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9 12:03

롬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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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8:28)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답은 성경에 있다. 따라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우리가 삶에서 겪는 일에 의문이 있다면 성경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자기가 답을 정해 놓고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분이시니 기도하면 모든 일을 해결해주신다는 것이다. 모든 일에 대한 답을 기도로 정해 놓고 하나님을 찾는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바울의 말로 자기의 답을 더욱 공고히 한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선악을 알게 된다. 하지만 자기를 위해 선악과를 먹은 인간이 알게 된 선악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다. 그래서 세상의 선악은 하나로 통일되지 않고 인간에 따라 나뉘게 된다. 이 사람에게는 선한 것이 저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 되어 결국 서로 자기의 선을 주장하면서 충돌하여 분열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정치 세계와 교회에서 발생하는 분열이 다 그러하다. 그래서 선악을 알게 된 인간은 악하고 생명나무 열매를 먹을 자격이 없기에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것이다.

 

 

우리에게 선은 내가 유지되는 것이다. 단순히 숨 쉬고 사는 것이 아니라 평안과 부요가 함께 하는 상태로 유지되는 것을 선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것을 사랑의 하나님이 행하시는 선한 일로 알기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바울의 말을 좋은 일 나쁜 일도 우리에게 선한 것, 즉 좋은 것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일이다. 그러니 오늘 나쁜 일이 있다고 해도 실망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하라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선을 이루시는 분은 당연히 하나님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이루시는 선이 우리가 원하는 선과 같은지가 문제다. 인간이 선악을 알게 된 이유로 에덴에서 추방된 것은 우리가 알고 있고 원하는 선은 선이 아님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선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삼하 16장에 보면 사울의 친족 시므이가 다윗과 신하들을 향하여 돌을 던지며 저주하자 다윗의 신하 아비새가 그의 머리를 베겠다고 한다. 하지만 다윗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버려두라고 하면서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삼하 16:12)라고 말한다.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를 하나님이 하신 일로 받아들인다. 자기를 저주하는 것에 분노하지만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에 참는 것이 아니라 저주받아 마땅한 자를 저주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일임을 안 것이다. 반면에 아비새는 다윗을 저주받아 마땅한 자가 아니라 왕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시므이의 저주에 분노하여 죽이고자 한 것이다.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한 것은 압살롬의 반역으로 왕의 권력을 잃어버린 다윗을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시므이의 저주는 힘을 추구하는 인간에게서 나오는 일이고 아비새가 시므이를 죽이고자 한 것도 자신을 저주받을 자로 여기지 않은 인간의 일이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을 저주받을 죄인으로 알고 저주를 하나님의 일로 받아들임으로 인간의 일과 다른 것을 보여준다. 인간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받아들여야 할 저주임을 안 것이다. 만약 다윗이 자신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인간의 관계를 생각했다면 아비새의 말을 듣고 시므이를 죽였을 수도 있다.

 

 

그러면 다윗이 생각한 여호와의 선은 무엇일까? 이것은 저주 때문에라는 말에서 드러난다. 저주가 당연함을 아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갚아 주시는 선은 저주를 덮어주시는 용서와 긍휼밖에 없다. 만약 다윗이 저주 때문에가 아니라 압살롬의 반역 때문에여호와의 선을 생각했다면 반역이라는 상황을 원만하게 해결해주시는 선을 원했을 것이다. 이것이 저주를 알지 못한 사람들이 원하는 하나님이 이루시는 선이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선은 저주에서 드러난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피 흘려 저주받으심으로 우리의 저주를 덮으시고 용서하신 언약의 완성이 하나님의 선이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라는 말은 저주로 연결하여 이해할 문제가 된다. 다윗의 저주 때문에가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하도록 모든 것을 합력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것에는 나의 공로와 자랑이 될 수 있는 것이 없다.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 모든 행함은 나의 공로와 자랑으로 연결되지 않으며 다만 죄를 드러내고 알게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인간의 죄인 됨을 드러내고 저주가 마땅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부르신 것은 하나님의 선을 그들에게 이루기 위함이다. 자기에게 이루어진 하나님의 선을 깨닫고 증거하고 자랑하는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부르신 것이다. 정리하자면 하나님의 선은 예수의 피로 이루어진 언약의 완성이고, 그것을 자기 백성에게 이루시어 완성의 세계인 십자가에서 예수만 높이고 자랑하게 하심으로 영광 받고자 하신 것이 하나님이 예정하신 뜻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자기 행복으로 이루어지기를 소원한다. 그것을 하나님의 선으로 생각한다. 저주가 인간의 자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 미련함으로 인한 사람의 일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통해서 죄를 알게 되고 저주를 자신의 본질로 보게 되는 새로운 안목을 가진다. 그리고 예수님이 피로 이루신 공로를 죄 가운데 있는 저주받은 자에게 갚아 주신 은혜에 감사한다. 그렇게 하나님의 일을 증거하게 되는 것이 되는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이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일에 좋지 않은 것은 없다. 비록 육신으로는 고통이고 어려움이라 해도 그 일에는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선으로 인해서 감사하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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