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2.09.09 13:27

(86강) 주의 소유

조회 수 376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시 82:1-8http://onlycross.net/videos/psa/psa-820108.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

2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셀라)

3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4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하시는도다

5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여 흑암 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

6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7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

8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


 

 

<설교>

 

우리가 믿고 있는 신의 존재는 하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 세상이 신으로 일컫는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닌 허상일 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 모든 신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입니다. 그런데 1절에 보면 ‘신들의 모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6절에서도 ‘너희는 신들이며’라는 말을 함으로써 마치 신적인 여러 존재가 있는 것처럼 묘사합니다.

 

 

성경에 우상을 이방의 신들로 표현한 문구가 있기는 하지만 82편의 내용을 보면 단순히 우상을 가리키는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과연 어떤 존재를 가리켜 신이라고 묘사하고 있을까요?

 

 

혹 신들의 모임을 삼위일체 하나님을 묘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성경의 전체적인 내용을 무시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6,7절의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라는 구절만으로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실제로 신적인 존재를 의미하는 것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적인 존재라면 사람처럼 죽고 고관의 하나같이 넘어지는 일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면 신들의 모임이라는 말은 신처럼 행세하는 무리들을 빗대어 표현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연 그들이 누구일까요?

 

 

8절을 보면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고 말합니다.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라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기독교의 기본 생각입니다. 그리고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라면 하나님이 세상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주인이시고, 우리는 주인이 소유하여 다스리는 피조물의 위치에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세상의 관계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하나님과의 이런 관계를 부정하며 ‘하나님은 없다’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하나님에 대해 이런 입장을 취하는 것은 세상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사건을 보면서 하나님이라는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기독교인들도 분명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시고 세상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주인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믿고 있지만 사실적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앞서 말한 대로 일반적 상식으로는 이해하지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수많은 일들이 행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하나님이 왜 그 같은 자들을 존재하게 하시고 악을 허용하시느냐는 것이 하나님의 다스림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2절을 보면 “너희가 불공평한 판단을 하며 악인의 낯 보기를 언제까지 하려느냐 (셀라)”라고 말합니다. 불공평한 판단은 힘의 편에 서서 힘 있는 자에게 유리한 판단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을 동일한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누가 강자이고 누가 약자인가로 분류해서 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자 편에 서서 판단을 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돈이든 권력이든 힘을 절대적인 것으로 섬기는 악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사실 세상은 사람은 의인과 죄인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강자와 약자로 구분합니다. 때문에 그가 비록 악인이라 할지라도 힘 있는 강자라면 그와 사귀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힘을 가진 강자를 사귀면 자신 또한 힘 있는 무리에 속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처럼 불공평한 판단을 하여 약자를 괴롭히는 자들을 하나님이 미리 심판해 버리시고 공평한 판단이 행해지는 정의로운 세상이 되게 하시면 되는데 왜 그들을 허용하시면서 불공평한 판단을 한다고 책망을 하시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우리 입장에서의 생각일 뿐입니다. 내가 사는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서 편히 살게 해주기를 바라는 지극히 내 중심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애당초 하나님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살기 좋은 세상이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었다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사탄이라는 악의 세력을 제거하셨어야 합니다. 물론 선악과라는 것도 만들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죄와 상관없이 에덴동산에서 죽지 않고 편히 살았을 것입니다.

 

 

또한 만약 하나님께서 악인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다스리신다면 애초부터 아담과 하와는 제거 대상입니다, 에덴에서 쫓겨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제거되어야 하고 하나님은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셨어야 합니다. 그러면 과연 세상에 악이 사라질까요?

