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08 11:29

롬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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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0:10)

 

기독교인에게는 구원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그것은 기독교에만, 교회 안에만 구원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것인데 기독교만 예수를 믿고,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셨다는 것이 이유다. 만약 이들에게 구원은 기독교 밖에도, 교회 밖에도 있다라고 말한다면 아마 몹시 불쾌해하면서 종교다원주의자, 또는 자유주의 신학 사상자로 몰아붙일 것이다.

 

 

그러면 생각해 보자. 복음은 구원이 기독교에만, 교회 안에만 있다고 말하는가? 복음에는 그러한 내용이 없다. 복음은 구원을 기독교, 교회로 조건 지우지 않는다. 기독교라는 종교와 교회라는 단체의 울타리를 무너뜨리고 누구라도 사람이 마음으로 믿으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 바울이 전파하는 복음이다. 다시 말해서 복음이 증거하는 구원은 기독교적 행위와 수고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것이 참된 기독교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구원 이후를 말한다. 구원받았으면 구원받은 사람다운 믿음의 행동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전부인 구원을 미심쩍어하고 도무지 신뢰하지 않는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구원이 행함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행해야 하는 부담과 수고의 짐이 사라지게 되는데 행함을 붙들고 놓지 않는다. 그 이유는 자신의 수고와 노력이 담긴 믿음이 더 확실하고 신뢰가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믿음만 아니라 자기 행함이 개입된 믿음의 길을 선택한다. 바울은 행함을 주장하는 믿음의 길에서 나타나는 오류에 대해 지적하는데도 도무지 알아듣지 못한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는 것은 사람이 말씀을 행하여 이르는 의는 없다는 뜻이다.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것 또한 행함을 배제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을 쉬운 일로 여긴다.

 

 

사실 생각해 보면 어렵지 않다. 누구나 마음으로 예수를 믿는다고 할 것이고,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믿습니다라고 입으로 시인하고 고백한다. 그것으로 구원이 된다면 정말 쉬운 구원이다. 그래서 신뢰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나 받는 쉬운 구원보다 어려운 구원을 더 구원다운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령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 문제가 누구나 아는 쉬운 수준이면 모두가 100점을 맞는다. 그런 경우 실력 좋은 학생은 불만이겠지만 실력 없는 학생은 좋아한다. 자신의 실력으로 100점을 맞았으니 얼마나 기쁘고 좋겠는가? 그 학생은 시험 문제가 쉬운 것을 감사할 것이다.

 

 

그런데 구원은 쉽지 않은 정도를 넘어서 인간의 힘으로는 아예 불가능하다. 마음으로 믿는 것도 입으로 시인하는 것도 우리의 힘으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런데 구원의 불가능성을 생각하지 않기에 행함으로 믿음을 채워야 한다는 주장을 버리지 못한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성경이 증거하는 데도 선물을 받았으면 보답을 하는 것이 선물 받은 사람의 도리다라는 말로 계속 행함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행함이 없는 구원은 구원답지 않게 여기는 사탄의 사고방식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만 이루어진 구원을 싫어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의 힘으로는 의에 이를 수 없고 구원에도 이를 수 없다. 따라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임을 전제해야 한다. 교회를 다니고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이유로 마음으로 예수를 믿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은 그저 착각이다. 입으로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것 또한 예수를 시인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은 예수 믿지 않은 가족이 죽을 때 지옥 갈 것을 염려한다. 그래서 죽기 전이라도 예수 믿는다고 말하면 구원받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예수 믿는다는 말 한마디만 하라고 종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자기 마음 편해지고자 하는 것이다. 예수 믿지 않고 지옥 갔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 믿는다고 고백했으니 천국 가지 않았을까? 라는 안도감을 바라는 것이다.

 

 

우리가 마음으로 믿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이다. 그리고 입으로 시인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 주시라는 것이다(10:9). 아마 모든 기독교인은 자신이 그렇게 믿고 시인한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도무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믿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믿음의 내용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는 것은 단지 부활을 믿으라는 뜻이 아니다. 17:31절에 보면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것을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신 것으로 말한다. 부활을 믿음의 증거로 주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시 사신 부활을 믿는다면 믿음의 증거를 눈에 보이는 행함과 경험에서 찾지 않아야 한다. 부활을 믿는 믿음을 믿음의 증거로 주셨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믿음의 증거가 된다. 이 믿음이 의에 이르게 한다. 이것은 우리의 힘으로 가능한 믿음이 아니기에 불가능한 믿음이라는 것이다.

 

 

신자는 예수를 주로 받았다. 이것이 입으로 시인되어야 한다. 2:6,7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라고 말한다.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예수를 주로 받아 예수 안에 뿌리를 박고 행하는 신자에게서 나오는 말을 의미한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이루신 일로 감사함이 넘치는 말이 입으로 주를 시인하는 것이다. 신자는 예수 안에 뿌리를 받고 있기에 예수님의 일만 말한다. 이것이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며 이 또한 우리로는 불가능하다. 인간은 본래 자기에게 뿌리를 박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피의 능력은 기독교, 교회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게 미친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고, 구원의 능력은 행함을 벗어나 자유 하게 하며 주만 자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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