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3.07.07 09:40

(82강) 크고 은밀한 일

조회 수 326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렘 33:1-11http://onlycross.net/videos/jer/jer-330111.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예레미야가 아직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두 번째로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참호와 칼을 대항하여

5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

6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7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8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9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가리켜 말하기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다 하던 여기 곧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성전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를 돌려보내어 지난 날처럼 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설교>

 

본문은 예레미야가 여전히 시위대 뜰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 임한 내용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는 것 때문에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예레미야를 가둔 사람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말씀을 빙자하여 유대 민족을 혼란케 하는 말을 외쳤다는 이유로 가둔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포위당한 상태에서 예레미야는 유다의 패망을 외쳤고, 이 말이 당시 자기중심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심히 불편하게 했던 것입니다.

 

 

2절을 보면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대로 본다면 당시 유다가 처한 상황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뜻하시고 행하시고 성취하신 일입니다.

 

 

당시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서 유다가 포위된 지 일 년 반쯤 된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이미 수많은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상황입니다. 이러한 모든 일이 유다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유다 입장에서 이 같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유다를 패망케 하신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도우시는 분이기 때문에 바벨론을 물리치고 다시 예전의 평화를 누리게 하시는 분이지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유다를 이방인의 손에게 넘겨 줄 수 있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으로 거짓 선지자들은 열심히 평화를 외치며 유다 백성을 안심시키고 희망과 위로를 주고자 했습니다.

 

 

 반면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심판을 가감 없이 외쳤고, 유다 백성은 그 말을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에게서 나올 수 없는 말로 여겼기에 말씀을 빙자한 거짓된 말로 백성을 혼란스럽게 한다는 명목으로 붙들어 가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유다의 패망에 뜻을 두고 계십니다. 비록 유다가 바벨론의 칼을 대항하여 싸운다고 해도 하나님은 그들을 죽이고 시체로 성을 채우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일을 그렇게 만들어 가시는 이유를 유다의 악행으로 말씀합니다.

 

 

유다가 패망하게 된 이유로 부각된 악행은 윤리적인 측면에서의 죄라기보다는 하나님께 마음을 돌이키지 않고 자기중심의 신앙을 추구한 죄를 의미합니다. 자기중심의 신앙이란 하나님의 성전을 찾아 제사를 드리면서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알지 못하고 자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을 이방인이 찾는 우상과 동일한 존재로 간주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는 악행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부정한 시체로 가득 채워지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면서 유다의 악행에 대해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반전이 있습니다. 그것이 6-10절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예레미야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이라고 하십니다(3절).

 

 

4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고 하시면서 예루살렘 성이 시체로 가득 채워질 것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함께 하시고 그들을 다스리시며 도우시고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이 왜 일찌감치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망하게 하시고 지금은 또 유다를 망하게 하시는 것입니까? 여기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일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현재의 평안과 형통을 구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분입니다. 그것을 유다를 세워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망하게 하신 후에 치료하여 고쳐 낫게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유다가 범하고 행한 모든 죄를 사하시고 정하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그 어떤 조건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로 인한 무조건적인 은총입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유다를 엄청난 고통으로 밀어 넣으시는 것입니까? 어차피 아무런 조건 없이 그들의 모든 악행을 사하실 뜻이라면 처음부터 고통이 없게 하시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유다는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없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항상 나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기 때문에 고통과 어려움으로 이어진 현재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뜻이 있고 하나님이 행하고자 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10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10절을 보면 하나님이 유다에게 세우신 뜻은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성전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입니다.

 

 

당시 유다는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주민도 없고 짐승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유다가 망한 상황을 말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으로 기뻐하고 노래하는 소리가 없는 유다의 실상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감사하고 기뻐하고 노래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황폐한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오늘날 교회에 몇 명이 모이느냐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몇 명이 모이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마음을 두지 않음으로 감사와 기쁨의 노래가 없다면 사람이 없는 황폐한 상태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유다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일은 유다를 비참한 상태에 밀어 넣으셔서 그것이 악행으로 인한 유다의 실상임을 보게 하시고 그럼에도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정하게 하신 하나님의 인자와 선하심을 알게 하셔서 하나님을 노래하는 백성으로 만들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이 같은 뜻을 세우시고 일하시고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고통과 어려움에 처한다고 해도 그것이 전부가 아니며 하나님이 돕지 않으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인한 감사와 찬송을 듣기를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신자는 크고 비밀한 하나님의 일하심 안에서 어떤 형편에서도 두려움 없이 하나님만 신앙하게 됩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08 욥기 (85강) 들나귀의 자유 신윤식 2018.12.29 992
507 에스겔 (85강) 더러워진 땅과 이름 신윤식 2016.07.09 2234
506 예레미야 (84강) 파할 수 없는 언약 신윤식 2013.07.28 3204
505 에스겔 (84강) 처음보다 나은 대우 신윤식 2016.07.02 2219
504 시편 (84강) 주의 얼굴 빛 신윤식 2012.08.19 3914
503 창세기 (84강) 벧엘의 하나님 신윤식 2016.01.23 2710
502 욥기 (84강) 네가 아느냐 신윤식 2018.12.22 970
501 시편 (83강) 주의 이름을 위하여 신윤식 2012.08.12 3841
500 창세기 (83강) 이스라엘의 수치 신윤식 2016.01.16 2458
499 에스겔 (83강) 세일 산을 향한 예언 신윤식 2016.06.25 2251
498 욥기 (83강) 네가 신윤식 2018.12.15 2001
497 예레미야 (83강) 그 날 그 때에 신윤식 2013.07.14 3351
496 에스겔 (82강) 화평의 언약 신윤식 2016.06.18 2306
» 예레미야 (82강) 크고 은밀한 일 신윤식 2013.07.07 3267
494 욥기 (82강) 여호와와 하나님 신윤식 2018.12.08 4908
493 창세기 (82강) 엘엘로헤이스라엘 신윤식 2016.01.09 3059
492 시편 (82강) 기이한 사적 신윤식 2012.08.05 3836
491 에스겔 (81강) 한 목자 신윤식 2016.06.11 2281
490 욥기 (81강) 하나님의 명령 신윤식 2018.11.30 922
489 시편 (81강) 하나님에 대한 기억 신윤식 2012.07.29 4873
Board Pagination Prev 1 ... 2 3 4 5 6 7 8 9 10 ... 31 Next
/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