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012.07.29 16:29

(81강) 하나님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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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77:1-20http://onlycross.net/videos/psa/psa-770120.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2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3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 (셀라)

4 주께서 내가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

5 내가 옛날 곧 지나간 세월을 생각하였사오며

6 밤에 부른 노래를 내가 기억하여 내 심령으로, 내가 내 마음으로 간구하기를

7 주께서 영원히 버리실까, 다시는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실까,

8 그의 인자하심은 영원히 끝났는가, 그의 약속하심도 영구히 폐하였는가,

9 하나님이 그가 베푸실 은혜를 잊으셨는가, 노하심으로 그가 베푸실 긍휼을 그치셨는가 하였나이다 (셀라)

10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잘못이라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11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

12 또 주의 모든 일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행사를 낮은 소리로 되뇌이리이다

13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 하나님과 같이 위대하신 신이 누구오니이까

14 주는 기이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이시라 민족들 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시고

15 주의 팔로 주의 백성 곧 야곱과 요셉의 자손을 속량하셨나이다 (셀라)

16 하나님이여 물들이 주를 보았나이다 물들이 주를 보고 두려워하며 깊음도 진동하였고

17 구름이 물을 쏟고 궁창이 소리를 내며 주의 화살도 날아갔나이다

18 회오리바람 중에 주의 우렛소리가 있으며 번개가 세계를 비추며 땅이 흔들리고 움직였나이다

19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곧은 길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

20 주의 백성을 양 떼 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

 

 

 

<설교>

 

시편은 2009년 3월에 76편까지 설교하고 잠시 중단을 했었는데 오늘부터 다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시편은 저자들이 자신의 삶에서 만나고 경험하게 된 하나님을 증거하고 또 자신의 존재 상태를 하나님께 고백하면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아가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시편의 저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이 우리의 고정된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77편도 그런 내용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77편은 아삽의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77편을, 그리고 성경 전부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아삽이 하늘에서 음성을 듣고 이 시를 쓴 것이 아닙니다. 다만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하나님을 얘기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삽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알게 되는 모든 일이 아삽의 의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에 의해 되어진 일이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삽의 인생에 개입하셔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하셔서 그가 알게 된 하나님을 증거하게 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개입하신 인생이라는 것에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내편일 것이라는 생각을 쉽게 합니다. 나를 위해서 일하시고 나를 도와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인생의 형통을 꿈꾸게 합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신 인생이니 잘 되도록 도와주실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77편에서 드러나는 아삽의 인생을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하나님으로 인해서 순탄하고 형통한 삶을 얘기하고 있습니까?

 

 

1절을 보면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일 것입니다. 신자인 우리가 부르짖으면 귀를 기울이시고 들어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입니다. 아삽도 하나님을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2절부터 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2,3절을 보면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를 찾았으며 밤에는 내 손을 들고 거두지 아니하였나니 내 영혼이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내가 하나님을 기억하고 불안하여 근심하니 내 심령이 상하도다”라고 말합니다.

 

 

아삽은 하나님을 자신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는 분으로 알고 있었는데 정작 환난 날에 주를 찾았을 때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에 전혀 응답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한 아삽의 경험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외 없이 이런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들어주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있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우리의 기도에 침묵하시고 마치 없는 것처럼 계시는 하나님일 뿐입니다. 이런 경우 대개 자신이 기도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아니면 기도의 열심이 부족한 것인지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처럼 마치 내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아삽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경험하게 된 것은 아무리 부르짖어도 마치 듣지 않으신 것처럼 침묵하신 하나님일 뿐입니다. 때문에 1절의 내용만을 가지고 ‘하나님은 신자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다’라고 말한다면, 자기 구미에 맞는 구절만 취사선택하여 자신이 의도한 말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2절을 보면 아삽은 밤에도 손을 들고 거두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주를 찾았습니다. 즉 밤이 새도록 손을 들고 철야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기도에 있어서 최선의 열심을 다 한 것입니다. 따라서 아삽이 기도로 인해서 위로를 받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삽의 기도에 응답하심으로써 모든 환난에서 건짐 받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아삽은 위로 받기를 거절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위로를 주셨는데 아삽이 거절하고 받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기도가 위로가 되지 못했음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침묵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심령이 상할 정도로 불안하고 근심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기도하면 불안과 근심이 사라집니까? ‘기도했으니 하나님이 들으시고 해결해 주시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인한 작은 안정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은 잠시 동안 착각에 빠지게 하는 심리적 현상일 뿐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결국 경험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침묵일 경우가 거의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4절의 “주께서 내가 눈을 붙이지 못하게 하시니 내가 괴로워 말할 수 없나이다”는 내용을 보면 아삽의 고민이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 한다는 것입니다. 아예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것처럼 여겨지고 은혜와 인자와 긍휼로부터도 멀어진 것처럼 생각합니다(7-9절). 여러분은 아삽의 이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사실 아삽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심정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삶에서 만나고 경험하게 되는 하나님은 아삽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해도 해결되지 않고, 달라지는 것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결국 기도는 형식으로 흘러갈 뿐입니다. 위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10절부터 보면 내용이 반전됩니다. 아삽은 그 모든 것, 즉 기도를 해도 위로가 되지 못하고 불안하고 근심하면서 심령이 상하게 된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합니다. 아삽이 깨달은 자기의 잘못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부르짖음에 침묵하신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부르짖으면 들으시고 응답하심으로 문제를 해결해주는 분으로만 알고 있었던 자기의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아삽은 하나님에 대해 다시 생각합니다.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10,11절)고 말한 것처럼 지존자이신 하나님이 오른손의 능력으로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삽은 하나님께서 옛적에 행하신 일을 기억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습니다.

 

 

12절을 보면 “또 주의 모든 일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행사를 낮은 소리로 되뇌이리이다”고 말합니다. 주께서 행하신 일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결코 자신에게 침묵하신 적이 없고 주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로 말미암아 지금의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13절에서 “하나님이여 주의 도는 극히 거룩하시오니 하나님과 같이 위대하신 신이 누구오니이까”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신 것 같은 상황임에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고백하게 되는 것이야 말로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깨닫게 된 결과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일이 무엇인가는 14-20절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민족들 중에 주의 능력을 알리신 것은 이스라엘과 애굽 모두에게 주의 능력을 보여주신 10재앙으로 생각할 수 있고, 야곱과 요셉의 자손을 속량하신 일은 출애굽 사건을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아삽이 기억하게 된 하나님의 기이하신 일은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고 그 땅을 기업을 주신 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거주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기이한 일이 그들을 살게 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자로 살아가게 하는 그 힘이 누구로부터 주어지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 역시 지금의 문제가 해결되기만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다면 하나님께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없을뿐더러 불안과 염려와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하나님이 사랑으로부터도 멀어진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잘못인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행하신 기이한 일이 있습니다. 나 같은 자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사망에서 건지시고 그리스도 안으로 인도하셔서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속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고백하며 믿고 있는 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기이한 일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기이한 일하심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세계에 들어오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지금의 나를 존재케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하심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됨을 알게 될 것입니다. 기이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면 우리 모두가 생명의 능력에 붙들려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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