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16.07.16 17:20

(86강) 새 영과 새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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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36:24-31http://onlycross.net/videos/eze/eze-362431.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24.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29.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 데에서 구원하고 곡식이 풍성하게 하여 기근이 너희에게 닥치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30.또 나무의 열매와 밭의 소산을 풍성하게 하여 너희가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여러 나라에게 당하지 아니하게 하리니

31.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좋지 못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스스로 밉게 보리라

 

 

<설교>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말을 많이 하고 많이 듣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 일하신다’는 말도 들을 수 있는데 이것은 인간의 행위에 구원의 근거를 두는 알미니안주의의 주장입니다. 천주교 신앙과도 같다고 할 수 있는데 소위 스스로를 칼뱅주의라 하는 사람들도 이 주장을 더 납득하고 따르는 것이 지금의 기독교 실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가령 ‘하나님께서 일하신다’고 하면서도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이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말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이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일하지 않으신다.’는 뜻이 됩니다. 그에 대한 근거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3-14)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기도 합니다.

신자가 기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신자의 기도가 하나님을 일하시게 한다는 발상

 

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종교적이며 비성경적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으로 일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인간의 뜻에 이끌려 인간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것은 자기 뜻의 성취를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그런 의도로 무엇을 하든 그것은 죄가 될 뿐 신앙과는 무관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람이 멈추면 하나님이 일하신다’고도 말합니다. 이 말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믿는 신앙적인 말로 들리겠지만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일하든 멈추든 그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은 일하셨고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 모르는 것은 사람은 멈춘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설사 멈춘다고 해도 하나님을 일하시게 하기 위한 의도로 멈추는 것이라면 그것도 결국 자기를 위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은 인간은 숨을 쉬고 있는 한 자기를 위해 일하고 자기를 위해 산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할 것이며’(25절), ‘줄 것이며’(26절), ‘행하게 하리니’(27절), ‘아니하게 할 것이며’(29절), ‘아니하게 하리니’(30절)라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이 말씀들의 공통점은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그렇게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26절을 보면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자의 속에 새 영을 두고 새 마음을 주시겠다는 것인데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과연 우리가 하나님께 새 영과 새 마음을 원한 적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신다고 말하지만 내 속에 새 영을 두고 새 마음을 주기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원한 적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은 새 영과 새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 개인의 삶의 부요와 확장에 있습니다. 새 영과 새 마음이 주어진다고 해서 세상에서 인정해주는 영광의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의 뜻을 내려놓게 되고 하나님의 일하심에 순종하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과연 이런 인간으로 변화하는 것에 뜻을 두고 하나님을 찾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라고 말씀하지만 굳은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되는 것은 인간의 의지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품성 훈련’입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즉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사랑을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하고 스스로 훈련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성령의 열매를 그리스도인 가져야 할 품성으로 말하면서 얼마든지 훈련으로 교정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품성의 변화를 주님의 은혜 안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적인 수고와 훈련의 결과로 말합니다.

 

 

