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3.07.28 10:18

(84강) 파할 수 없는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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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33:19-26http://onlycross.net/videos/jer/jer-331926.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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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9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21 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깨뜨려 그에게 그의 자리에 앉아 다스릴 아들이 없게 할 수 있겠으며 내가 나를 섬기는 레위인 제사장에게 세운 언약도 파할 수 있으리라

22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나니 내가 그와 같이 내 종 다윗의 자손과 나를 섬기는 레위인을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23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4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자기가 택하신 그들 중에 두 가계를 버리셨다 한 것을 네가 생각하지 아니하느냐 그들이 내 백성을 멸시하여 자기들 앞에서 나라로 인정하지 아니하도다

2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아니하였다면

26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리고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 포로된 자를 돌아오게 하고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설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15절)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하지만 예레미야에게 처음 나타난 언약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서 이어져 내려온 언약입니다. 물론 그 이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노아 시대에도 하나님은 더 이상 홍수로 인한 멸망이 없을 것을 무지개를 증표 삼아 언약을 하신 일도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 아래 존재하는 이스라엘은 세상이 자신의 뜻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주신 하나님의 뜻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언약을 생각하지 않게 되면 세상이 자기 뜻대로 돌아가기를 원할 것이고, 원한 대로 되어 지지 않을 때 하나님에 대한 불만과 함께 자신의 뜻을 이룰 신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세워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토대를 둔 믿음으로 나아가기를 촉구하신 것입니다.

 

 

언약은 구약의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겠다’는 언약대로 하나님은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다윗 자손으로 오신 예수님이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하실 분으로 오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오심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실행하셨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고, 우리가 믿고 신앙의 토대로 삼아야 하는 것 역시 하나님의 언약임을 분명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셨다고 해서 언약이 끝났고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심을 통해서 언약을 믿는 믿음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언약의 정신이 내용으로 담겨 있는 믿음의 길로 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는 방식은 여전히 하나님의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언약은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 방식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언약을 알지 못하고 무시할 때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의 방식으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고안해 낸 구원 방식을 채택하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인간이 고안해 낸 구원 방식이란 구원의 근거를 인간에게 두는 것임을 생각해본다면 자기 행함을 구원의 근거로 삼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언약에서 벗어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구원은 전적으로 예수를 믿음으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인간의 행함을 부인하는 것처럼 말하면서도 끝에 가서는 참된 믿음의 증거는 의를 행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구원의 여부를 자기 행함에서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언약으로 시작했다가 행함으로 끝나는 것이 됩니다.

 

 

우리에게 언약이 개입된 것은 구원은 결코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언약을 믿고 기다리는 것이고, 이 믿음 또한 하나님의 은총으로 주어진 선물이기 때문에 언약 안에 있는 신자에게서 나올 수 있는 것은 은혜로 인한 감사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하나님이 새롭게 고치고자 하시는 이스라엘다움입니다.

 

 

21절을 보면 낮에 대한 나의 언약,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이라는 말을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에 따라 해와 달이 움직이고 그로 인해 낮과 밤이 주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은 이것을 과학의 눈으로만 보면서 자연 법칙이라고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이라고 하십니다.

 

 

이 언약을 깨뜨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만약 누구든 낮과 밤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리고 바꿀 수 있는 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세우신 언약도 깨뜨려 다윗 자리에 앉아 아들도 없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예수님도 세상에 오지 않게 할 수 있을 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20,21절 말씀의 의미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말씀하고자 하신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은 누구도 깨뜨릴 수 없고 절대로 깨뜨려지지도 않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언약을 예레미야 당시의 유다의 형편에 빗대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당시 유다는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았고 우상을 섬김으로 심판을 받아 멸망에 처할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신앙은 기대할 것이 전혀 없는 엉망의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러한 유다에게 하나님은 선지자를 세워 언약을 다시 말씀하시고 상기하게 하십니다. 그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너희는 비록 나에게 마음을 두지 않고 있고 심판을 받아야 할 정도로 엉망이지만 나의 언약은 여전히 너희들 속에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유다 백성은 구원 받을만한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들의 존재 가치로만 따진다면 구원이 아니라 영원한 멸망이 어울릴 뿐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언약을 세우시고 언약을 이루심으로 구원의 백성으로 고쳐 가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이고 열심이며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유다가 비록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받는 길로 가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신 결과가 아닙니다. 따라서 버림받은 것 같은 상황에서도 그들에게 희망이 되는 것은 선지자를 통해서 다시금 선포되는 언약입니다. 그들에게 언약이 세워져 있고 누구도 언약을 깨뜨릴 수 없는 한 언약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언약이 아니었다면 유다는 일찌감치 하나님께 버림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셨기 때문에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돌아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25,26절의 말씀이 이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자는 해와 달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어진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 아래 전혀 변함이 없이 낮과 밤을 주관하고 있음을 보면서 언약 또한 깨뜨려지지 않고 우리를 붙들어 생명의 나라로 이끌어 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언약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말씀에 붙들려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내 뜻대로 아닌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존재하는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의 처지만을 보면서 마치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처럼 여긴다면 그것은 언약을 바라보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24절을 보면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한 것을 두고 하나님이 자기가 택한 두 가계를 버렸다고 이방인이 조롱하며 나라로 인정하지 않을 정도로 멸시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세워져 있고 언약에 따라 하나님이 유다를 불쌍히 여기시고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유다는 언약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면 됩니다.

 

 

우리 역시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해야 합니다. 깨뜨려지지 않는 언약에 의해 우리가 생명으로 인도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잘났든 못났든 나와 상관없이 우리는 언약에 의해 생명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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