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11 15:51

말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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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성구 묵상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3:9)

 

한국교회에서 십일조는 철저하게 돈으로 인식되어 있다. 하나님이 주신 소득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니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말라기 내용을 배경으로 하여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고 저주받을 죄로 강조한다. 또한 온전한 십일조를 바쳐서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고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지 않는지 시험해보라고도 한다.

 

 

여기에 소유를 팔아 얼마를 감추고 나머지를 사도에게 가져왔다가 사탄이 마음에 가득하여 성령을 속였다는 책망을 받고 죽임을 당한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야기를 덧붙이기도 한다. 온전한 십일조를 소득에서 정확하게 십분의 일을 바치는 것으로 해석하면서 돈이 아까워 얼마라도 감추는 것은 성령을 속이는 것이며 저주를 받게 된다는 뜻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교인들에게 불안감과 두려움을 심어주어 십일조를 충실하게 하려는 의도임을 부인할 수 없다. 교회가 십일조를 돈으로 인식하고 돈을 목적하기에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해석과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십일조에 대한 간증도 다르지 않다. 십일조를 하지 않았을 때는 일이 안 되고 소득도 줄었는데, 십일조를 제대로 하면서부터 소득이 몇 배, 몇십 배로 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간증이 사실이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면 십일조 하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결과와 경험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현대 교회가 알고 있는 십일조는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먼저 말 3:10절의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라는 말에서 창고는 하늘에 있는 창고를 의미하고,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는 것은 하늘의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치는 십일조, 즉 돈이 하늘의 창고에 들어가는 것일까? 또한 하나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바치는 돈이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께 양식이 된다는 웃지 못할 괴변이 된다.

 

 

십일조 하는 우리의 정성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기 때문에 하늘 창고에 쌓이고 그것이 상급이 된다는 말로 정당화하기도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이 인간의 정성을 받으신다는 내용은 없다. 인간의 종교성에 의해 조작된 말일 뿐이다. 따라서 하늘의 창고에 들여지는 온전한 십일조는 돈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은 복의 출처가 하늘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가 복으로 강조하는 돈, 물질의 출처는 땅이지 하늘이 아니다. 하늘의 복이 아니란 것이다. 따라서 교회 생활을 하면서 소득에서 십분의 일을 정확히 계산하여 바친다 해도 그것이 온전한 십일조로 인정되어 하늘 문을 열고 돈, 물질이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시는 복은 성경에 없다.

 

 

그렇게 보면 교회가 돈을 목적으로 한 십일조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을 증거 하는 온전한 십일조가 훼방을 받는다. 교인의 십일조로 구제와 선교 등 여러 가지 교회 사업을 한다는 이유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으로 말하지만 그것은 십일조를 믿음의 행위로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일 뿐이다. 결국 교회가 십일조로 교인들에게 횡포를 부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현실이다.

 

 

십일조는 창 14장에서 아브람이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한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만난 멜기세덱에게 십분의 일을 준 것으로 시작한다. 살렘 왕이며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은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7:3). 낳고 죽는 것이 없는 하늘에 속한 분이라는 뜻이며 왕과 영원한 제사장으로 오신 예수님을 가리킨다.

 

 

멜기세덱이 아브람을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14:19)라고 축복하고 아브람은 십분의 일을 바친다. 그래서 십일조를 바치면 복을 받는다는 것은 잘못된 말이다. 축복 후에 십분의 일을 바쳤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대적을 아브람의 손에 붙이심으로 주신 승리임을 증거 한다. 아브람은 전쟁에서 자신의 힘으로 승리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 전리품에서 좋은 것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바친다(7:4). 좋은 것을 바쳤다는 것은 전부를 바쳤다는 뜻이다. 이것이 나의 힘으로 얻은 나의 것이 아니다라는 의미로 시작된 십일조다.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얻게 하신 하나님의 것을 돌려드린 것임을 주지해야 한다.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등장한다. 떡과 포도주는 예수님의 몸과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고전 11:24-25). 즉 멜기세덱을 통해서 새 언약으로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이 되어주심을 증거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은 십자가에서 몸과 피를 버리심으로 생명이 되어주시고 우리의 승리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다. 그렇다면 우리가 복을 받기 위해서 뭔가를 행하고자 하는 것은 하늘의 복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십일조를 통하여 복을 받겠다는 것은 십자가를 훼방하고 멸시하는 것이 된다.

 

 

온전한 십일조는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언약을 이루신 예수를 믿는 믿음이다. 믿음으로 뭔가를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피가 생명임을 믿고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십일조가 된다. 따라서 인간이 십자가의 피의 은혜가 자신을 존재하게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행함을 높인다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며 이들에게는 저주만 있다.

 

 

하늘의 창고는 예수님의 은혜로 채워졌으며 예수님이 양식이 된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믿음을 선물로 받은 신자는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고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신 복을 받은 부요한 자다. 이러한 복의 사람으로 십자가의 의를 높이는 것이 온전한 십일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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