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02 11:40

요 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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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7:38)

 

인간은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에 의해 존재한다. 하나님의 뜻이 있어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지 사람이 어떻게 사는가에 있지 않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지 사람이 연구하고 분석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오로지 자신이 사는 것에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을 찾는다. 내가 중요하고 내 사는 문제가 중요하니까 내게 관심을 가지고 나를 사랑하고 나의 문제를 도와달라는 것이다.

 

 

물론 빈손으로 찾지 않는다. 평소에 성실하게 예배하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선한 생활에 힘쓴 자기 업적을 들고나온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을 성경을 펼치면서 자각해야 하는데 그것이 없기에 늘 오해와 착각에서 헤매는 것이고 본문과 같은 말씀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고전 3:16절에 보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라고 말한다. 이것을 성전은 거룩하고 깨끗한 곳이기 때문에 신자는 자기 몸을 거룩하고 깨끗하게 지켜야 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것을 위해 건강을 해치는 술 담배를 금하고 악하고 더러운 유혹에 빠지지 않고 선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해석이다. 내가 성전이라는 것이 중점을 두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성전일까? 아니면 사람일까?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 사람을 존재하게 하신 것일까? 아니면 사람을 위해서 성전을 세우신 것일까? 답은 성전을 위해서다. 그런데 자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성전을 자기를 위한 수단과 도구로 바라본 것이다. 성전의 제사를 위해 제물을 바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은 쪽으로 해결되고 그것이 자신에게 복으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거짓임을 드러내는 말이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말이다.

 

 

본문의 말씀이 성전과 연결되어 있다. 본문은 명절 끝날에 하신 말씀인데 초막절을 말한다. 이처럼 초막절의 끝날에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와 같은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시는 것은 유대인이 행했던 초막절 의식과 연관이 있다.

 

 

초막절은 건기가 끝나고 우기가 시작되는 때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필요한 비를 내려주시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행하는 의식이 있다. 초막절 끝날에 행하는 이 의식은 제사장들이 실로암 연못에 가서 물동이에 물을 길어 성전 제단 위에 붓는 것이다. 이 물이 흐르는 곳마다 과실 나무가 자라고 잎이 시들지 않고 열매가 끊이지 않는 번성의 의미로 행하는 것이다.

 

 

47장을 보면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내용이 있다. 그 물이 강이 되고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바닷물이 되살아나고,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라는 내용을 제단에 물을 붓는 의식에 담아 기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강이 되도록 차고 넘쳐서 자신들이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유대인의 이 의식을 염두에 두고 생수의 강을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성전이 없어서 제단에 물을 붓는 의식은 하지 못하지만 성경에 있는 대로 초막절을 지킨다고 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풍성한 열매로 배부르게 하신 은혜를 감사하고 그 은혜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현대 기독교인의 갈망은 초막절 의식을 행하는 유대인과 다르지 않다. 이것이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에 중요성을 두는 인간의 악함이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는 말씀은 요 4장의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에서 그 의미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에 온 목적은 당연히 자신을 위한 물을 긷는 것이다. 이 여인에게서 우리는 자기를 위해 예수를 찾고 예배당에 나와 온갖 의식과 형식을 따르는 현실을 보게 된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3-13)라고 말씀한다.

 

 

우리는 대개 우물의 물을 세상의 물질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세상의 것이 우리를 목마르지 않게 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주신 물은 말씀, 성령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하면서 그것이 우리를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생수가 되기에 말씀을 보고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이것도 결국 자신을 중심에 둔 해석이다. ‘어떻게 하면 내가 예수님이 주는 물을 마시고 영생을 얻을 수 있는가?’에 관심이 집중된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내가 주는 물을 마시면 영생을 얻는다가 아니라 예수님이 주는 물은 물을 마신 자의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즉 예수님이 주는 물이 마신 자의 속에서 그를 샘물, 우물이 되게 한다는 뜻이다.

 

 

여인이 자기를 위해 우물을 찾았지만, 예수님이 주신 물은 여인을 우물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물이 된 여인은 그 속에 예수님이 주신 물이 있기에 영원히 목마르지 않다. 다시 말해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은 물이 솟아 나와 그 물을 전하는 도구가 된다는 의미다. 이것이 신자를 존재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것은 이미 배부름과 만족을 얻은 상태라는 뜻이다. 자기의 배부름과 만족을 위해서라면 생수의 강은 외부에서 자신에게로 흘러들어와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현대 교회가 말하는 믿음이 크게 잘못되어 있다는 증거다. 믿음은 목마르지 않은 배부른 상태에서 나의 만족과 배부름이 되시는 그분을 나타내고 증거 하는 것이지 나의 만족과 배부름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를 목적으로 하는 그것이 종교다.

 

 

 

39절에 보면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라고 말한다. 신자에게서 흘러나오는 생수의 강은 성령이다. 성령이 어떻게 흘러나온다는 것일까? 성전에서의 온전한 제사를 이루신 예수님의 피가 구원의 능력임을 고백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성령이 죄를 알게 하는 것은 우리를 생수의 강이 흐르는 성전이 되게 하고 샘물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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