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2 18:41

딤전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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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딤전 5:23)

 

성경을 문자의 뜻 그대로 개개인에게 적용하는 해석을 하게 되면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성경은 의미에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일맥상통하지만, 문자로는 서로 충돌하는 것을 성경 곳곳에서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그중의 하나가 기독교인이 술을 마셔도 되는가? 아니면 마시지 않아야 하는가?’라는 문제다.

 

 

성경에는 술을 마시지 말라는 내용이 있다. 반면에 바울이 디모데에게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라고 말한 것처럼 술을 허용하는 듯한 내용도 있다. 그래서 이런 문구들을 근거로 음주라는 행위의 정당성, 또는 불가함을 주장하지만 결국 자가당착에 빠지는 모순만 초래한다. 왜냐하면 말한 것처럼 성경은 일관적으로 술을 금하거나, 허용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잠 9:5절에는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라고 말씀하는 데 반해 잠 20:1절에서는 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라고 말한다. 이 외에도 여러 구절에서 포도주를 금하고 또는 허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 하는가?

 

 

그래서 절충안이 등장하는데 성경은 술을 금하지는 않지만 취하지 않아야 한다라는 것이다. 물론 이 주장의 근거도 성경이다(21:34, 5:18, 5:21, 벧전 4:3). 예수님이 술을 금한 것은 아니지만 취하지 말라 하셨고, 바울도 포도주를 약으로 사용하는 것은 허용했으나 취하는 것은 금했다는 것이다.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한 이유도 디모데가 병 때문에 포도주를 쓰면서 절제하지 못하고 취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성경이 예수님만을 증거 한다는 기본에서 벗어나 경건한 신자 되고자 하는 자기 의도에 충실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오직 십자가 복음만 증거 한 바울은 무슨 이유로 디모데의 병과 포도주에 관한 말을 하는가? 바울의 의도는 물만 마시지 말고하는 말에서 찾을 수 있다. 디모데가 물만 마신 것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았다는 뜻인데 그 이유는 유대인의 금욕적 신앙의 영향을 받은 것에 그 가능성을 둘 수 있다.

 

 

당시에는 수질이 좋지 않아 오염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포도주를 음료처럼 사용하였는데 디모데는 물만 마셨기에 그로 인해 위장에 문제가 생긴 것일 수 있다. 그 외에 다른 병이 있었고 포도주가 민간요법으로 사용되었는데 디모데는 자신의 정결한 신앙을 위해 물만 마셨던 것이 아닌가 싶다. 몸의 건강보다 포도주를 금하는 정결한 신앙을 더 중요시한 것이다.

 

 

그러면 바울이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한 것은 디모데의 건강을 염려한 것인가? ‘몸이 건강해야 열심히 복음의 일을 할 수 있다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바울에게도 육체의 가시로 표현한 병이 있었음을 생각하면 그러한 해석은 복음에 미치지 못한다. 무엇보다 성경은 개인의 건강, 개인의 사정, 개인의 신앙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디모데의 건강 여부가 복음에 필요한 요소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건강하든 건강하지 않든 복음의 증거는 주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바울도 디모데도 복음을 증거 하시는 주의 일에 사용되는 도구다. 주가 하시는 일이라면 개인의 정결한 신앙이 복음 증거에 도움 된다는 생각은 접어야 한다. 그런데 대개의 기독교인은 자신이 바르게 살지 못하면 복음 증거에 걸림돌이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가령 술을 마시는 것은 신자답지 않게 보일 수 있고 그것이 복음 전도에 지장이 될 수 있다는 염려가 있다. 그런 이유로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을 복음 전도를 위한 신앙적인 삶으로 여기지만 오히려 유대교 적 사고일 뿐이다.

 

 

기독교인은 믿는 자로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에 민감하다. 정결한 신앙을 위해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고 하면서 술과 함께 담배를 금하기도 한다. ‘그러면 담배를 피워도 되는가?’라는 의문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의문이 십자가 복음이 아닌 자기의 정결한 신앙을 중요시한다는 증거다. 우리가 무엇을 금하든 그것이 정결한 신앙으로 인정되지 않음을 생각지 않는 것이다.

 

 

22절을 보면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라고 말한다.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라는 것은 사람에게 초점을 두지 말라는 뜻이다. 사람에게 초점을 두면 그에게 복음을 아는 지혜가 있는가?’의 여부보다 사회적 신분이나 조건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결국 교회의 운영을 위한 재정에 도움이 되는가를 따지며 아무에게나 경솔히 인수하는 사태가 초래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이 아니라 복음에만 관심 둘 것을 교회를 목회하는 디모데에게 권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죄를 간섭하는 것은 죄를 지적하여 고치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다. 바른 신앙인이 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신자가 술을 마시면 안 된다라고 지적하는 것은 술 마신 것을 죄로 여기고 간섭하는 것이 된다. 술을 금하는 자신은 신앙을 지키는 것으로 여기고 다른 사람의 신앙까지 간섭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복음이 말하는 정결에서 어긋난다. 신자의 정결은 어떤 행동을 금하여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죄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피가 용서의 능력이 됨을 믿는 관계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십자가의 도를 믿는 것이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자의 정결은 성령이 죄를 깨닫게 하고 죄의 자리에서 주의 은혜에만 매이게 되는 것으로 지켜진다.

 

 

따라서 바울이 포도주를 쓰라고 말한 것은 술을 마셔도 된다라는 취지가 아니라 주께서 디모데를 부르신 뜻이 포도주를 금하고 물만 마시는 정결한 신자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위한 도구 되게 하는 것에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자의 몸이 복음을 위한 도구이지만 행동을 금하여 신앙을 정결하게 지키는 방식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몸에 대한 복음적 시각이다.

 

 

 

주께서 허락하신 몸은 주를 높이기 위한 도구이지 나의 신앙을 보여주고 가치 있는 존재로 드러나는 용도가 아니다. 그래도 여전히 그러면 아무것도 금하지 않고 술을 마셔도 되는가?’라고 묻고 싶다면 해 줄 말은 하나다. ‘에라~ 인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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