 

 

악은 악인으로부터 발산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악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악이 존재하기에 악인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을 제거한다고 해서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악의 세력에 붙들린 악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악인을 제거하신다면 세상 모든 사람이 제거 대상입니다. 물론 우리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이 다스리는 세상은 죄가 없는 아름다운 곳이어야 한다는 것은 인간의 유아적인 생각이며 착각일 뿐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자신은 악인이 아니고 심판의 대상도 아니며 세상에 존재한다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가치 있는 존재로 인식하는 자기착각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악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제거해 버리시고 여러분과 같은 사람만 세상에 남겨 놓으신다면 진심으로 세상이 아름답게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전혀 아닙니다. 우리가 말하는 흉악한 범죄는 보이지 않을 수 있겠지만 시기, 미움, 경쟁, 분당, 비판 등등의 더러운 모습은 그대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세상은 심판의 대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악이 드러날수록 이 같은 결론은 더욱 선명하고 강하게 드러날 뿐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은 악을 허용하시는 것이고 이러한 악의 세상에서 자기 백성으로 하여금 의를 바라보게 하시고, 세상이 아닌 의의 나라에 소망을 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세상을 바른 시각으로 본다면 세상의 힘이 결코 권세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세상은 힘을 가지고 그 힘으로 신처럼 군림하려고 합니다. 힘없는 자를 자신의 다스림 아래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라는 것을 무시하는 것이 됩니다.

 

 

3,4절을 보면 “가난한 자와 고아를 위하여 판단하며 곤란한 자와 빈궁한 자에게 공의를 베풀지며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구원하여 악인들의 손에서 건질지니라 하시는도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살아가는 신자의 세계입니다. 모든 것이 주인 되신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는 믿음에서 이러한 모습이 증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소유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수중에 있는 것을 자기 것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6,7절을 보면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 같이 넘어지리로다”고 말합니다. 신처럼 지존자의 아들처럼 행세하는 힘 있는 자라 할지라도 결국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처럼 죽는다’는 것은 힘 있는 자들이 자신을 마치 보통 사람과 다른 것처럼 여기고 행세했다 할지라도 결국 언젠가는 죽음에 처하게 될 것이고, 그 죽음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과 동일하다는 것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같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힘을 가진 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힘으로 죽음의 권세를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보면 힘이라는 것은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허깨비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힘도 무용지물이고, 모든 사람이 힘없는 가난한 사람들과 똑같이 흙으로 사라지는 존재일 뿐입니다.

 

 

결국 세상에서 진정한 힘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죽음에서 건져내는 능력뿐입니다. 그 능력이 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죄인 된 자에게 유일한 희망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안식과 평안 역시 예수께 있으며 예수님이 힘이 되시고 권세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28 에스겔 (89강) 살아난 마른 뼈 신윤식 2016.08.06 2600
527 욥기 (89강) 다 내 것이니라 1 신윤식 2019.01.26 16017
526 창세기 (88강) 야곱의 족보 신윤식 2016.02.20 2707
525 시편 (88강) 복이 있나이다 신윤식 2012.09.23 3676
524 예레미야 (88강) 변함없는 말씀 신윤식 2013.08.25 3022
523 욥기 (88강) 그리하면 신윤식 2019.01.19 773
522 에스겔 (88강) 구하여야 할지라 신윤식 2016.07.30 3712
521 시편 (87강) 침묵하지 마소서 신윤식 2012.09.16 3677
520 욥기 (87강) 욥의 대답 신윤식 2019.01.12 1049
519 창세기 (87강) 에서의 족보 신윤식 2016.02.13 2620
518 에스겔 (87강) 에덴 동산 같이 신윤식 2016.07.23 2255
517 예레미야 (87강) 기록된 말씀 신윤식 2013.08.18 3195
516 욥기 (86강) 하나님의 자유 신윤식 2019.01.05 844
» 시편 (86강) 주의 소유 신윤식 2012.09.09 3767
514 에스겔 (86강) 새 영과 새 마음 신윤식 2016.07.16 2449
513 창세기 (86강) 베노니와 베냐민 신윤식 2016.02.06 2564
512 예레미야 (86강) 레갑 자손 신윤식 2013.08.11 4056
511 시편 (85강) 하나님의 증언 신윤식 2012.08.26 4030
510 창세기 (85강) 전능한 하나님 신윤식 2016.01.30 2547
509 예레미야 (85강) 시드기야의 속셈 신윤식 2013.08.04 3021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 31 Next
/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