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3.06.02 12:38

(79강) 새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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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31:23-34http://onlycross.net/videos/jer/jer-312334.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23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그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에 그들이 유다 땅과 그 성읍들에서 다시 이 말을 쓰리니 곧 의로운 처소여, 거룩한 산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 것이며

24 유다와 그 모든 성읍의 농부와 양 떼를 인도하는 자가 거기에 함께 살리니

25 이는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상쾌하게 하며 모든 연약한 심령을 만족하게 하였음이라 하시기로

26 내가 깨어 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

2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28 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9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30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설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새로운 얘기를 하는데 그것은 31절에서 말하는 새 언약입니다. 그리고 32절에서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스라엘에게는 새 언약 이전에 기존의 다른 언약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옛 언약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옛 언약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구원을 위해 새 언약을 주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32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남편이 되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린 이스라엘은 이제 기존의 언약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언약을 지키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옛 언약 방식은 무엇입니까? 옛 언약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실 때 맺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율법입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인도 받고 광야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율법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시면서 율법을 지켜 행하면 자자손손 대대로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것이 옛 언약입니다. 따라서 옛 언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의 원칙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에 실패함으로써 옛 언약 방식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런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새롭게 맺으신 언약에 새 언약인데 새 언약에 담긴 하나님의 구원의 원칙은 자비와 긍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옛 언약에 실패할 것임을 아셨으면서도 왜 옛 언약을 주시는 것입니까? 아예 처음부터 새 언약을 맺으시고 새 언약의 방식으로 그들을 구원하시면 안 되는 것입니까? 이것이 자기 구원을 중심으로 한 생각입니다. 자기 구원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어차피 구원하실 것인데 왜 번거롭게 옛 언약을 주시는가?’라는 의문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언약이 인간의 구원에 목적을 두고 있는 것이라면 분명 옛 언약은 번거로운 것입니다. 율법이 없이 처음부터 자비와 긍휼하심으로 구원하시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구원에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에 대한 감사와 찬송입니다.

 

 

새 언약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을 마음에 담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한 뜻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옛 언약이 먼저 필히 주어져야 한 것입니다. 옛 언약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무능을 깨닫게 하심으로 새 언약의 방식인 긍휼과 자비하심의 은혜가 얼마나 큰가를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찬송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30절을 보면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고 합니다. 신 포도를 먹으면 먹은 사람의 이가 신 것이 당연한 것처럼 모든 사람이 자기 죄로 인해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29절에서 말한 것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벌을 조상이 죄를 범한 탓으로 돌렸기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의해서 자신의 징벌을 조상의 죄 때문인 것으로 핑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자신의 죄로 인해 죽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이 옛 언약을 통해서 보게 하시는 인간의 실상입니다.

 

 

예레미야는 옛 언약, 즉 율법 앞에서 드러난 인간의 한계를 직시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율법에 대해서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아는 것입니다. 외적으로 드러난 모습은 비록 율법을 따라 사는 것처럼 보이고 그래서 거룩하고 깨끗한 신자로 여겨진다 해도 인간은 늘 율법에 대해 실패한 자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 언약 방식으로는 누구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될 수가 없음을 예레미야가 안 것입니다.

 

 

새 언약은 인간의 실천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실천을 기준해서 사람을 판단하거나 평가하지도 않습니다. 실천의 방식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자가 아무도 없음이 옛 언약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새 언약은 인간의 실천이 아니라 하나님의 실천으로 이루어지고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김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33절을 보면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새 언약은 우리의 실천과는 무관하게 하나님께서 그 법을 우리의 마음에 기록함으로써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방식으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 언약이 사람의 마음에 기록되는 날이 오게 되면 이웃에게 여호와를 알라고 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작은 자부터 큰 자가지 마음에 기록된 법으로 인해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34절).

 

 

옛 언약은 사람들이 읽고 외우고 머리에 담아 두어야 합니다. 옛 언약, 즉 율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율법 전문가가 가르치는 대로 실천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지금도 신앙을 이런 식으로 가르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옛 언약 방식에 매인 것에 불과할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새 언약을 우리의 마음에 기록하십니다. 이것이 성령이 오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새 언약이 마음에 기록되면 신자는 자신의 무능함을 들여 보면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에 마음을 두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때문에 옛 언약 방식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닌 것입니다.

 

 

옛 언약 방식에서 하나님을 말하게 되면 복의 근거를 인간의 행함에 두게 됩니다. 열심히 행한 자를 복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새 언약이 마음에 기록되어 하나님을 아는 신자라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자신을 복의 세계에 있게 했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들을 내 백성으로 여기신다는 것이 새 언약입니다.

 

 

예수님은 새 언약의 성취자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을 보게 되고 우리의 구원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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