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2014.12.21 09:39

(9강) 입을 닫고 여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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겔 3:22-27http://onlycross.net/videos/eze/eze-032227.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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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2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거기서 내게 임하시고 또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들로 나아가라 내가 거기서 너와 말하리라 하시기로

23 내가 일어나 들로 나아가니 여호와의 영광이 거기에 머물렀는데 내가 전에 그발 강 가에서 보던 영광과 같은지라 내가 곧 엎드리니

24 주의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고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

25 너 인자야 보라 무리가 네 위에 줄을 놓아 너를 동여매리니 네가 그들 가운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

26 내가 네 혀를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그들을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27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니라

 

 

<설교>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우시고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17절)고 하십니다. 이제 선지자에게 남은 것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가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담대하게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여 그들로 하여금 악한 길에서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는 것이 파수꾼으로 세움 받은 에스겔 선지자가 할 일입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의 죄 중에서 죽을 것이고 에스겔은 생명을 보존할 것입니다. 따라서 에스겔은 온 힘을 다해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하면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에스겔의 행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십니다. 그것은 에스겔의 혀를 입천장에 붙게 하여 에스겔을 말 못하는 자가 되게 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하나님이 에스겔과 말씀하실 때 에스겔의 입을 열리니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라고 하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에스겔을 벙어리가 되게 하셨다가 다시 말을 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그들이 패역한 족속이고 반역하는 족속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족속이 징벌을 받아 마땅한 상태에 이르렀으며 그들에게는 말씀을 선포해도 듣지 않을 것임을 밝히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니라”(27절)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패역한 족속이기 때문에 징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고 필연적입니다. 그렇다면 사실 선지자를 보낼 이유가 없습니다. 징벌하고 심판해 버리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선지자를 보내시는 것은 그들 가운데 들을 자가 있고 건질 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들을 자가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돌이킬 자가 있다면 그를 건지시기 위해서 선지자를 보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도 긍휼과 자비에 의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셔서 죽게 하심으로 세상이 심판을 받아야 할 곳임을 분명히 하시고 그러한 세상에서 자기 백성을 건져 내시는 구속의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세워서 자신의 뜻을 전달하고 나타내실 때 단순히 입으로 전하는 말씀으로만 행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말씀과 함께 선지자들의 삶도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호세아에게는 음란한 여자와 결혼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음란한 족속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호세아에게 그러한 결혼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낳은 아들과 딸을 하나님이 주시는 이름으로 짓게 하시어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호세아를 떠난 아내를 다시 맞이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나타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20장에서는 이사야 선지자로 하여금 예루살렘 성을 허리에 두른 베옷을 입고 맨발로 다니게 하십니다. 예레미야는 베로 된 띠를 땅에 묻었다가 여러 날 뒤에 다 썩은 띠를 다시 꺼내어 이스라엘이 썩어서 쓸모없게 된 띠와 같다는 것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또한 예레미야에게 줄과 멍에를 만들어 목에 걸라고도 하십니다(렘 27:1-15). 이스라엘이 바벨론을 섬겨야 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레미야의 목에 걸고 있는 줄과 멍에가 이스라엘의 운명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유다의 멸망을 단지 말로만 외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의 몸까지 도구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겔 24장을 보면 하나님은 에스겔의 아내가 죽게도 하십니다. 아내가 죽어도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말고 조용히 탄식하며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발에 신을 신고 입술을 가리지 말고 초상집에서 먹는 음식물을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표징이라고 하십니다.

 

 

이 모든 일은 이사야나 예레미야, 에스겔 등 본인들이 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그들을 선지자로 불러 세우셨고 그 같은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소망, 자신의 생각, 자신의 계획을 이루거나 이루기 위한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이루어지고 나타내는 길로만 가게 되는 사람입니다. 본인의 인생은 엉망이 되도 그 길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 선지자인 것입니다.

 

 

