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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2:26)

 

기독교인에게 믿음과 행함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믿음은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일반적인 생각에서 삶의 변화가 없는 자신을 자책하며 믿음에 불안감을 가지기도 한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라는 야고보의 말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행함을 강조하는 듯한 야고보의 말이 우리의 이해 안에서는 오직 믿음만 말하는 바울과 부딪힌다는 것이다. 이것을 바울은 믿음에만 구원의 능력이 없음을 말한 것이지 행함 자체를 무시하거나 거부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해결하려고도 하지만 이는 결국 행함을 중시하며 믿음은 행함으로 증거된다라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줄 뿐이다.

 

 

분명한 것은 바울이 전한 복음과 야고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 배운 것도 받은 것도 아니고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기 때문에 서로 모순되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반드시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 일치점을 찾기 위해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의 의미를 알아야 한다.

 

 

이것은 간단하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살아있고, 믿음이 행함으로 증거된다면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되는 행함을 기준으로 세우면 된다. 그렇다면 먼저 교회가 믿음과 상관없는 자로 여기는 교회 밖 사람의 행함은 제외해야 한다. 그들이 어떤 선함을 보여도 믿음과 관계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의 윤리와 도덕적 행함은 믿음이 아니다.

 

 

또한 교회에서의 의식적인 행함도 무조건 믿음으로 규정할 수 없다. 예배하고 기도한다고 해서 그들 모두를 일괄적으로 믿음이 있고 구원받은 자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교회가 말하는 행함은 믿음의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야고보의 행함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가 야고보의 말에서 간과하는 것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이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을 영혼 없는 죽은 몸에 빗대어 말한다. 그런데 행함이 없는 믿음에만 초점을 두면서 영혼 없는 몸의 죽음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을 선악과 사건으로 돌아가 생각해 보자.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몸, 즉 육신이 살아 있어도 실제로는 죽은 자다. 이것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에 해당한다. 영혼이 몸에 있다가 몸이 죽은 후에 떠난 상태가 아니라 애당초 영혼 없는 인간,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단절된 인간이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6:3)라는 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하나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사람의 몸은 영혼 없는 죽은 몸에 해당한다. 이것을 육신이 된 것으로 말한다. 이러한 인간이 영혼 없는 죽는 몸으로 하는 일은 자기를 위해 하는 것이 전부다. 자기를 위하여 선악과를 먹은 것이 죽은 자의 실상인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내로 삼은 것이 영혼 없는 죽은 몸의 일이다. 선악과를 먹은 죽은 자의 본질이 노아 때까지 변하지 않고 계속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이라는 유혹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명분은 무색해진다. 우리의 현실이 그러하다. 자신을 성도로, 하나님의 아들로 주장한다 해도 세상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그렇게 우리는 영혼 없는 죽은 몸으로 매일 자기를 위해 산다.

 

 

영혼 없는 죽은 몸으로 행하는 모든 것은 믿음의 행함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인간은 죽은 몸으로 자기 이름과 영광을 위해 힘쓰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믿음으로 행한다고 고집해도 성경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믿음을 행함으로 확인하고, 행함을 보이며 믿음에 우월함을 가지는 모든 것이 영혼 없는 죽은 몸들의 향락이다.

 

 

야고보는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예로 아브라함과 라합을 말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바치는 행함과,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하는 행함의 공통점은 우리가 알지 못하고 생각할 수 없는 행함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행함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며 교회 생활에 국한되어 있다. 비록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라 해도 아들을 제단에 바치는 행함이나, 자기 나라를 배신하고 첩자 노릇을 하는 라합의 행함을 믿음의 의로운 행함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아브라함과 라합이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으니 우리도 믿음으로 행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사탄이 심어준 죽은 믿음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아브라함과 라합의 행함을 의롭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사고방식에 맞지 않은 낯선 선언이다. 따라서 아브라함과 라합이 행함을 말하는 야고보의 의도는 이들의 본을 받아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야고보는 어린양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행함만 의로움이 됨을 말하는 것이다. 즉 예수님의 믿음이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알지 못한 낯선 행함과 믿음이다.

 

 

예수님의 행함은 우리의 행함을 행함이 아닌 것으로 부인하게 한다. 그렇게 행함이 없는 죽은 자로 십자가 앞에 나오게 하는 것이 믿음이다. 그리고 바울처럼 자신을 죄인 중의 괴수로 고백하게 하여 행함이 있는 믿음이 무엇인가를 증거하게 한다. 자기를 부인하게 하고 자기의 행함에 의의 가치를 두지 않게 하는 행함이 있는 믿음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받은 믿음이다.

 

 

 

성도는 예수님의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 그래서 예수님의 행함을 믿는 자가 성도이며 이 믿음이 행함 있는 믿음으로 인정된다. 나는 행함이 없는 자인데 예수님의 행함이 나의 행함이 되어 의롭게 되는 하나님의 방식이 은혜다. 영혼 없는 육신이 된 인간은 가치 있는 것을 생산하지 못한다. 예수님의 행함을 의로 믿는 믿음을 받은 그들이 성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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