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07 12:08

눅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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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6:11)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예언이다. 따라서 성경은 인간의 지식으로는 알 수 없는 신비와 비밀의 세계다. 성령의 감동 없이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듣지도 못한다. 그런데 소위 성경 전문가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배우고 알고 있는 성경 지식으로 얼마든지 해석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특히 신학자와 목사가 이런 부류에 속한다. 예수도 알고 십자가도 안다고 자부하며 자기를 믿고 자기 해석을 믿는다. 하지만 이들의 성경 해석에는 중대한 오류가 하나 있다. 그것은 인간이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인간을 해석한다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성경이 해석하는 인간은 죄로 인해 심판을 받아야 하는 불의한 존재다. 이것은 윤리와 도덕을 바탕으로 하는 어떤 선행으로도 극복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이다. 그런데 성경이 해석하는 인간 됨을 모르기에 믿음을 불의에서 벗어나 선한 존재가 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 믿음이 윤리와 도덕의 옷을 입고 교회를 점령하고 있다.

 

 

하지만 믿음이 윤리와 도덕을 추구한다면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라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문자대로라면 불의한 재물에 충성한 자에게 참된 것으로 맡긴다라는 뜻이 되는데 분명 윤리와 부딪힌다. 믿는 자는 불의한 재물을 멀리해야 한다는 것이 윤리적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에 의문을 가지고 어떻게든 이해되는 해석을 하려고 힘쓰지만 결국 드러나는 것은 조작이다.

 

 

한 예가 불의한 재물을 옳지 않은 불의한 방법으로 번 돈이 아니라 세상의 재물로 해석하고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하나님을 위해 선한 일에 사용하는 자에게 참된 것을 맡기신다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재물 자체를 불의한 것으로 간주하고 비록 불의한 재물이라도 선하게 사용하는 것이 참된 믿음이라는 말을 만들어 낸다.

 

 

물론 불의한 재물이 불의한 방법으로 번 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직장을 다니고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은 정당한 재물이라는 뜻이 된다. 재물이 불의한 것과 불의하지 않은 것으로 나눠지는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선한 일에 사용해야 한다는 의식이다. 그러한 의식이 인간 됨을 알지 못하고 십자가로부터 멀어지는 저주의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의한 재물에 충성하라는 말씀은 불의한 청지기 이야기를 배경으로 한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이유로 쫓겨나게 된다. 그리고 자기 생존에 불안감을 느낀 청지기는 주인에게 빚진 자를 불러 증서를 조작한다. 청지기 직분을 빼앗긴 후에 도움받을 친구를 미리 사귀어 놓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물론 빚진 자들은 청지기를 돕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지금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에 증서 조작에 참여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책망과 함께 벌을 받아야 할 청지기를 오히려 지혜 있게 일하였다고 칭찬하신다. 이것이 마치 청지기의 불의한 일을 불의하지 않다고 하시고 불의를 선동하는 듯한 말씀으로 다가오기에 이해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불의한 청지기 이야기로 해석되는 인간 됨을 모르는 것에 있다.

 

 

주인의 소유를 낭비하는 청지기는 우리 자신으로 해석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를 내 마음대로 나의 생존을 위해 낭비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는 것을 나의 소유로 간주하는 것이 불의한 청지기와 같다. 여기서 윤리가 등장한다면 불의한 청지기처럼 하지 말라라는 말을 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혜 있게 하였다고 칭찬을 하신다.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낭비하는 죄를 지적받고 직분을 빼앗겼을 때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주인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다. 죄가 드러났음에도 계속 자기 생존을 위해 불의를 행한다. 이것은 선악과를 먹은 일로 하나님께 추궁을 받았을 때 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 아담은 여자에게, 여자는 뱀에게 책임 전가를 하는 인간성과 무관하지 않다. 죄를 인정하고 심판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사는 길을 택하는 것이 인간의 불의다.

 

 

그렇다면 청지기의 일을 지혜 있다고 하신 것은 불의한 자가 계속 불의를 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의 취지와 맞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빛의 아들들로 빗대어 말씀한 자들은 바리새인이고 그들은 자신의 선함으로 믿음을 드러내었고 구원에 이루고자 했다. 하지만 그것이 십자가 밖에 있는 심판이 되기에 불의한 자가 계속 불의를 드러내는 것을 지혜 있다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하신다. 애당초 재물은 불의한 것과 선한 것으로 나눌 수 없다. 재물은 재물일 뿐이다. 다만 주인의 소유로 인해서 청지기의 불의가 드러났다는 점에서 재물이 인간의 불의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불의한 자를 친구로 사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불의한 자로 보일 것을 염려하는 것이다. 즉 자신을 선한 자로 보이고 싶어 하는 인간성은 세상이 칭찬하는 선한 사람을 친구로 사귀려고 한다. 이러한 인간관계에 친구는 없다. 친구의 불의를 대신하여 죽음으로 우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할 참된 친구는 예수님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친구로 사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친구가 되어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불의한 인간이 불의한 자 그대로 예수님께 나오고 예수님이 받아주시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관계다. 따라서 불의한 인간이 자기의 불의를 생각하지 않고 선함으로 위장하여 예수를 찾는 것은 결코 친구로 사귀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불의한 재물이 의도하는 것은 인간의 불의를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불의한 재물에 충성하는 것은 성경이 해석하는 인간의 불의를 감추고 선함으로 영광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한 자 그대로 예수님께 나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참된 것이 맡겨진다 해도 그것을 도구로 자기를 자랑하지 않는다. 참된 것은 자신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며 불의한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은 불의밖에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온전히 맡겨진 참된 것만 자랑하는, 십자가만 자랑하는 그들이 불의의 재물에 충성하는 성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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