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08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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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16:16)

 

지구 종말을 주제로 한 영화가 많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좋은 소재이다 보니 영화사들이 제작에 나서는 게 아닌가 싶다. 더군다나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 기온 현상에 대한 뉴스가 자주 등장하는 현실에서 지구 종말의 문제는 사람의 관심거리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현실이 흥행을 중요시하는 영화감독의 상상력을 움직이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종말 영화는 아마겟돈인터스텔라인데 알다시피 아마겟돈이란 용어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한다. 그리고 아마겟돈이란 용어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지구의 종말을 가져오는 최후의 전쟁으로 이해한다.

 

 

영화 아마겟돈은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위기에 처했을 때 나사(미 항공우주국)가 우주인을 보내 핵탄두를 이용해서 행성의 진로를 변경하여 지구를 구한다는 뻔한 결말로 이어지는데 천문학자들은 그러한 일이 현실이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고도 한다. 어쨌든 사람들은 아마겟돈을 지구를 멸망하게 할 전쟁으로 이해한다는 점에서 아직 현실이 아닌 미래에 있을 수 있는 전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기독교인 역시 거의 그런 의미로 알고 있다.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아마겟돈은 어떤 전쟁일까? 먼저 세 영이 아마겟돈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고 말한 것을 보면 세 영이 주도하여 일으킨 전쟁임을 알 수 있다. 세 영의 정체는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 귀신의 영이다(16:13). 그리고 이들이 왕들을 모은 이유는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해서다(16:14). 따라서 지구를 멸망시키는 최후의 전쟁이라고 하는 아마겟돈은 인간의 상상력에 의한 작품일 뿐이다.

 

 

14절에 보면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라고 말한다.

 

 

귀신의 영이 왕들을 모으는 방법은 이적이다. 이것은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한 것과도 같다.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은 사람들을 모으기에 충분한 이적이다. 마귀가 예수님께 그런 이적을 행하라고 한 것은 예수님을 세상이 좋아하고 환영할 메시아로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온 세 더러운 영은 거짓말하는 영을 의미한다. 세 영의 거짓말은 예수가 인간을 돕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생존에 필요한 떡을 주고 세상의 영광과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 이적으로 지켜준다는 말로 속인다. 그리고 세상은 이러한 거짓말 아래 모인다. 오늘날 교회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이고 가르치는 예수가 어떤 존재인가를 살펴보면 교회가 더러운 영의 거짓말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마귀의 사고방식에 하나 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날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온전히 드러난 날을 의미한다. 즉 사람의 힘으로는 되지 않은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께서 되게 하신 것이 전능하심이다. 따라서 큰 날은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의 능력이 되신 것을 말한다. 예수님의 피로 인해 예수 안에서 죄 없는 거룩한 자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함께 하게 되는 사람으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이 이루어진 것이다.

 

 

마귀는 하나님의 이러한 구원 방식을 싫어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큰 날에는 전쟁이 있을 수밖에 없고 마귀의 전쟁은 하나님의 구원 방식을 거부하고 인간의 힘으로도 가능한 구원으로 인간을 지배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인간이 원하는 이적으로 자기의 사람을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세 영이 왕들을 모으는 장소를 아마겟돈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겟돈은 므깃도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산을 의미하는 ‘Har’와 므깃도를 의미하는 ‘Magedon’이 합쳐져 므깃도의 산을 뜻한다는 것이다. 단지 발음의 유사성 때문에 므깃도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도 있지만 성경에 한 번 등장하는 아마겟돈의 뜻을 정확히 찾을 방법이 없음을 생각하면 므깃도로 보는 것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 따라서 므깃도에서 아마겟돈 전쟁의 의미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성경에 므깃도라는 말은 많이 등장하지 않은데 슥 12:11절의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라는 내용이 아마겟돈을 이해하는데 열쇠가 될 수 있다.

 

 

예루살렘의 큰 애통은 하나님이 부어주신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에 의한 것이며 자신이 찌른 그를 바라봄으로 나오는 애통이다(12:10). 따라서 이 애통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애통하는 자가 있을 것임을 예언하는 것이다. 자기를 위해 예수를 찾은 자신이 예수를 찌른 자임을 깨닫고 십자가에 피 흘리신 예수를 바라보고 애통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애통이 하나님이 부어주신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에 의해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므깃도 골짜기에서 애통이 있었을 만한 사건은 요시야의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왕하 23:29). 유다를 신앙으로 잘 다스렸던 요시야 왕의 죽음은 백성들에게 큰 상실로 다가왔을 것이고 그로 인해 애통을 했다면 예루살렘의 큰 애통 또한 상실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찌른 자가 자신임을 깨달았을 때 그동안 자랑이 되었던 자신이 행한 믿음의 공로가 거짓이고 헛된 것임을 알게 된 상실로 인한 애통이다. 자신이 예수를 찌른 박해자였음을 알지 못하고 복과 구원을 위해 예수를 섬긴다고 했던 거짓 됨에 마음이 상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다(51:17).

 

 

 

세 영은 이적을 바라보고 모인 자들을 세상 속의 자기로 인해 애통하게 한다. 자신의 열심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목적이기에 목적한 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애통이다. 결국 애통의 의미가 다르다. 이것이 아마겟돈에서 벌어진 전쟁이며 지금의 현실이다. 십자가에서 자신의 실패를 깨닫고 애통하는 은혜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상실로 인한 애통의 충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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