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4.06.22 10:32

(8강) 선악과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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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2:9-17http://onlycross.net/videos/gen/gen-020917.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설교>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서 선악과나무를 만드시고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경고하신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선악과를 먹지 않으면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죽음이 없는 상태로 계속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실패하고 에덴에서 추방당하게 됩니다. 선악과나무가 인간에게 이런 결과를 초래할 것임을 하나님은 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선악과나무를 두셨는지에 의문을 갖는 것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해가 되는 것을 에덴에 두신 것이 됩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나무를 만드시고 ‘먹으면 죽는다’는 말씀을 남기셨기 때문에 인간이 불행해졌다고 생각한다면 하나님의 일을 납득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하나님이 하신 일을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 부패했다는 증거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인간으로 전락했기 때문에 자기중심으로 흘러가지 않는 세상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에덴이라는 좋은 환경입니다. 선악과만 없었으면 인간이 에덴이라는 좋은 환경을 누릴 수가 있는데 그것이 깨어졌다는 것 때문에 하나님의 일에 의문을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동산 중앙에 두셨을까요? 사탄의 유혹으로 인해 결국 선악과를 먹게 될 것을 아셨으면서도 선악과나무를 두신 것은 에덴에 머물기 위해서는 선악을 알면 안 된다는 조건을 세우신 것이 됩니다. 그런데 왜 굳이 그런 조건을 세우시느냐는 것이 우리가 가지는 의문입니다. 그런 조건을 세우지 않아도 선악과나무만 만들지 않았으면 선악을 아는 지식이 없이 에덴에 머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문 속에서 우리가 확인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 생각의 충돌입니다. 사탄이 하와를 유혹할 때 그냥 두고 보신 것,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이 사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말씀에 불순종하게 된 모든 것들이 우리 생각과 맞지 않습니다. 우리 생각에 맞는 것은 하와가 유혹에 빠지지 않게 막으시는 것이고, 아예 에덴에서 사탄을 추방하거나 인간을 사탄의 유혹도 이기는 존재로 지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생각과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지금의 우리가 이미 선악을 아는 지식이 있는 상태로 말씀을 대하기 때문입니다. 선악을 알게 된 인간은 자신을 기준 해서 선과 악, 즉 옳고 그름을 판단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 조차도 자신을 기준해서 판단하기 때문에 ‘왜 이렇게 하셨지?’라는 의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천국에는 상급의 차이가 없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신앙생활에는 분명 차이가 있고 잘한 사람과 못한 사람이 있는데 동일한 상을 받는다면 신앙생활을 잘한 사람은 억울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앞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선악기준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선악을 아는 지식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이 선악을 알게 되면 선을 행하고 악은 멀리 하면서 선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선악을 아는 것을 금하신 것입니다. 이유는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에게 선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베푸신 모든 것이 선하고 좋은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받고 누리며 기뻐하고 감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나 삶을 좋고 나쁜 것으로 판단한다면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감사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피조물의 본분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선악을 아는 지식을 인간에게 허락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나무와 함께 생명나무를 두시고 동산 각종 모든 나무의 열매는 임의로 먹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생명나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생명나무를 먹을 수 있는 것은 죽음이 없는 상태로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조건을 선악을 모르는 것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인간에게 선악을 아는 지식이 없다면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판단할 필요 없이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은혜로 여기며 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 하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도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선하고 악한 행동을 구분하면서 선을 행하고 선을 행했으니 더 큰 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에게 있는 선악 지식입니다.

 

 

만약 선악지식이 없이 신앙생활을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무엇이 사라질까요?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사라질 것입니다. 주일을 지켰으니 옳고, 십일조 했으니 옳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일 예배나 헌금에 무관심해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다면 말씀이 있는 그 시간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때문에 주일 성수가 옳은 신앙이기 때문에 예배당을 찾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이끌려서 찾게 되는 것입니다. 헌금 또한 이런 마음과 동일합니다. 여기에는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다만 말씀에 이끌리는 것만 있을 뿐입니다. 옳고 그름이 없기에 자신을 기준으로 한 비판과 판단 또한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고 노래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열심히 일했는데도 소득이 없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그래도 그것을 하나님의 선한 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선악의 지식으로 생각한다면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는 상황을 하나님의 선한 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동안 열심히 하나님을 믿었는데 왜 아무것도 주지 않습니까?’라고 불평을 토로할 것입니다.

 

 

선악 지식이 없다는 것은 좋고 나쁨을 우리 스스로 규정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선하신 하나님이 하신 일에는 불의가 없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이며 그래서 천국은 선악 지식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천국을 증거한다면 무엇보다 선악 지식을 거부해야 합니다. 물론 인간이 아무리 힘쓴다고 해도 선악 지식이 없는 인간 본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선악 지식이 왜 죄가 되는가를 알았다면 자신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을 하나님이 원치 않는다는 것을 주지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 옳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선악지식에서 벗어나는 것이 됩니다. 가령 마 4: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을 살기 위해 떡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떡이 많을수록 삶이 편해집니다. 그래서 떡을 위해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떡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살리는 생명임을 받아들이고 말씀으로 사는 삶에 뜻과 소망을 둔다면 그것이 곧 선악 지식에 매이지 않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떡이 풍족한 것을 선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리가 떡의 많고 적음의 여부보다 말씀에 마음을 둔다면 그것이 곧 선악지식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악과나무로 인해서 인간은 죽음 아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보면 하나님은 인간을 죽음의 자리로 밀어 넣기 위해 일하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자리에서 택한 자기 백성을 건져내심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를 세상에 남겨두시고 그들로 말미암아 찬송을 받고자 하신 것입니다.

 

 

선악과나무 앞에서 선악에 대한 지식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임을 확인해야 합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선악기준이 아닌 긍휼과 사랑으로 다가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우리의 선함을 앞세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은 우리의 선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일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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