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1.11.06 17:16

(6강) 포로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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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2:14-19http://onlycross.net/videos/jer/jer-021419.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4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느냐

15 어린 사자들이 그를 향하여 부르짖으며 소리를 질러 그의 땅을 황폐하게 하였으며 그의 성읍들은 불타서 주민이 없게 되었으며

16 놉과 다바네스의 자손도 네 정수리를 상하였으니

17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그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

18 네가 시홀의 물을 마시려고 애굽으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며 또 네가 그 강물을 마시려고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음은 어찌 됨이냐

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설교>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그런 이스라엘이 이방 나라의 포로가 되었다면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중대한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문제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14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종이냐 씨종이냐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느냐”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종일 수도 없고 종의 신분으로 태어나지도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어찌하여 포로가 되었으냐라고 하심으로써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종도 씨종도 아닌 이스라엘이 왜 포로가 되었습니까? 17절의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길로 인도할 때에 네가 그를 떠남으로 이를 자취함이 아니냐”라는 구절을 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길로 인도하실 때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에서 떠남으로 자취한 결과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에서 떠난 이유는 그 길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의 마음에 맞는 길을 찾아 떠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이스라엘을 포로 되게 하심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이 인도하고자 하는 길에 있지 않고 헛된 것들 좇고 있음을 알게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어떤 길로 떠났을까요? 18절에 보면 그들이 애굽으로 가는 길과 앗수르로 가는 길에 있음을 책망합니다. 즉 이스라엘은 강대국인 애굽을 의지하고 앗수르를 의지함으로써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길을 간 것입니다. 강대국과 친분을 맺어 그 힘의 보호를 받고자 한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강한 자가 살아남는 세상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처세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약자가 아닙니다. 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시고, 하나님의 인도와 다스림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인도를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현재의 형편이 강대국에 비해 너무 미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하나님보다는 강대국의 힘이 더 신뢰가 갔던 것이고, 자신들을 애굽과 앗수르의 힘에 의탁을 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포로된 이유입니다.

 

 

19절을 보면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강대국의 힘을 의지하고자 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며 악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버린 것이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에 해당됩니다. 그들이 아무리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바친다고 해도 그것은 형식일 뿐 그들의 속에는 이미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습니다. 그 모든 증거는 그들이 세상의 힘에 자신을 의탁하고자 한 것에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는 반역입니다.

 

 

세상에서 힘 있는 자가 되고자 하는 것도 다르지 않습니다, 힘 있는 자를 의지하는 것이나 힘을 갖고자 하는 것 모두가 세상의 힘으로 자기 안전과 평안을 보장받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며 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을 추구하는 자가 신앙의 명목으로 행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그 속에 없는 자의 악으로 규정될 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없이 행하는 것들은 결국 그 행함을 이유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을 하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 앞에서 애굽이라는 강대국의 힘이 얼마나 미약한가를 친히 목격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 아래 애굽이 가지고 있는 힘은 참으로 미약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열 재앙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입니다.

 

 

인간의 완악함도 결국 하나님의 뜻 앞에서 굴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하나님의 뜻에 굴복할 수 없어서 군사를 보냈던 애굽은 결국 홍해에 모두 수장되는 결과를 맞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구원의 노래를 부르면서 여호와가 힘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찬송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문제를 잊어버립니다. 이스라엘이 포로된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잊은 것입니다. 현실의 문제에서만 하나님을 생각했기 때문에 현실이 힘들고 어려울 때 그들에게 하나님은 있으나 마나한 존재였습니다. 차라리 강대국을 의지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러한 이스라엘과 과연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신자는 믿음의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믿음만 있으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지극히 선동적인 허황된 세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높으신 뜻을 가지고 우리를 인도하고 계심을 믿는 믿음의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믿음의 시각으로 하나님의 뜻과 일하심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시각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때문에 어렵고 힘든 일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이라는 것을 전혀 감지할 수 없는 형편이 계속될 때 실망을 하게 되고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힘에 눈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등을 돌리고 대신 세상의 것을 보장해주는 다른 신에게로 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고자 하시면 세상의 모든 것을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를 그러한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세상의 어떤 것도 우리를 살리는 생명이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말씀 안에서 이 같은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참된 것과 헛된 것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는가를 분명히 알게 됩니다.

 

 

참된 생명의 세계는 예수님의 피 없이는 결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돈과 가장 높은 권력을 가지고 생명의 세계의 문을 두드린다고 해도 열려지지 않습니다. 생명의 문은 예수님의 피로써만 열리기 때문에 가장 힘 있고 가치 있는 것은 예수님의 피 흘리신 은혜일뿐입니다.

 

 

이 같은 사실을 여러분이 모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항상 현실의 문제에 급급한 채 살아가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의 은혜보다는 돈의 힘이 더 피부 깊숙이 느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반역하는 길로 들어서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일에는 어린양의 피가 있었을 뿐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에도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의 피가 개입되었을 뿐입니다. 신자는 오직 이 믿음으로 주 앞에 나와야 합니다.

 

 

세상일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당연히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를 덮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든든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신자는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신뢰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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