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3.03.31 10:02

(71강) 미래와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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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29:1-14http://onlycross.net/videos/jer/jer-290114.wmv

설교듣기(클릭하세요)

 

<본문>

 

1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끌고 간 포로 중 남아 있는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냈는데

2 그 때는 여고니야 왕과 왕후와 궁중 내시들과 유다와 예루살렘의 고관들과 기능공과 토공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난 후라

3 유다의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보내어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가게 한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 편으로 말하되

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5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에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6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너희 딸이 남편을 맞아 그들로 자녀를 낳게 하여 너희가 거기에서 번성하고 줄어들지 아니하게 하라

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8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에 있는 선지자들에게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곧이 듣고 믿지 말라

9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설교>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무너지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간 사건을 두고 선지자들은 서로 다른 얘기를 합니다. 한쪽은 이년 안에 하나님이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는 희망적인 예언을 하는 반면(28:3), 예레미야는 그들의 말을 거짓 예언으로 비판을 하면서 칠십 년을 채운 후에야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말을 합니다(28:10).

 

 

예레미야가 비판한 거짓 선지자는 대표적으로 하나냐란 사람인데 이 사람은 바벨론에서 고통의 세월을 보내게 된 유다 백성들에게 힘과 위로와 희망을 주기 위해 이년 안에 돌아온다는 말을 했을 것입니다. 사실 고통에 있는 백성들에게 힘과 위로와 희망이 되는 것은 예레미야보다는 하나냐의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설교 하는 많은 분들이 설교를 통해서 청중에게 힘과 위로와 희망을 주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여겨지는 말은 피하게 되고 소위 긍정적인 말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신다고 하고, 지금은 고통스러워도 믿고 기다리면 복으로 갚아 주신다는 말도 합니다.

 

 

이런 말이 당장은 달콤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하나님이 그렇게 일하시는 분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위로가 되고 희망적인 말로 들린다고 해도 하나님의 일하심에서 벗어났다면 결국 헛된 말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자가 비록 고통과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안다면 자신의 고통과 어려움을 좀 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신자에게 진정한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떠나서 무작정 희망적인 말을 던져서 일시적인 위로를 주려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에는 무관심한 자의 거짓 예언일 뿐입니다.

 

 

사실 예레미야의 예언은 포로 된 백성들에게는 절망을 안겨주는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5,6절을 보면 포로된 백성들에게 그곳에서 집을 짓고 살며 텃밭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고 그 아들이 아내를 맞이하며 딸이 남편을 맞아 자녀를 낳게 하여 거기서 번성하라고 합니다. 이 말은 아예 그곳에서 정착해 살라는 뜻입니다.

 

 

포로 된 자들의 희망은 하루속히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그곳에서 손자 손녀를 보기까지 정착해서 살라고 합니다. 인간적으로 본다면 분명 냉정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희망은커녕 절망만 안겨주는 말입니다. 과연 누가 이러한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며 귀를 기울이겠습니까?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에만 관심을 둡니다. 하나님의 뜻과 일하심 역시 자신을 돕는 것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인간이 원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예레미야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 유다 백성들의 관계에서만 바라볼 뿐입니다.

 

 

 때문에 유다 백성이 포로된 것도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했기 때문이고 마음을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다 백성이 속히 고통에서 벗어나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이 돌아온다고 해도 포로되기 전의 유다의 상태 그대로라면 그들을 포로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됩니다. 무의미한 고통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유다가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다 백성을 포로 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인 줄 알았기 때문에 칠십 년이 차야 한다는 예언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8,9절에서 거짓 선지자와 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라고 합니다. 너희가 꾼 꿈도 믿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같이 인간이 잘되는 방법만 제시할 뿐이고 꿈 역시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습성이기 때문입니다.

 

 

10절에서 예레미야는 또 다시 칠십 년의 포로생활을 말합니다. 칠십 년의 의미는 땅의 안식과 연관이 있다고 했습니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규례에 따라 육년간 농사하고 칠년 째에는 쉬었습니다. 그 같은 규례를 세우신 의미는 땅에서 농사지으며 살아온 것이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잊었습니다. 그 증거가 이방인의 우상을 끌어 들여 섬김으로 큰 부요를 누리고자 한 것입니다. 만약 유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면 그들은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기보다는 주어진 것으로 감사하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를 포로 되게 하심으로 그동안 살아온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았던 자신들의 죄와 함께 은혜를 알게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복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유다가 무너지고 바벨론에 포로 된 고통은 사실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알게 된 신자가 바라보는 삶에 대한 시각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11절에서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바벨론에서의 칠십 년의 고통의 세월은 유다로서는 분명 재앙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며 저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는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라고 합니다. 또한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생존의 문제만 생각한다면 바벨론 포로는 재앙입니다. 희망이 아니라 절망입니다. 바벨론에서의 고통의 세월에 유다의 미래는 없습니다. 하지만 생명의 문제에서 생각한다면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칠십 년이 지난 후 하나님께 마음을 돌이킨 새로운 백성이 되게 하셔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포로라는 고통의 사건이 없었다면 비록 고향 땅에서 편히 산다고 해도 그것이 재앙이고 절망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은 채 이방인과 다를 바 없는 결국을 맞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고향땅에서 편히 산다고 해도 그것은 평안이 아니라 재장일 뿐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다스리십니다. 따라서 편히 사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때로 고통과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해도, 그런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께 마음을 두게 된다면 그것이야 말로 재앙이 아니라 평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고 인도하신다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미래와 희망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의 결국은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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