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22 11:29

시 1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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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126:5)

 

복잡하고 힘든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 신앙은 성경의 내용을 벗어나 단지 안정적인 심리적 상태를 얻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믿음의 의미와 내용은 사라지고 성경 구절을 통해서 심리적 안정을 얻는 역할로서의 신앙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어떤 성경 구절은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하는데 본문도 그중의 하나로 기독교인에게는 유명하다고 할 수 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수고 다음에 기쁨의 결실로 이어지는 내용은 그것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다. 어려운 현실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기쁨의 결과를 바라보라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특히 씨를 뿌리는 자를 말씀을 뿌리는 것으로 해석하면 전도를 강조하기에는 아주 그럴듯한 내용이 된다. 하지만 시편 저자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해석이다.

 

 

해석이 은혜롭다고 해서 옳은 것은 아니다. 은혜롭다는 것도 단지 감동적으로 다가온다는 표현이지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인한 은혜가 아니다. 성경 이야기에는 맥락이 있는데 이 맥락을 무시하고 눈에 들어오는 구절만 가지고 사람에게 교훈이 되는 내용으로 가르치려고 인용하기 때문에 저자의 의도에서 벗어나는 해석이 되는 것이다.

 

 

먼저 생각할 것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농부는 결실을 기대하는 희망으로 씨를 뿌린다. 비록 씨를 뿌리는 것이 고된 일이기는 하지만 씨가 자라고 열매를 맺어 먹을 것이 풍족하게 되는 때를 바라보며 힘을 내는 것이지 고되다는 이유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희망의 기쁨으로 씨를 뿌려서 기쁨으로 거두는 때를 생각한다. 즉 눈물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눈물을 흘리는 상황이 되게 하셨다는 뜻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유다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하신 상황부터 생각해야 한다.

 

 

1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고 시작한다. 유다가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사로잡혀가게 하셨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신 것이 본문의 배경이다.

 

 

그러면 포로에서 해방된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린다는 뜻일까? 기뻐서 흘리는 눈물도 있으니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씨를 뿌릴 때의 눈물이나 거둘 때의 기쁨은 고향으로 돌아와서 농사를 짓고 거두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기쁨을 말하는 것인가?

 

 

사람들은 하나님에게서 이러한 은혜를 구한다. 고난 가운데 있게 하신다 해도 결국 고난에서 건지시고 평안을 주시는 은혜의 하나님을 찾는다. 이것이 인간의 악함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에게 선한 방향으로 삶을 인도해주시기를 바라는 완악이다. 눈물을 흘리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시하고 자신의 가치만 절대화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성으로 주를 주로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죽인 것이다.

 

 

50:4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오며 유다 자손도 함께 돌아오되 그들이 울면서 그 길을 가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할 것이며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포로였던 유다를 돌려보내시는 길을 기쁨과 웃음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울면서 가는 눈물의 의미가 본문의 눈물과 연관이 있다.

 

 

하나님이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시는 일에는 바벨론의 멸망이 함께한다. 바벨론의 멸망은 이스라엘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라고 표현한다.

 

 

유다가 포로 된 것은 예루살렘에서의 열심과 믿음이 실패했음을 경험하게 한 사건이다. 그리고 포로로 사로잡혀 온 바벨론에서는 예루살렘에서 행했던 믿음의 일들이 전혀 없다. 성전도 언약궤도 자기 땅도 없는 상태에서 유다가 믿음의 행위로 여겼던 제사나 제물을 바치는 신앙 행위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유다 입장에서는 하나님과 연결 고리라고 할 수 있는 신앙 행위가 없는데도 하나님은 바벨론을 망하게 하시고 유다를 돌려보내시는 것이 된다. 결국 유다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옳다고 할 행함이 없이, 단지 실패만 있는 상황에서 바벨론의 멸망을 목격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한 것이다.

 

 

유다가 자기 것이 없이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했다면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져야 한다.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복 받는 것을 당연하게 알았다면 이제는 이방 나라 바벨론처럼 심판이 마땅하다는 시각으로 달라지는 것이다. 이것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은총의 사건을 경험한 신자다.

 

 

그리고 그 증거는 그들이 그 얼굴을 시온으로 향하여 그 길을 물으며 말하기를 너희는 오라 잊을 수 없는 영원한 언약으로 여호와와 연합하라 하리라”(50:5)라는 말에서 드러난다. 유다가 돌아가는 길이 유다의 힘이 아니라 영원한 언약에 위해 하나님과 연합한 결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포로로 잡혀갈 때도 돌아올 때도 영원한 언약이 그들에게 함께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돌아가는 길을 울면서 가는 이유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하나님의 언약이 아니라 자기 힘을 믿었던 것에 대한 애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언약으로 오신 예수를 믿는 신자는 반드시 이 눈물을 경험해야 한다. 자기 실패에서 나오는 눈물이 없는 믿음은 거짓이다. 이것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것이다.

 

 

자기를 위해 씨를 뿌리고 열매에 대한 기대가 모두 배제되어야 한다. 씨를 뿌리는 행위의 가치도 무너져야 한다. 무엇을 하든 자신을 실패자로 바라보는 것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것이다. 그리고 언약으로 오신 예수님의 행함이 이유가 되어 용서하시는 긍휼이 은총으로 베풀어짐을 믿어야 한다. 이것이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는 말의 의미다.

 

 

 

결국 기쁨은 자기 실패를 바라보는 눈물 속에서 거두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자를 자신의 실패가 드러나는 눈물의 길로 가게 하신다. 이것이 신자의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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