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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3:10)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벌거벗은 몸을 가리라고 하지 않으셨다. 인간의 벌거벗음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인간은 벌거벗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아도 된다. 아담과 그의 아내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다는 내용도 있으니(2:25) 선악과를 먹기 전까지는 벌거벗은 것을 의식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후에 하나님이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이다. 우리의 신앙 상식에 비추어 보면 하나님이 부르시는 소리에 아담이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먹지 말라 하시고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는다고 하신 말씀을 어긴 행동이어야 한다. 선악과를 먹었으니 죽는다는 것에도 두려움이 있어야 한다.

 

 

인간이 벌거벗었다 해도 죽는 것은 아니며 분명히 선악과를 먹은 행동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말씀을 순종하지 않은 행동보다 벌거벗은 몸의 상태를 두려워한 것일까? 벌거벗은 것은 하나님이 창조해 주신 모습 그대로인데 말이다.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벗은 것을 두려워한 반응도 이상하다. 벗었다는 것이 두려움이 되는 상황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일반적인 반응은 부끄러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은 아담 이후의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를 통해 알 수 있다. 하나님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벗은 것이 두려움이 되게 하고 숨게 한 그 속성이 지금의 우리에게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또한 아담의 속성으로 하나님을 신앙하고 행동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하는 아담에게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3:11)라고 추궁하신다.

 

 

누구도 아담에게 벗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슨 뜻으로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라고 추궁하시는 것일까? 또한 이러한 추궁 다음에는 벗었음을 알려준 이로 추측되는 존재를 언급하시는 것이 내용의 흐름에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누구냐?’라고 물었으니 그가 하와냐? 아니면 사탄이냐?’라고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추궁도 이상하다.

 

 

그런데 이렇게 이상한 하나님의 이야기를 도무지 이상하다는 느낌이 없이 마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쉽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어쩌면 인간의 이상함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감각의 둔함 때문일 수 있다.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에게만 관심을 두고 신앙을 유지하려고 힘쓰는 것을 이상한 것으로 감지하지 못하는 무지 때문에 우리의 생각에 맞지 않는 성경인데도 이상하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이 누가 너의 벗었음을 알렸느냐라고 하시고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라고 하신 것은 선악과를 먹은 속성이 벗었음을 알게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아담이 아담 자신에게 알린 것이다. 단지 벗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벗고 있는 몸을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두려워한 것이 문제다.

 

 

벗은 것은 부끄러운 것이고 하나님은 부끄러운 모습의 자신을 기뻐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벗은 몸의 상태를 두려움으로 반응하게 한 것이다. 이것이 선악과를 먹은 아담의 속성이며 인간에게 있게 된 선악 개념이다. 하나님은 문제 삼지 않으시는 것을 인간이 스스로 문제로 삼으면서 잘못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우리가 신앙 문제로 두려워하게 되는 것도 이러한 아담의 속성 그대로다. 하나님은 전혀 문제 삼지 않으시는 것을 우리가 스스로 문제 삼으면서 천국 가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것이 먹지 말라고 한 말씀을 어긴 것보다 벗은 몸으로 두려워하는 아담 안에 있는 인간의 실상이다.

 

 

신앙생활에 게으른 것으로는 염려하고 두려워하면서도 자기에게 모든 관심을 두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도무지 두려워하지 않는 우리 자신을 생각해 보라.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 살고 자기를 목적으로 하나님을 찾으면서도 그것이 말씀에서 벗어난 죽은 자의 모습임을 의식조차 하지 못하는 것이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보다 벌거벗은 것이 두려움이 되는 아담과 같다는 것이다.

 

 

아담이 숨은 것은 벌거벗은 몸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을 것이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모습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인간의 신앙생활은 이러한 선악 개념으로 자기를 위한 것으로 뭉쳐질 뿐이다.

 

 

인간의 불행은 자신이 원하는 다른 모습을 바라고 꿈꾸게 되면서 하나님이 만드신 자신으로 감사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수치로 느껴지는 부분을 가린 것은, 타인에게 부끄러운 자로 보이는 것을 싫어하고 부끄러움을 가리는 인간의 지혜다. 이런 지혜 안에서 자기 수치를 가려줄 도구인 치마가 선한 것으로 간주 될 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선악 개념이 죄로 규정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왜냐하면 인간의 선악 개념은 신앙도 자신에게 득이 되어야 한다고 고집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위한 신앙으로 말한다 해도 그 속 마음에는 예수님을 위해 살면 나에게 복으로 돌아온다는 기대가 담겨 있다. 인간의 이익을 위해 오신 예수님이 아니고 십자가가 아님을 도무지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선악 개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벗은 것이 두려움이 되어 숨은 아담에게서 인간이란 존재의 실상을 찾는 것이다. 그럴 때 인간을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하나님의 행위에서 우리의 참된 수치를 가려주기 위해 예수를 보내시고 피 흘리게 하신 영원한 은총과 사랑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두려움이 없는 신앙을 소원해 본다.

2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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