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014.06.15 10:20

(7강) 흙으로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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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2:4-8http://onlycross.net/videos/gen/gen-020408.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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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5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설교>

 

창조 기사는 하나님이 창조하시며 만드신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다는 2:3절의 내용으로 마무리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5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동방의 에덴에 창설하신 동산에 사람을 두셨다고 합니다. 이미 마무리 된 창조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반복되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내용도 1장에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하는 반면에 본문에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 넣으셨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내용이 각각 다른 사람을 다른 방법으로 창조하신 것처럼 생각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중창조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두 번이라는 것입니다. 창 1:27절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과 본문에서 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을 각각 다른 창조로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을 영적 창조, 지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로서의 창조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자유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지적인 존재들이었는데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을 본래의 상태로 회복시키기 위한 훈련장으로 육체를 포함한 물질계를 창조하셨는데 그것이 본문이 말하는 창조세계라는 것이 그들의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중창조설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처음 창조된 인간이 자유의지로 인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고, 인간의 회복을 위해 다른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라면 적어도 두 번째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에게서 단절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중창조설이 주장하는 처음 인간, 두 번째 인간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실패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결국 하나님의 두 번째 창조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이중 창조설은 설득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자유 의지로 인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다는 근거 또한 성경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중창조설은 성경을 인간의 생각에 꿰맞추려는 논리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고 하지만 모든 일을 그치셨다는 것을 하시던 모든 일을 끝내고 쉬셨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조하신 것으로 모든 일을 마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시던 일을 마치셨다는 것은 단지 세상을 창조하시는 일을 마치셨다는 것이지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는 모든 일이 끝났다는 뜻이 아니란 것입니다.

 

 

요 5:17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라고 말합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일을 쉬신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때문에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을 일을 쉬신 것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식하셨다는 것은 창조가 하나님께 기쁨과 만족이 되었음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기쁨과 만족을 위한 창조이기 때문에 피조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습 그대로만 존재하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기쁨과 만족을 위해 살아갈 존재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다시 사람을 지으신 것에 대해 언급하는 것일까요? 이번에는 1장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 생령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지만 그 본질은 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흙은 먼지와 티끌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본질이 먼지이고 티끌인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해도 인간 자체는 티끌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흙일까요? 엡 4:24절에 보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인간 창조는 흙이 아닌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 사람으로 향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것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실 새 사람에 뜻을 둔 창조라는 것입니다.

 

 

흙으로 지었다는 것은 흙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지음 받았다는 뜻입니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음을 받은 새 사람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흙이 아닌 의와 거룩함이라는 생명에 속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흙으로 돌아갈 존재로 지으시고 어떻게 해서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지를 보여주십니다.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굳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를 만드신 것도 그런 이유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어떻게 해서 다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는지, 그리고 무엇이 인간이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물인지 그 모든 것을 드러내시고 보여주기 위한 창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선악 나무로 인해서 인간이 왜 죽는지 그 내막을 알게 되지 않았습니까?

 

 

인간이 죽음에 속한 존재가 되었다면 인간으로 인한 하나님의 안식은 없습니다. 오히려 진노의 대상으로 남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안식을 위해 하실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죽음과 상관없는 새로운 인간을 지으시는 것이고, 그것이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시는 새 사람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실 때는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실 새 사람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새 사람을 창조하시기 위해 일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흙으로 인간을 지으신 것이나 하나님이 지은 인간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죽은 존재가 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 실패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애당초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에 담긴 하나님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에 처한 인간을 죽음에서 건지시고 생명에 속한 자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이미 창조 사건에 담겨서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을 쉬신 적이 없습니다.

 

 

2장에서 창조 이야기를 다시 언급하시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1장의 창조로 하나님이 안식하셨고, 2장에서는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안식하실 수 없는 세상이 되었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으며 하나님이 어떤 뜻을 가지고 일하시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창조에 대해 다시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 넣지 않았다면 인간은 그냥 흙일뿐입니다. 이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인간이라고 해도 하나님이 성령을 주지 않으시면 단지 흙일뿐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흙이 아닌 영적인 존재로 간주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는 것이 성령을 불어 넣으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생기가 아니면 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단지 흙일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오늘날 성령 없는 인간을 어떤 존재로 바라봐야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흙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어떤 사람으로 대접 받는다고 해도 분명한 사실은 인간은 흙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흙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효력 아래에서 모든 사람의 몸은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기 몸에 집착한 채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이고, 이것이 인간의 불쌍한 현실입니다.

 

 

신자가 추구하는 것은 생명이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부자가 되고 높은 자리에 오른다고 해도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날 인생일 뿐입니다. 잘살고 못산다고 해도 기껏 몇 십 년의 차이일 뿐입니다. 하지만 생명의 문제는 영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 속한 하늘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세상을 보지 마시고 흙이라는 본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십시오. 한순간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벗어난 적이 없음을 알 것입니다. 풀의 꽃처럼 지나가는 것에 마음 두지 말고 영원한 것에 마음 두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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