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3.06.30 10:07

(81강) 예레미야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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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32:16-25http://onlycross.net/videos/jer/jer-321625.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6 내가 매매 증서를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넘겨 준 뒤에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17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력과 펴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

18 주는 은혜를 천만인에게 베푸시며 아버지의 죄악을 그 후손의 품에 갚으시오니 크고 능력 있으신 하나님이시요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이다

19 주는 책략에 크시며 하시는 일에 능하시며 인류의 모든 길을 주목하시며 그의 길과 그의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시나이다

20 주께서 애굽 땅에서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고 오늘까지도 이스라엘과 인류 가운데 그와 같이 행하사 주의 이름을 오늘과 같이 되게 하셨나이다

21 주께서 표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펴신 팔과 큰 두려움으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22 그들에게 주시기로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에게 주셨으므로

23 그들이 들어가서 이를 차지하였거늘 주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주의 율법에서 행하지 아니하며 무릇 주께서 행하라 명령하신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주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셨나이다

24 보옵소서 이 성을 빼앗으려고 만든 참호가 이 성에 이르렀고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이 성이 이를 치는 갈대아인의 손에 넘긴 바 되었으니 주의 말씀대로 되었음을 주께서 보시나이다

25 주 여호와여 주께서 내게 은으로 밭을 사며 증인을 세우라 하셨으나 이 성은 갈대아인의 손에 넘기신 바 되었나이다

 

 

<설교>

 

밭을 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예레미야는 은 17세겔을 지불하고 숙부의 밭을 삽니다. 지난 수요일에 말씀드린 것처럼 유다의 땅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만 당시 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멸망할 직전이었습니다. 따라서 국가 정세는 아주 혼란스럽고 불안으로 가득했을 때입니다. 이러한 때에 밭을 사는 것은 누가 봐도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은 매매증서를 바룩에게 넘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룩에게는 매매증서를 토기에 담아 오랫동안 보존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15절에서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는 말씀을 합니다.

 

 

이것을 보면 예레미야에게 밭을 사게 하신 것에는 유다에게 행하실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밭을 사는 예레미야의 행위는 유다에게 행하실 하나님의 일이 어떤 것인가를 나타내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비록 사람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그대로 따르기에 곤란한 일이지만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밭을 사는 것을 통해서 유다로 하여금 그들 미래에 주어질 하나님의 일을 알리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깨닫고 믿는 자만이 비록 유다가 망하는 현실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신자의 삶 역시 개인의 인생으로만 여길 수 없습니다. 신자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이라면 그 삶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나타내는 도구로 이용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주관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도구로 이용하신다는 점에서 하나님이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자신의 삶에 대해 불평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도 바울은 부르셔서 고난의 길로 가게 하시면서 복음의 도구로 사용하셨던 것처럼 신자 역시 하나님의 뜻에 붙들려서 복음을 위한 도구로 불려 나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안다면 신자가 현실을 바라보는 안목도 달라질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매매증서를 넘긴 후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예레미야의 기도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높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17절). 그리고 계속해서 은혜를 베푸시고 아버지의 죄악을 후손에게까지 갚으시는 능력을 말하면서 바로 그분이 만군의 여호와이심을 고백합니다(18절).

 

 

인류의 모든 길을 주목하시고 그의 길과 행위의 열매대로 보응하신다고 합니다(19절). 또한 애굽 땅에 표적과 기사를 행하셨음을 말하고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맹세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심으로 그 땅으로 들어가 차지했음을 말합니다(20-22절).

 

 

이 같은 예레미야의 기도는 이스라엘이 단 한순간도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온 적이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이 기도를 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이스라엘에게 존재 근원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함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우상을 섬깁니다. 따라서 유다가 심판을 받게 되고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은 죄에 대해서는 철저히 보응하시는 하나님으로서는 당연한 일이기에 유다가 겪고 있는 모든 일은 스스로 자초한 일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즉 억울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늘 죄에 빠져 헤매는 우리 역시 때로 받아들이기 힘든 일을 겪게 된다고 해도 억울하다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죄를 생각한다면 그보다 더 힘든 상황에 처해진다고 해도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겪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이 행하신 일로 바라본다면 좋은 일이 있을 때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말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쁜 일로 여기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는 믿음에서 가능한 고백이 분명합니다.

 

 

유다를 존재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유다를 망하게 할 수 있는 권세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은 비록 유다의 멸망으로 인해 ‘하나님이 어디 있는가?’라는 조롱을 받는다고 해도 하나님의 영광에는 그 어떤 흠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하나님에 대해 어떤 말을 한다고 해도 그로 인해 하나님의 존재성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처음부터 마지막 까지 하나님의 뜻을 세우시고 일하십니다. 유다의 멸망도 하나님의 뜻에 속해있음을 생각한다면 멸망 또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선포하는 도구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기에 세상의 평가나 조롱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은 이루어지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신자는 자신이 처한 형편에 대해 세상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영광에는 전혀 흠이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자는 다만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늘 하나님의 일하심을 살펴야 하는 것이고 어떤 형편에서든 믿음의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에 마음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힘든 형편에 처했을 때 그것을 하나님의 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는 생각이 살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존재 주권을 하나님이 아닌 자신에게 두고 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레미야의 기도처럼 우리를 존재하게 하신 능력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우리의 길을 주목하시고 생명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에 믿음이 가능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의 힘과 의지로 믿음의 길을 나아온 적이 단 한순간도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 생활을 잘했는데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가?’라는 생각은 나를 존재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결과인 것입니다.

 

 

의로운 인간은 없습니다. 오직 죄인만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게 되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보응, 즉 심판의 대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재앙 또한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한 일에 보응을 받아 심판에 들어가야 할 사람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시고 우리가 받아야 할 보응을 예수님이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유다에게도 이것을 가르쳐주고자 하십니다. 이것이 40절에서 말씀한 영원한 언약입니다.

 

 

심판이 당연한 자들에게 복을 주시고 다시 돌아오게 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는 것이 언약이며 이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로 성취된 것입니다. 우리는 행한 일에 보응을 받아야 할 사람일 뿐임을 잊지 마시고 이 보응을 누가 담당하셨는가를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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