

 

이들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복이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좋은 말씀이든 좋지 않은 말씀이든 순종하면 하나님이 복 주실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이들의 속셈은 복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 받는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유다에 남은 백성들의 미래는 암담했습니다. 더군다나 바벨론 왕이 세운 총독 그다랴가 살해된 상황에서 바벨론 왕의 분노를 살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다랴를 살해한 이스마엘은 이미 암몬으로 도망쳤습니다. 요하난도 바벨론의 보복이 두려워 애굽으로 피신하던 중 베들레헴 근처에 머물고 있는 처지입니다. 하지만 애굽으로 간들 상황이 나아질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갈 길과 할 일을 여호와께 물어서 말씀하신 대로 행하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잘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잘됨을 위해서일 뿐입니다. 지금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자신이 가야 할 길과 할 일을 묻는 의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레미야를 찾아와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말씀이 좋든지 좋지 않든지 순종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자기 문제를 위해 하나님을 찾는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줄 뿐인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이 알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는 백성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았다면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이나 행하시는 모든 일에 좋지 않은 것은 없음을 믿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따라고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이나 말씀은 선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외친 심판과 재앙에 대한 경고도 다르지 않습니다. 비록 듣기에는 거북스러운 말씀이었지만 유다에게 좋지 않은 말씀이 아니라 좋은 말씀이었습니다. 유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께 마음을 돌이키게 함으로 유다를 좋은 길로 인도하기 위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다에게 행하진 재앙과 심판 역시 유다 입장에서는 엄청난 불행으로 여겨지겠지만 하나님의 뜻과 의도 안에서 본다면 하나님의 선하신 일인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늘 자기중심에서 선과 악을 판단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기 보다는 현재의 고통만 생각하면서 불평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고통이 없는 삶을 누리기 위해 어떤 말씀이든 순종하겠다고 할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순종을 신앙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를 찾은 이들이 자신이 처한 형편에서 벗어나는 것에 뜻을 두지 않고 유다의 멸망을 보면서 예레미야를 통한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생각했다면 ‘하나님이 유다를 재앙과 고통으로 밀어 넣으신 뜻이 무엇인가?’를 아는 일에 마음을 두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레미야를 찾아와서 부탁하는 기도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게 해달라는 것으로 향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변화는 자신을 향한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유다를 멸망으로 밀어 넣으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찬송과 감사가 없었음을 뜻합니다. 유다의 관심은 이방인과 동일하게 부요를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강대국인 주변의 이방 나라를 보면서 그들의 삶이 부러웠던 것이고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부터는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유다였기에 그들이 비록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긴 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인자와 자비하심에 대한 감사와 찬송이 사라진 형식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 자신이 이방인들이 누리고 있는 것에 비할 수 없는 존귀한 복을 누리고 있음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현대 교인들의 무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현대 교인들도 늘 세상의 기준으로 자신의 복과 은혜를 저울질 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타인보다 더 많이 누리는 것으로 확인하려고 할 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복과 은혜는 세상의 것에 담겨져 주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의로운 자로 여김 받게 하신 것이야 말로 세상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복이며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 같은 자에게 믿음을 주셔서 복된 자가 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게 하신 것이야 말로 크신 은혜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복을 받기 위해 순종하지 않습니다. 복 안에 있는 자로서 주어진 은혜의 고마움에 붙들려 순종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순종은 예수님을 주로 믿으며 예수님이 가신 그 길로 가기를 소원하며 힘쓰는 것으로 증거 될 것입니다.

 

 

이 믿음 안에서 신자는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열매가 없고 소출이 없고 먹을 것이 없어도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고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세계이며 신자가 누리는 평강입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 사는 신자에게 불행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우리의 모든 것은 선을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시는 하나님의 일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신자에게 좋지 않은 말씀, 좋지 않은 일은 없음을 아시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평안으로 인도 받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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