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1.11.13 16:31

(7강) 귀한 포도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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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2:20-25http://onlycross.net/videos/jer/jer-022025.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20 네가 옛적부터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으며 말하기를 나는 순종하지 아니하리라 하고 모든 높은 산 위에서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너는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

21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찌 됨이냐

22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네가 많은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내 앞에 그대로 있으리니

23 네가 어찌 말하기를 나는 더럽혀지지 아니하였다 바알들의 뒤를 따르지 아니하였다 하겠느냐 골짜기 속에 있는 네 길을 보라 네 행한 바를 알 것이니라 발이 빠른 암낙타가 그의 길을 어지러이 달리는 것과 같았으며

24 너는 광야에 익숙한 들암나귀들이 그들의 성욕이 일어나므로 헐떡거림 같았도다 그 발정기에 누가 그것을 막으리요 그것을 찾는 것들이 수고하지 아니하고 그 발정기에 만나리라

25 내가 또 말하기를 네 발을 제어하여 벗은 발이 되게 하지 말며 목을 갈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나 오직 너는 말하기를 아니라 이는 헛된 말이라 내가 이방 신들을 사랑하였은즉 그를 따라 가겠노라 하도다

 

 

 

 

<설교>

 

노골적인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이나 하나님의 말씀들이 마음에 드십니까?’ 아마 마음에 든다고는 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현재도 하나님이 나에게 행하시는 일들이 그다지 마음에 든다고는 할 수 없고 하나님의 말씀 또한 내 자신과 세상을 향한 우리의 기대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들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믿고 섬긴다고 할 수 있을까요? 결론은 하나입니다. 내 마음에 드는 하나님을 따로 만들어 하나님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내 멋대로 바꾸어 내 마음에 드는 내용으로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신앙이 아니며 우상을 섬기는 것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이것을 신앙으로 인정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에게로부터 벗어나며 자기 이름과 영광을 위해 살고자 하는 교만으로 책망하였고 그러한 교만에 생명은 없음을 경고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20절에도 보면 “네가 옛적부터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으며 말하기를 나는 순종하지 아니하리라 하고 모든 높은 산 위에서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너는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형편이었습니다.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의도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과 원하는 대로 자신을 위한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이 행하는 것을 보면 과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외형적으로는 하나님만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속에는 오직 자신만이 살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과 포부를 이루기 위한 조력자요 수단으로만 여길 뿐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복음을 만나게 뙤면 외면하고 복음에서 멀어지려고만 합니다. 이유는 복음이 자신의 욕망과 전혀 일치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참된 복음을 오히려 복음이 아닌 것으로 거부하면서 자신만의 복음을 따로 간직하고 자기 복음을 내세우며 자기 식의 신앙생활을 하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행음하는 것으로 말씀하고 있을 뿐입니다.

 

 

높은 산 위에서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행음한다고 하는 것은 이방종교의 의식을 치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이방 종교의 제단이나 신전은 주로 높은 언덕 위에나 잎이 무성한 나무 아래 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이방종교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욕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은 세상에서 힘 있는 자로 굳게 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은 약자였으며 반대로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은 강대국들이었습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의 눈에는 이방종교를 섬기는 것이 멸망의 길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이방나라처럼 강한 힘을 가지는 복을 받는 길로 좋게 여겨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영원한 생명의 문제에만 마음을 두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래도 강대국들의 이방 종교가 좋게 보였을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문제에만 마음을 둔다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 외에는 마음을 두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영원한 생명의 문제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에 집착을 했습니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집착을 했기 때문에 소위 복 받는 길, 즉 복이 되는 일에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고 오늘날 현대 교회의 실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문제만을 가지고 다가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적인 문제에 집착을 하고 현실적인 복을 주는 신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하면 복을 받는다’는 말이 복음으로 들릴 뿐이지 죄와 심판을 말하는 복음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부활과 하늘의 생명에 대한 말씀에 대해서도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현실의 삶과는 무관한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4절에 보면 “너는 광야에 익숙한 들암나귀들이 그들의 성욕이 일어나므로 헐떡거림 같았도다 그 발정기에 누가 그것을 막으리요 그것을 찾는 것들이 수고하지 아니하고 그 발정기에 만나리라”고 말합니다.

 

 

자기 욕망을 채워주는 신을 찾는 것을 성욕이 일어난 발정기의 들 암나귀들이 헐떡거리며 숫나귀를 찾는 것에 빗대어 말합니다. 오로지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헐떡거리며 헤매는 것처럼 오직 자기 욕망을 위해 신을 찾고 부르고 욕망을 채워줄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힘쓰는 이스라엘의 실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실상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정직한 실상입니다. 사람이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다고 해도 변할 수 없는 사실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서 무엇을 얼마나 소유했고 어떤 사람으로 사느냐와 상관없이 인간은 모두 죄인입니다. 그 증거는 모든 인간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재벌이라고 해도 죽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문제를 가볍게 여깁니다. 다만 늙으니 죽는다고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죄 문제에 대해서는 귀를 막아 버립니다. 이처럼 죄 문제에 귀를 막아 버리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이 무엇인가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22절에 보면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네가 잿물로 스스로 씻으며 네가 많은 비누를 쓸지라도 네 죄악이 내 앞에 그대로 있으리니”라고 말합니다.

 

 

죄는 무엇으로도 씻을 수가 없습니다. 당시는 하나님께 나와서 거룩한 제물의 희생의 피가 법궤에 뿌려지는 것으로만 씻음 받았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는 것으로는 결코 죄가 씻겨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는 더럽혀지지 아니하였다 바알들의 뒤를 따르지 아니하였다”는 말로 자기를 변호합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골짜기 속에 있는 네 길을 보라 네 행한 바를 알 것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돌아보면 발리 빠른 암낙타가 그의 길을 어지러이 달리는 것처럼 살아온 자기 삶을 보게 될 것이고, 발정기의 들암나귀가 헐떡거린 것처럼 자기 욕망에 헐떡거리며 살아왔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이 과연 우상을 섬기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면 욕망에 의해 헐떡거리며 살아온 세월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을 깨끗하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세상에 마음을 둬야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는데 그들은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었습니다. 이방인처럼 자기를 위한 길로 달려간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귀한 포도나무, 참된 이스라엘은 예수님이시며 이 포도나무에서 자라난 가지가 예수님께 붙은 참된 가지로서 귀한 포도나무로 여김 받습니다. 예수님께 붙은 가지의 특징은 예수님을 떠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나를 알기에 예수님만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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