이들은 신자가 훈련을 통하여 품성이 변화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말하는데, 그 근거로 삼는 구절이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벧후 1:4)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는 구절의 의미를 놓치고 있습니다.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되게 하신다는 것이지 인간이 훈련하여 품성을 변화시킬 것을 명령하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성경을 볼 때 한 구절 한 구절의 의미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은 새 영과 새 마음이 주어짐으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새 영과 새 마음이 있기 전의 모든 인간은 굳은 마음의 상태로 존재합니다. 굳은 마음은 인간 스스로 제거할 수도, 각성하여 변화시킬 수도 없습니다. 만약 인간이 스스로 굳은 마음을 제거하거나 변화시킬 수 있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새 영과 새 마음이 필요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24-25절을 보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을 보면 하나님이 여러 민족들 가운데 흩어져 있는 이스라엘을 모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셔서 하시겠다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을 정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28절)는 말씀처럼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한 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흩어지기 전에, 즉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을 때 그들을 정결하게 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면 안 되는가 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정결하게 하시겠다는 것은 인간이 스스로 정결해 질 수 없음을 뜻합니다. 그들을 바벨론에 포로 되게 했다고 해서 그들이 정신 차리고 조금이나마 정결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일에 협력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스라엘을 흩으시기 전에 정결하게 하셔서 백성 되게 하시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극히 인간적인, 인간중심의 생각입니다. 자기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굳은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슨 이유로 예루살렘을 무너지게 하시고 백성들을 여러 나라로 흩어지게 하고 포로가 되게 하셨을까요? 정신 차려서 하나님 백성답게 되고 신앙생활 잘하는 하나님 백성으로 변화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을까요? 만약 그런 것이라면 하나님의 뜻은 실패한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가 되어 고통을 겪는다고 해서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의 뜻에 맞는 존재로 변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신다는 말씀에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속에 새 영을 두시고 새 마음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31절에 보면 “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좋지 못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스스로 밉게 보리라”고 말씀하는 이것이 이스라엘을 흩으시고 포로 되게 하신 이유입니다. 자기의 악하고 좋지 못한 행위를 기억하게 하시고 자기의 행위로 인해서 스스로를 밉게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무너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결하게 하셨다면 그들은 정결하게 하신 하나님의 일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 것이고, 정결하게 하신 일을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바라보지 않았을 것이며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감사도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성전이 있고 율법을 받아 율법을 행하는 것으로 이미 하나님의 백성 된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정결하게 하신 그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무지했을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고 실천하는 자신들의 노력에 의해 하나님의 백성 된 것으로 간주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없는 자가 하나님에 의해 백성 되었다’는 고백도 감사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개의 기독교인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합니다. 교회를 다니고 심적으로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이심을 받아들인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 되었다고 자신이 자신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마음을 둡니다. 좀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고후 6:1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한다는 사도의 말은 우리로 하여금 사람도 일한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마치 사람을 하나님의 일에 협력하는 협력자, 또는 동업자처럼 인식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일한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뜻이 일치 되는 것입니다. 협력자이든 동업자이든 뜻이 일치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가 하나님과 함께 일한다고 하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어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의 뜻을 세우시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함께 일한다는 것을 지극히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시각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으로 곡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은 사람의 기대가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드러내기 위해 일한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사도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되어짐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것이 그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것이 하나님과 함께 일하시는 자의 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2절의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는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은혜 받을 만한 때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안 된다는 뜻이고, 구원 받을 만한 때는 매일이 구원의 날이며 따라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도움과 은혜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은혜를 헛되이 받는다는 것은 은혜에 담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일을 위해 은혜를 이용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사 49장을 배경으로 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 49:8절에서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9절의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그들이 길에서 먹겠고 모든 헐벗은 산에도 그들의 풀밭이 있을 것인즉”는 구절에서는 이스라엘을 잡혀 있는 자, 흑암에 있는 자로 말합니다. 이것이 본문에서 새 영을 두고 새 마음을 주신다는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에 사로잡혀 있는 이스라엘을 구출하시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셔서 정결하게 하실 것을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긍휼로 되어집니다. 이것을 사 49:10절에서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고 말합니다.

 

 

사로잡혀 있고 흑암에 있는 이스라엘을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는 이가 이끌어 샘의 근원으로 인도하십니다. 이 일이 오늘 우리에게 어떻게 현실이 되었을까요?

 

 

골 1:13,14절을 보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라고 말합니다.

 

 

사로잡힌 자, 흑암에 있는 자가 곧 우리입니다.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고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며 아들 안에서 우리를 속량하신 일을 이스라엘을 바벨론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건져 내신 후에 고국 땅으로 데리고 가셔서 정결하게 하신 일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본문에서 남은 것은 하나입니다. 바벨론에 사로잡힌 이스라엘을 건져내어 고국 땅으로 데리고 가서 정결하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면 하나님의 일은 그것으로 성취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굳이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셔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뜻과 계획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새 영과 새 마음이 주어졌다면 그는 새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엡 4:23-24절에서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씀하는 것과 같이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셔서 옛 사람인 우리를 새 사람으로 지으시고 하나님의 일을 함께 하는 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 일이 바로 우리가 더럽힌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는 메시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이 피 흘려 죽으심으로 흑암에 갇힌 우리가 건짐 받아 빛의 자녀가 되었고, 죄에 사로잡힌 우리가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에게 입혀진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고 은혜를 은혜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가 아니면 존재할 수 없음을 알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우리를 백성 되게 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새롭게 지으심을 받아 새 사람 된 하나님의 백성은 십자가의 고난에서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높이고 감사하는 것을 자신의 존재 이유와 본분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명목으로 자기의 뜻을 이루고자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백성 아닌 자가 구별됩니다.

 

 

하나님에 의해 바벨론에 사로잡힌 이스라엘은 하나님에 의해 건짐 받아 고국 땅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은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고 정결하게 하시고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셔서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의 성취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자 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것이 부드러운 마음이 된 하나님 백성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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