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16.09.17 17:16

(94강) 거룩한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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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39:1-7http://onlycross.net/videos/eze/eze-390107.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그러므로 인자야 너는 곡에게 예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

2.너를 돌이켜서 이끌고 북쪽 끝에서부터 나와서 이스라엘 산 위에 이르러

3.네 활을 쳐서 네 왼손에서 떨어뜨리고 네 화살을 네 오른손에서 떨어뜨리리니

4.너와 네 모든 무리와 너와 함께 있는 백성이 다 이스라엘 산 위에 엎드러지리라 내가 너를 각종 사나운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 먹게 하리니

5.네가 빈 들에 엎드러지리라 이는 내가 말하였음이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6.내가 또 불을 마곡과 및 섬에 평안히 거주하는 자에게 내리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7.내가 내 거룩한 이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에 알게 하여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 줄을 민족들이 알리라 하라

 

 

<설교>

참된 기독교 신앙을 위해서 반드시 전제되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바르게 직시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증거 하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창조주와 피조물로 시작합니다. 모든 기독교인들도 하나님과 인간이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에 있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다만 문제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간과하는 것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에 대해 대개의 기독교인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이 아끼시고 기르시고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한 논리이지만 이것은 창조주의 뜻과 상관없이 피조물이 만들어낸 자기를 향한 소원에 불과합니다.

 

 

참된 신앙을 위해서는 ‘창조주가 누구신가?’와 상관없이 ‘창조주는 이런 분이다’라고 피조물이 자기 유익을 중심으로 자기 편리한 대로 만들어 낸 창조주, 즉 하나님은 허구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현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믿음의 대상인 창조주가 누구신가에 대한 관심으로 창조주를 알고자 하는 것보다 피조물의 소원만 나열되어 있는 현실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심각한 왜곡임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기독교는 허구로 전락한 신앙 아닌 신앙으로 인해 저주로 향하는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바르게 알지 못하면 성경은 우리를 불편하게 할 뿐입니다. 그래서 불편하게 하는 내용들은 그냥 넘겨 버리고 우리가 바라는 위로와 희망으로 해석할 수 있는 내용들을 중요한 구절로 여기며 밑줄을 그으며 요절로 암송하기도 합니다.

 

 

결국 성경의 전체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다만 몇 개의 구절을 조립해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대 기독교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성경을 몇 번을 통독하고 전부를 필사한다 해도 여전히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소경의 수준에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에스겔서만 해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세계에서 추구하고 기대하는 것은 복, 평안, 기쁨, 행복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서가 과연 그것을 말해주고 있던가요?

 

 

우리가 지금까지 접했던 에스겔의 내용은 죄에 대한 폭로와 책망과 심판으로 가득했습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만 아니라 모든 이방 나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온 세상을 향한 심판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서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이런 내용들로 인해 불편해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신다는 것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하나님과 인간, 즉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라면 피조물인 인간은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곧 하나님의 살아계심으로 다가와야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이 자신 또한 심판하신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에스겔 39장은 38장에 이어 곡을 향한 심판의 말씀이 더욱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24절까지 전개됩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을 부르셔서 곡에게 예언을 하라고 하십니다. 예언은 “로스와 메섹과 두발 왕 곡아 내가 너를 대적하여”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곡을 대적하심으로 곡의 무리를 포함하여 곡과 함께 있는 백성들까지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심판은 하나님이 곡을 이끌고 북쪽 끝에서부터 나와서 이스라엘을 치게 하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들의 활을 쳐서 왼손에서 떨어뜨리고 화살을 오른손에서 떨어뜨리게 하심으로 그들의 무기를 무력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을 치고자 하는 의도가 수포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4절에서 “너와 네 모든 무리와 너와 함께 있는 백성이 다 이스라엘 산 위에 엎드러지리라 내가 너를 각종 사나운 새와 들짐승에게 넘겨 먹게 하리니”라는 말씀처럼 죽어서 시신조차 비참하게 버려짐을 당할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곡을 대적하심으로 곡이 겪게 될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대적하여 심판하시는 것은 38:8절에 의하면 이방에서 나와 평안히 거주하는 이스라엘을 침략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의해서 심판을 받게 되고 마곡과 섬에 평안히 거주하는 자에게까지 불을 내려 심판하신다고 합니다.

 

 