말로만 해도 될 것 같은데 굳이 형상화하여 보여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말로만 하면 듣지 않을 것인데 보여주면 듣는다는 기대 때문일 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말로 하건 보여주건 들을 자는 들을 것이고 듣지 않을 자는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에스겔을 포함하여 여러 선지자로 하여금 곤란하고도 힘든 일을 형상화 하여 나타내고자 하시는 하나님을 쉽게 이해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하나님 당신은 누구십니까?’‘하나님 왜 이렇게 일하십니까?’라는 질문을 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특정 인물을 두고 ‘그를 본받자’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애굽에서 이끌어 낸 모세를 본받고,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고자 했던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고, 여러 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 사도 바울을 본받자고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들과 같은 신앙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막힐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본받자고 말하는 그들의 신앙이 그들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인위적인 방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신앙의 인물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신앙이 아니라 그들을 붙드시고 하나님의 뜻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입니다. 선지자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에스겔서를 보고 있지만 지금까지 에스겔의 개인적 신앙이 부각된 적이 없습니다. 모두 에스겔을 부르시고 선지자로 세우신 하나님이 중심에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바른 태도가 무엇인지도 이것으로 드러납니다. 즉 성경이 관심 두고 있는 하나님께 모든 관심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스스로의 의지와 결단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임하셔서 일어나 들로 나아가라 하셔서 들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그발 강가에서 보던 것과 같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주의 영이 임하여 에스겔을 일으켜 세우시고 무리들에 의해 줄로 묶일 것이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내용들이 에스겔이 해야 할 일과 무슨 연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파수꾼으로 세워진 에스겔이 할 일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말씀을 전하는 방법이나 기술, 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득하거나 그들 마음에 호소하는 법 등을 배우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설교자들은 그러한 것에 관심 두기도 합니다. 설교의 결과가 좀 더 효과적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에스겔에게서는 전혀 그런 내용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에스겔을 하나님 마음대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여러분을 에스겔처럼 사용하신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수긍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주관 하신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모든 일이 나의 뜻대로, 나에게 유리하게 되어 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실망하고 불만을 갖게 됩니다. 때문에 신자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을 때는 우리 개인의 입장이나 생각은 염두에 두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생각을 나타내시는 일에 도구로 사용하실 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것 중에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셨다면 현실보다 더 나은 길로 가게 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고 영광을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현실과 차별화 되는 길로 가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힘든 길로 가게 하시면서 하나님이 견인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신실하심이 약화되지 않고 역사되고 있음을 증거하게 하신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신자란 그런 길을 가도록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 길로 가게 되면서도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할 수 있다면 그가 바로 성령이 임하여 다스림 받는 신자라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의 혀를 입천장에 붙게 하여 말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복을 누릴 자격조차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도 패역한 족속인 그들은 하나님의 꾸짖음을 받을 자격도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꾸짖는다는 것은 사랑입니다. 자녀이기에 꾸짖는 것입니다. 그러한 꾸짖음까지 하지 못하도록 말을 못하게 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의 심판만을 받아야 할 족속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에스겔과 말할 때에 입을 열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꾸짖음을 받을 자격도 없는 자들에게 파수꾼으로 세우신 에스겔을 보내심으로 여호와의 참된 말씀을 듣게 된다면 그것은 은혜이고 축복이며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긍휼의 결과입니다.

 

 

27절 끝에 보면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니라”고 하십니다. 반역하는 족속들에게 선지자를 보내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셔서 그 말씀을 듣게 하신다면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씀을 듣게 되고 알아가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크신 복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현대 교인들이 잊고 살아가는 것 중에 하나가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잊고 산다기 보다는 아예 모른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패역한 족속, 반역한 족속이라고 하시는데 이것은 이스라엘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대표성을 띠고 있습니다. 다른 민족과 차별화 되어서 신앙적으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는 도구로 세움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한 민족과도 전혀 다를 바 없는 악한 존재임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은 모든 자가 패역하고 반역한 존재일 뿐임을 나타내는 대표성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패역한 족속, 반역한 족속은 바로 우리를 지칭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자격도 없고 듣지도 않을뿐더러 듣기 싫어하는 사람들입니다. 인간은 누구도 말씀을 듣고 받아들일 자질이 없습니다.

 

 

그 증거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입니다. 십자가를 보면서 내가 바로 죄로 인해 망해야 하는 존재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앎이 있다는 것이 주의 영이 임함으로 나타난 놀라운 기적이며 복의 세계를 경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자는 다름 아닌 자신이 패역한 족속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들로 나오게 하셔서 그 곳에서 말하겠다고 하십니다. 에스겔이 들로 나가자 그 곳에 그발 강가에서 보던 영광과 같은 영광이 머물게 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어울리는 곳은 거룩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온 바벨론의 들에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 머문 것입니다. 들이 영광스런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고 말씀이 있는 그 곳에 여호와의 영광이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고 말씀이 있는 자리에서 이스라엘이 패역한 족속이고 반역한 족속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신다는 것은 신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렸을 때 나타나게 되는 것은 자신의 악함이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패역한 존재임을 받아들이며 세상을 향한 자신의 꿈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산다는 것이 참으로 헛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참 의미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에 있음을 받아들이는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을 때 성경에서 인생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또는 여러분이 관심 두고 있는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는 있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자녀가 공부를 못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하는 일이 실패했을 때 다시 원상복구 될 수 있는 방법을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답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대하는 것은 자기 문제에 대한 해결 그런 것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간섭하신다고 할 때 그런 식으로 간섭해주기를 원합니다. 그런 간섭은 얼마든지 환영한다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일하시면서 내가 어떤 존재이고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아가는 길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의도로 일하시는가를 알게 되었을 때 성경을 볼수록 하나님은 신뢰하고 믿을 수밖에 없는 분이라는 사실이 충족되는 것입니다.

 

 

내가 패역한 족속임을 알게 된다면 초점은 나를 구속하신 그리스도께로 집중되는 것이고 그리스도만을 자랑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를 다스리시고 주관해 가시는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열지 않을 우리에게 말씀이 전해지고 그 말씀을 통해서 패역하고 사망에 속한 나의 본질을 깨닫게 되며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소망이라는 고백을 하게 것이야 말로 성령으로 인한 놀라운 기적임을 아시고 그것으로 기뻐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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