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3.07.14 10:30

(83강) 그 날 그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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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33:12-18http://onlycross.net/videos/jer/jer-331218.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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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2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황폐하여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던 이 곳과 그 모든 성읍에 다시 목자가 살 곳이 있으리니 그의 양 떼를 눕게 할 것이라

13 산지 성읍들과 평지 성읍들과 네겝의 성읍들과 베냐민 땅과 예루살렘 사면과 유다 성읍들에서 양 떼가 다시 계수하는 자의 손 아래로 지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1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16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1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집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18 내 앞에서 번제를 드리며 소제를 사르며 다른 제사를 항상 드릴 레위 사람 제사장들도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설교>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람의 공통적인 문제점은 불행으로 여겨지는 현실을 접했을 때 신앙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힘든 현실을 접하게 되면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인가?’ ‘열심히 하나님을 믿었는데 왜 이런 일이 있는가?’라는 생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것이 이미 신앙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게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한 오해로 인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유다는 비참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흑시대에 처해진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유다가 바른 신앙의 길을 간다는 것은 도무지 기대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은 하루 속히 암흑시대가 끝나기만을 원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유다의 멸망만을 외치며 그 모든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말이 유대 백성의 귀에 들어올 리가 만무합니다. 그럼에도 예레미야는 전혀 개의치 않고 선지자로써 할 말을 할 뿐입니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유다의 현실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현실이야 어떻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면 된다는 것이 선지자의 생각이 아닙니다. 선지자는 철저하게 유다가 처한 현실에 입각해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다만 다른 점은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라는 시각에서 유다의 현실을 이해하는 반면 유다 백성과 거짓 선지자는 불행이라는 시각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15절에서 그 날 그 때에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고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삶을 ‘행복한가?’‘불행한가?’라는 시각에서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불행이 아닌 행복한 삶을 살게 하는 분으로 바라봅니다. 과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일까요? 제아무리 행복한 삶을 산 사람이라고 해도 그의 끝이 죽음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끝은 잊어버리고 현재에만 몰두합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전부일 뿐입니다. 그래서 불행으로 여겨지는 삶이 주어지면 하나님에 대한 혼란과 함께 회의감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려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의 전부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다스려지는 신자의 삶은 행복과 불행으로 나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그 삶의 순간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고 역사하심이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는 유다의 형편을 이러한 시각에서 바라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날과 그 때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지자에게 유다의 형편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유다는 바벨론에게 망하고 포로로 끌려가 고통을 당하는 비참한 현실만 바라보면서 ‘하나님은 뭐하시는가?’라는 불평을 일삼는다고 해도 선지자는 그것을 참된 현실로 보지 않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 유다의 참된 현실이고 말씀의 성취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삶을 이런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떤 형편에서도 불평과 원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하심만을 믿게 될 것입니다. 즉 주어진 삶을 받아들이며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체념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현실에 대한 체념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시고 성취하시는 더 복된 현실에 대한 소망입니다.

 

 

신자가 분명히 인식해야 하는 것은 삶과 하나님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살펴보시다가 어려워지면 도와주시는 방식으로 일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말씀에 붙들려 있고 말씀의 성취로 그 삶 또한 완성되기 때문에 현재의 실패를 실패라 할 수 없고 현재의 성공을 성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 인생의 진정한 성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15절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말씀의 성취는 무엇입니까?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신다는 것이 다윗 자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뜻임을 생각하면 말씀의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입니다. 그리고 16절의 말씀대로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예루살렘이 안전하게 살 것이며, 그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게 됩니다.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는 그 날이 유다에게는 구원이 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말씀의 성취입니다. 유다가 자신의 현실을 이 같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바라보았다면 바벨론에게 멸망하는 것이 현실의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시는 삶이 따로 준비되어 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시각을 가진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불가능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철저히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말씀의 성취로 나아가고 있음을 믿는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의 말은 오늘 우리 역시 어떤 시각으로 삶을 이해해야 하는가를 말해줍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세상은 삶을 행복과 불행이라는 시각으로만 이해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에 삶의 목적을 두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기 행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의 희생도 간과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불행입니다.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현재에만 붙들려서 울고 웃고 불안과 두려움에 묻혀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불행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정의와 공의의 실현이 유다의 구원이고 그것이 곧 유다를 향한 말씀의 성취라면 우리에게 정의와 공의의 실현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곧 우리의 구원이며 이것이 우리에게는 말씀의 성취가 됩니다. 따라서 신자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행복한 인생을 산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있지 않다면 그 인생은 실패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어떤 길로 인도하시겠습니까? 결론은 인생의 행복이 아닙니다. 불행으로 인도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과 불행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의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합니다. 그리스도의 관계에 붙들어 놓기 위해 일하십니다. 그것이 사망에 처한 자에게는 진정한 복이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으로 유다의 현실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다만 유다로 하여금 눈에 보이는 일과 그들이 겪고 있는 것으로 현실을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하고 판단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이러한 시각으로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현실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바르게 이해할 때 눈에 보인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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