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2013.04.14 09:40

(73강) 스마야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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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 29:24-32http://onlycross.net/videos/jer/jer-292432.w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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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4 너는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라

2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가 네 이름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와 모든 제사장에게 글을 보내 이르기를

26 여호와께서 너를 제사장 여호야다를 대신하여 제사장을 삼아 여호와의 성전 감독자로 세우심은 모든 미친 자와 선지자 노릇을 하는 자들을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과 목에 씌우는 쇠 고랑을 채우게 하심이어늘

27 이제 네가 어찌하여 너희 중에 선지자 노릇을 하는 아나돗 사람 예레미야를 책망하지 아니하느냐

28 그가 바벨론에 있는 우리에게 편지하기를 오래 지내야 하리니 너희는 집을 짓고 살며 밭을 일구고 그 열매를 먹으라 하셨다 하니라

29 제사장 스바냐가 스마야의 글을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읽어서 들려 줄 때에

30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1 너는 모든 포로에게 전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느헬람 사람 스마야를 두고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그를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스마야가 너희에게 예언하고 너희에게 거짓을 믿게 하였도다

3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느헬람 사람 스마야와 그의 자손을 벌하리니 그가 나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기 때문에 이 백성 중에 살아 남을 그의 자손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내가 내 백성에게 행하려 하는 복된 일을 그가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설교>

 

기독교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절대적인 존재라는 것은 그리스도 외에 어떤 것도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우리 자신도 포함되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 자신까지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지 않고 오직 모든 존귀와 가치는 그리스도께만 있다고 믿는 이것이 그리스도를 절대적인 존재로 믿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세상의 종교는 자기를 위해 신을 찾습니다. 자신에게 가치성을 두면서 자기 가치의 향상을 위해, 그리고 무가치한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신을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믿음과 다른 것입니다. 하지만 제아무리 기독교라 할지라도 자기 존재의 가치향상을 위해 하나님을 찾는 것이라면 세상 종교와 다를 바 없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절대적인 분으로 믿는 믿음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스마야라는 거짓 선지자가 등장합니다. 이 거짓 선지자가 예루살렘에 있는 백성과 제사장 스바냐, 그리고 또 다른 제사장들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스마야가 편지를 쓴 것은 예레미야가 바벨론의 포로 된 유다 백성들에게 쓴 편지에 대한 반발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포로에게 보낸 예레미야의 편지 내용은 바벨론에서 집을 짓고 밭을 만들며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을 때까지 오래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바벨론에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도우심으로 이년 내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외치는 거짓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이 거짓 선지자 중에 스마야가 있었고 이 사람이 예루살렘의 백성과 제사장에게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편지의 내용은 제사장 스바냐에게 ‘너희 직무는 미친 자와 선지자 노릇을 하는 자들을 고랑을 씌우는 것’이라고 하면서 예레미야에게 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행할 것을 촉구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가 참된 선지자인 예레미야를 거짓 선지자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스마야에게는 예레미야가 그렇게 보였을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말대로 하면 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돕지 않으시고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분이 됩니다. 스마야는 이런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백성을 돕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상상해 본 적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스마야에게 바벨론에서 칠십년을 지내야 한다는 예레미야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백성을 절망으로 몰아가는 말로 들렸을 것이고, 그래서 예레미야를 선지자 노릇하는 자로 간주하고 그 같은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스마야는 하나님을 믿는 자를 도우시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믿는 자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신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인식 자체가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의 기독교인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자신이 원하고 생각하는 바대로 모든 일을 이뤄주시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 생각의 다른 점입니다. 인간은 자기 구원에만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을 위해 존재하시고 일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자인 내가 잘 되도록 도와주시는 것이 옳다고 여깁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찾고 믿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믿음의 근거를 자신에게 두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죄 가운데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거짓 선지자도 하나님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자기 구원에 초점을 둔다면 거짓 선지자를 그냥 두고 보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게 되고, 유다 백성을 포로 되게 하시는 것도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예레미야의 말과 스마야의 말은 서로 다릅니다. 누가 거짓 선지자고 누가 참된 선지자인가 하는 것은 이제 유다 백성들이 판단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누가 참된 선지자라고 생각됩니까? 당연히 예레미야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레미야가 외친 말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예레미야가 참된 선지자라는 지식에 의한 판단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스마야의 말과 예레미야의 말에 어떤 차이가 있는가를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과연 누가 진심으로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의 높으신 생각을 드러내는 말을 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포로생활의 고단함이 2년 내에 해결될 것이라는 거짓 예언은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을 인간의 예상에 꿰맞추는 수준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지만 칠십년을 말하는 예레미야의 말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능력과 참된 도우심에 초점을 두게 하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인간의 예상에 맞지 않는 하나님을 말한다는 것 때문에 거짓 선지자가 도리어 참된 선지자를 거짓 선지자로 고발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인간의 예상을 초월하여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인간이 예상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의 틀에 갇혀 있는 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인간의 예상대로 움직이는 하나님이라면 믿음에 있어서 긴장감은 찾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믿음은 예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 즉 하나님의 능력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내용처럼 하늘의 뜻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분명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땅에서 이루시는 방향으로 되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로 생활이 2년 내에 끝날 것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뜻과 소원을 하나님의 뜻인 양 변개시켜서 그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으로 여기는 것이기에 거짓 예언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32절에 보면 “내가 내 백성에게 행하려 하는 복된 일을 그가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합니다. 스마야는 하나님이 포로 된 백성에게 행하고자 하시는 복된 일을 보지 못합니다. 스마야가 생각한 복된 일은 2년 내에 포로 생활이 끝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행하려 하는 복된 일은 30:22절의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리라”는 말씀처럼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포로생활을 통해서 여호와께 마음을 두는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칠십년 포로 생활은 이 같은 하나님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뜻을 볼 수 있는 그가 참된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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