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24 12:12

고후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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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고후 13:5)

 

인간의 믿음은 육신의 복과 영혼 구원에 목적을 두고 시작한다. 따라서 자기가 아닌 예수께 뜻을 두고 믿음을 시작하는 인간은 없다. 그런데 자기로 시작하는 믿음의 거짓됨을 깨닫고 자기 믿음을 부인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은 성령으로 인해 존재하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이들이 성도이며 성도는 믿음을 자신의 상태를 근거로 확인하고 확증하지 않는다. 자기 믿음을 거짓된 것으로 부인하게 되는 것이 성령이 함께하는 성도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은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라고 한다. 또한 너희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 줄을 스스로 알지 못하면 버림받은 자라고 한다. 버림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 밖에 있음을 의미하기에 기독교인은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자신의 구원과 연결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부담을 느끼면서 자신이 과연 믿음에 있는가를 시험하여 확증하고 싶어 하고, 자기 안에 예수님이 계신다는 것을 확인할 방법에도 관심을 두는 것이다.

 

 

구원을 믿음의 중요한 목적으로 삼고 교회를 찾는 사람들에게 교회는 바울의 말을 인용하여 신자는 계속적으로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여 자신에 대한 확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과연 구원받을 만한 것인지 아니면 헛된 믿음인지를 계속해서 시험하고 확증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교인들은 자기의 믿음을 확인하여 구원의 안정성과 확고함을 확보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믿음을 무엇으로 시험하여 확증할 수 있으며,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은 또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래서 결국 교회에서 목사가 가르치는 믿음의 증표가 자신에게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고, 없으면 증표가 되는 신앙의 삶을 살아서 그것으로 자신을 확증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구원의 증표를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은 버림받은 자임을 보여준다.

 

 

우리가 믿음 안에 있는가를 시험해본다면 그 기준에 바른 삶, 성화 등 여러 항목이 요구되지 않는다. 다만 사랑 하나면 충분하다.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했으니 이웃을 사랑한다면 그것 하나로도 율법을 다 이룬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되지 않겠는가?

 

 

그러면 이제 자신에게 묻자. ‘나는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가?’ 이 물음에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다면 그는 율법을 다 이룬 완성자이고 의에 있어서 예수님과 동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의가 없이도 자기 의로 구원받는 자가 된다. 하지만 반대로 아니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믿음이 없다는 뜻이 된다. 다시 말해서 믿음에 실패자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자신을 시험했을 때 확증되는 결론이다.

 

 

사람들은 믿음을 시험하여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자신의 노력으로 채우면 된다고 생각한다. 구원을 확증할 수 있는 좋은 믿음으로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의 실패자라는 말 자체를 거부한다. 오늘은 실패해도 내일 열심을 내어 잘하면 좋은 믿음을 이룰 가능성이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믿음을 시험하고 또 시험한다 해도 드러나는 것은 실패자라는 사실 뿐이다. 그리고 믿음의 실패자가 자기에 대한 확증으로 되어 있는 자가 성도다. 이러한 성도는 자신의 믿음을 신뢰하지 않는다. 어떤 행함에도 믿음의 의미를 두지 않는다. 구제, 전도, 선교, 기도, 헌금, 봉사, 헌신, 등등을 행한다 해도 성도는 자기를 실패자로만 바라본다. 그렇게 실패자로 있을 때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의 부름의 소리를 듣게 되고 이들이 구원받은 성도로 증거된다.

 

 

그래서 교회는 교인들에게 열심을 내어 좋은 믿음으로 자라가야 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믿음의 실패자라는 것을 쉬지 않고 외쳐야 한다. 십자가 앞에 실패자로 나오도록 하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믿음의 실패자라는 것 때문에 교회 일에 게을러지고 믿음을 포기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고 반문한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교회에 뜻을 두고 교회를 목적으로 하는 사탄의 일꾼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성도는 예수님 앞에 실패자로 서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은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믿는다. 이것이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이며 이 믿음 안에 있는 성도는 자기를 실패자로만 바라볼 뿐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음 안에 있는가를 확인하고 확증하는 데에 관심을 둔다. 믿음 안에 있다는 것이 확인되어야 구원 문제에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버림받은 자가 되지 않고 구원받는 것이 믿음의 최종 목적이기에 자신이 열심을 내고 힘써야 할 일이 있음을 포기하지 않는다. 믿음 안에 있다는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현대교회가 이해하는 믿음에는 인간의 것이 들어간다. 인간의 열심과 선함과 의가 들어있는 믿음을 믿음으로 알기 때문에 선함과 의를 실천하고 있는가로 자기를 살피고 확인한다. 그리고 그 믿음 안에서 자기가 행한 것을 자랑한다. 이 믿음에서 인간은 실패자가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과 다른 믿음이라는 것이다.

 

 

참된 믿음 안은 예수님의 의만 넘친다. 예수 안에 있게 되면 내가 행한 것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버려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나를 실패자로 남게 하는 것이 믿음 안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본래 버림받은 자다. 버림받은 자들 가운데서 건져내어 예수님이 행하신 일만 믿게 하는 것이 성령의 작업이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십자가에 죽고 다시 사신 예수님을 전파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신다는 뜻이다. 즉 바울은 예수님이 너희 안에 계시는가를 확인하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전파할 용도로 버림받은 너희를 건졌음을 아는가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을 자기 구원을 위한 용도로 여기고 예수를 찾는 것은 버림받은 인간의 본래 모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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