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1.11.20 13:14

(8강) 누가 구원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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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2:26-37http://onlycross.net/videos/jer/jer-022637.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26 도둑이 붙들리면 수치를 당함 같이 이스라엘 집 곧 그들의 왕들과 지도자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수치를 당하였느니라

27 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버지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들의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들의 얼굴은 내게로 향하지 아니하다가 그들이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

28 너를 위하여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네가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

29 너희가 나에게 대항함은 어찌 됨이냐 너희가 다 내게 잘못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0 내가 너희 자녀들을 때린 것이 무익함은 그들이 징계를 받아들이지 아니함이라 너희 칼이 사나운 사자 같이 너희 선지자들을 삼켰느니라

31 너희 이 세대여 여호와의 말을 들어 보라 내가 이스라엘에게 광야가 되었었느냐 캄캄한 땅이 되었었느냐 무슨 이유로 내 백성이 말하기를 우리는 놓였으니 다시 주께로 가지 아니하겠다 하느냐

32 처녀가 어찌 그의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의 예복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는 셀 수 없거늘

33 네가 어찌 사랑을 얻으려고 네 행위를 아름답게 꾸미느냐 그러므로 네 행위를 악한 여자들에게까지 가르쳤으며

34 또 네 옷단에는 죄 없는 가난한 자를 죽인 피가 묻었나니 그들이 담 구멍을 뚫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직 이 모든 일 때문이니라

35 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의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 하였으므로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

36 네가 어찌하여 네 길을 바꾸어 부지런히 돌아다니느냐 네가 앗수르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함 같이 또한 애굽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할 것이라

37 네가 두 손으로 네 머리를 싸고 거기서도 나가리니 이는 네가 의지하는 자들을 나 여호와가 버렸으므로 네가 그들로 말미암아 형통하지 못할 것임이라

 

 

<설교>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지옥 보내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부자 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가난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살게 하시는 분도 죽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을 하나님 뜻대로 하십니다. 단 한순간도 하나님의 뜻을 접고 대신 우리의 뜻에 동참하시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뤄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렇다면 모호해지는 것은 기도의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기도를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합니다. 하나님을 원하는 모든 것을 이뤄주시는 분으로 여기면서 열심히 기도하면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도는 모든 일을 뜻대로 하시는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하고 타인보다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소유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라면 그것은 도둑의 속성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26절에 보면 “도적이 붙들리면 수치를 당함 같이 이스라엘 집 곧 그 왕들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수치를 당하였느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왕들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당하는 수치를 도적이 붙들려 당하는 수치에 빗대어 말씀합니다. 이것은 그들을 도적으로 보신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들이 무슨 일을 했기에 도적이 붙들려 수치를 당하는 것처럼 수치를 당한다고 하실까요?

 

 

27절을 보면 그들이 우상을 섬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우상 섬기는 것을 마치 도적질 하는 것으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우상섬기는 것이 왜 도적질과 같은 것이 될까요? 이것은 도적질의 속성과 우상을 섬기는 속성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도둑질 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을 단순히 도덕적인 바른 인간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각 지파에게 그 수대로 기업을 주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누리는 모든 것은 그들의 수고와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의 땅인 가나안에서는 이스라엘 개인의 소유는 없습니다. 그 무엇도 자신의 소유로 만들고자 해서도 안됩니다. 남의 것과 나의 것을 구분하면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소유를 갖고자 하는 것도 가나안 땅의 속성과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도둑질은 주어진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남의 것까지 탐을 내며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우상숭배 또한 도둑질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주어진 것으로 감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소유하고자 하는 탐심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비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하면서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당할 수치를 도적이 붙들려 당할 수치와 함께 언급하신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것은 오직 자기 육신만 의식한 결과입니다. 육신만을 의식하기 때문에 좀 더 좋은 것을 많이 누림으로써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 육신을 위한 신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인도하시면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나타내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나타내신 바를 따라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원하는 신만을 마음에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신을 통해서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것이야말로 도둑질하는 사람의 심보와 다를 바가 없다고 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처럼 우상을 찾다가 환난을 당할 때면 하나님께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하는 것이 그들입니다. 이런 그들에게 “너를 위하여 네가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냐 그들이 네가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28절)라고 조롱의 말씀을 하십니다.

 

 

이방인들은 육신을 위해서 수많은 신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처럼 유다도 그들 성읍의 수만큼 많은 신을 섬기고 있지만 환난을 당할 때 그 어떤 신도 그들을 환난에서 구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환난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에서의 구원의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고 피할 길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때문에 환난에서 나를 구원할 구원의 능력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생각하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만들어 섬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은 소유가 많아진 것을 복이라고 하지만 그 어떤 소유도 우리를 환난에서 건지는 능력이 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분명히 환난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말씀을 믿는 신자라면 소유의 많음보다는 환난의 때에 구원의 능력이 되시는 분에게 마음을 두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소유의 많음에 복의 의미를 두고 산다면 세상의 마지막, 환난의 때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32절에 보면 “처녀가 어찌 그의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의 예복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는 셀 수 없거늘”라고 말합니다. 처녀가 패물을 잊지 못하고 신부가 예복을 잊지 못하는 것은 신랑을 향한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신부에게 신랑은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신랑이 자기에게 함께 한다는 증표인 패물과 예복을 잊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이 되신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쁨과 즐거움을 어디에서 찾고 누리고자 합니까? 세상의 것이 여러분을 기쁘고 즐겁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앞서 말한 대로 여러분은 세상의 마지막 때를 잊은 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의 것만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할 분이 누구입니까? 환난에서 심판에서 우리를 구원할 능력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여러분 자신에게 이 같은 물음을 던지시고 답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 때에 세상의 것이 무슨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신자는 현재가 아니라 마지막 때를 바라보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마지막 때를 바라본다면 우리의 구원의 능력이 되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입고 산다는 것이 큰 복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리고 참된 기쁨과 즐거움은 예수님께 있음을 알 것입니다.

 

 

세상에서 기쁨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에서 기쁨을 찾으려고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회 역시 우리를 구원하는 능력이 되지 못합니다. 결론은 주님만이 우리의 기쁨이고 즐거움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믿음의 사람만이 자신의 형편과 처지로 인해 실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형편과 처지가 어떠하든 구원의 능력이 되시는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 복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소유의 많고 적음으로 웃고 울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은혜가 있음으로 기뻐합니다. 이 기쁨이 그 심령에 가득한 그 사람이 바로 천국 백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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