이렇게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내가 내 거룩한 이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에 알게 하여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인 줄을 민족들이 알리라 하라”(7절)는 말씀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인 것을 민족들이 알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곡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자신들에게 함께 하신다는 사실과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 가운데 있다는 것이 실제적 현실임을 깨닫게 하심으로써 이방나라처럼 땅의 것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더렵혀진 것을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36:23절에서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말씀하신 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의 이러한 말씀에 대해 크게 관심이 가지 않을 것이고 심적 불편함을 느끼지도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과 무관한 내용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는 곡이라는 존재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곡과 그 무리를 심판하신다고 했으니 심판은 이뤄질 것이라고는 믿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것이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혔기 때문이며, 이스라엘을 침략한 곡과 그 무리를 심판하심으로 더럽혀진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자 하시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 일하신다는 것이 믿음의 내용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영광과 이름과 복을 위해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 일하신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에 여러분의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불편해지는 그것이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한 결과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이유, 이스라엘을 침략한 곡과 그 무리를 심판하시는 이유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심판을 받는 이유를 우리에게서 발견한다면 결론은 하나님은 우리 역시 심판하시는 분임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섬겼고 무엇을 행했다는 것이 심판에서 건짐 받는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어떤 선한 것을 제시한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이것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게 느껴지는 물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막연한 것으로 상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게 되면 막연하고 희미하게만 느껴지는 하나님의 뜻이 조금씩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 작업을 위해 심판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더럽힌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심판을 행하셨습니다. 곡과 그 무리를 심판 하시는 것 역시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알게 하고자 하시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기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피조물의 위치에 있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최고의 가치 있는 일이며 최선을 다해야 할 사명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심판을 받아야 합니까 복을 받아야 합니까? 우리가 과연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 피조물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까? 윤리적인 행동을 하고 좋은 인격으로 칭송을 받는다 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거룩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은 세상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 가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착한 행동을 하고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겠다는 발상 자체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멸시하고 더럽히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이름은 인간의 윤리로 거룩해지고 높임 받을 수 있는 이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통해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우리에게 심판은 마땅한 조치라는 것입니다.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은 창조주로서 행하시는 마땅한 조치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생각하시면서 잘못이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있는지 아니면 심판을 받아야 하는 우리에게 있는지 판단해 보십시오. 잘못이 우리에게 있다면 심판은 당연한 것이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이 피조물의 입장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곡을 심판하심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에 알게 하시고 다시는 그 이름을 더럽히지 않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이름을 아끼시는 하나님의 기쁘신 작정이고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뜻을 이루시기 위해 심판을 행하실 것입니다.

 

 

겔 38:23절에 “이같이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위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위대함과 거룩함을 나타내어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해 심판을 작정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작정을 알고 ‘나에게 모든 죄가 있어 심판이 마땅합니다’라는 고백으로 하나님을 찾는 그가 하나님의 백성 된 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렇게 구별되는 것입니다.

 

 

곡과 그의 무리가 이스라엘을 침략한 것은 이스라엘에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처한 형편이 하나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믿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이스라엘에게 함께 하시고 그들을 지키시고 도우신다면 다른 나라의 침략으로 무너지고 황폐하게 되며 신을 섬기는 성전까지 파괴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곡을 대적하시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곡의 심판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시는 것과 함께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외적 조건으로 판단하는 세상 속성에 대한 심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에게는 곡으로 인해 나타나는 세상 속성이 자리하고 있지 않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세상이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세상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그가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합니다. 세상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돈이고 권력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속물근성을 가진 자로 비난 받을 것을 염려해서 노골적으로는 말하지 않는다 해도 자기 생존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에는 돈과 권력처럼 자신을 힘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는 속성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속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현대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하여 세우심 받은 이스라엘로 인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더럽힘을 받은 것처럼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백성의 모임으로 자처하는 교회가 세상 속성 그대로 세상에서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 길로 가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곡과 그 무리에게서 세상의 속성이 나타나고, 세상의 속성을 따라 자신들과 이방 나라를 비교하며 힘을 가진 강한 나라로 굳게 서고 싶어 했던 이스라엘이 심판을 받은 것을 생각한다면 거룩은 세상의 속성과 다른 길로 가는 것이라는 결론이 가능합니다.

 

 

세상 속성에 의하면 교회는 크게 부흥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은혜 받은 증거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부흥되지 못하고 초라하게 보이는 교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도우신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할 수 없는 입장이 됩니다. 함께 하셔서 도와달라는 말을 할 뿐이지 이미 함께 하셔서 도우시고 풍성한 복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본인조차 실감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속성을 따라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는 것임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의 삶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현실의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우리에게서 드러나는 속성은 세상의 속성 그대로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처럼 곡과 그 무리들처럼 우리 역시 심판이 당연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신자로서 결코 외면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이란 사실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세상의 모든 일에서 살아가신 하나님의 심판을 엿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은 하나님은 죄를 범한 자를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에 의해서 죄를 종교와 윤리를 기준으로 규정해서 죄가 되는 행동과 죄가 되지 않는 행동으로 구분하면서 죄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 죄를 이기는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은 죄를 범한다고 말하기 전에 이미 죄 가운데 있습니다. 그것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곡에서 드러난 세상의 속성입니다. 이 속성이 여러분 자신에게서 쉴 새 없이 분출되고 있음을 확인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 본질의 깊이 파악해야 합니다.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게 되면 결국 희망은 세상과 다른 길로 가심으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뿐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피의 은혜, 용서가 가장 가치 있는 존귀한 은총임을 깨닫게 됨으로써 하나님께 구하는 내용 또한 자연히 달라지게 됩니다. 자기 백성을 이러한 자리로 끌어가시는 것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작정이고 뜻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피로 인한 용서를 가장 존귀한 은혜로 알게 되는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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