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04 11:46

마 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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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24:14)

 

기독교는 종말을 말한다. 세상에 끝이 있으며 그때가 되면 하늘로 가신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의미에서의 종말이다. 이러한 종말 개념에서 현재를 바라보면 종말은 아직 오지 않았다.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을 종말의 징조로 말하기는 하지만 지금의 현재는 아직 건재하다는 것 때문에 종말이 오지 않은 것으로 해석한다. 종말을 눈에 드러나는 현상과 시간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종말이 아직 오지 않았다면 성경이 증거하는 종말의 현상은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 예를 들어 요일 2:18절에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마지막 때는 끝, 즉 종말이다. 그리고 마지막 때의 현상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난 것이다. 시간적 의미가 아니라 적그리스도가 많이 일어나 미혹하는 상태가 마지막 때, 종말의 증거다. 그런 점에서 이천 년 전에도 지금에도 적그리스도가 일어나 다른 복음을 전파하며 미혹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마지막 때를 살고 있다. 이러한 종말을 시간 개념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사건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라는 말씀도 시간 개념으로 이해하면 의미가 왜곡된다. 선교 단체가 많이 주장하는 것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민족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복음이 전파되는 그때 종말이 온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을 듣지 못하는 민족이 없도록 아프리카 오지에까지 복음 전하는 것을 종말을 기다리는 신자의 중요한 사명으로 강조한다.

 

 

하지만 그렇게 해석하면 종말의 때는 결국 인간에게 달린 문제가 된다. 인간의 선교 열심에 따라 종말의 때가 결정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인간이 온 세상의 민족에게 복음을 전파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24:3절에 보면 세상 끝에 있을 징조에 대한 제자들의 물음에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라고 말씀한다.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나 사람을 미혹하는 것이 세상 끝에 있을 징조라면 우리는 세상 끝, 즉 종말의 때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종말을 미래에 닥칠 사건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현재를 종말의 상태로 바라봐야 한다.

 

 

예수님이 말씀한 천국 복음은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음을 증언한다. 즉 모든 민족에게 증언하는 천국 복음의 내용은 선악과를 먹고 죽은 자 된 인간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된 것이 예수님의 피의 사건, 즉 십자가다. 그리고 그제야 끝이 오리라는 말씀은 십자가에 죽으실 일을 의미한다. 종말의 기준은 예수님의 피고 누구도 예수님의 피가 아니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증언으로 온 세상에 전파된 십자가가 참된 종말로 드러난 것이다.

 

 

24:6절에서 아직 끝은 아니니라라고 말씀하는 것도 참된 끝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한 십자가 사건이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우리를 저주받은 자로 드러낸다. 저주가 당연하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우리를 저주에서 구원하신 사랑에 눈을 뜨게 하신다. 만약 십자가로 나타난 사랑을 외면한다면 그 사람은 저주에 속한 자로 이미 심판에 있기에 끝인 것이고 따라서 시간적인 미래의 종말은 의미가 없다.

 

 

벧전 4:17절에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라고 말한다.

 

 

심판을 하나님의 집에서 시작하신다. 하나님의 집에 있는 자들은 성도로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며 주의 공로를 자랑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집은 구원 받은 성도가 함께 하는 곳인데 여기에서 심판을 시작하신다면 하나님의 집에 있는 성도는 심판을 이미 받은 자라는 뜻이 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누구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믿음, 선함, 공로 모든 것을 동원한다 해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심판에서 살아남을 자는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집에 있는 사람은 심판을 극복하기 위해 힘쓰거나 믿고 구원받았음을 빙자해서 심판을 무시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넘어설 수 없는 심판의 엄중함을 자각하며 심판에서 건지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의 공로만 의지한다. 이처럼 인간의 모든 활동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십자가가 진정한 끝, 종말의 세계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자신이 저주에 속한 자임을 깨닫고 심판을 극복할 수 없는 절망의 상태에서 예수님의 피를 구원의 능력으로 믿게 된 성도는 성령으로 인해서 종말의 때에 등장하는 새 사람이다. 이러한 성도의 모임이 교회이며 이 교회를 종말론적 공동체라고 한다.

 

 

종말론적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시한부 종말론자들처럼 종말의 시간을 정하고 기다리지 않는다. 또한 막연하게 미래에 있을 사건으로만 생각하고 현재의 자신을 위해 예수를 찾는 교회와도 본질적으로 다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의 모든 일은 예수로 시작하여 예수로 끝난다. 이것을 깨닫고 죄인 된 인간이 행하는 모든 것에 가치를 두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증거하는 그들이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종말을 살아가는 종말론적 공동체인 교회다.

 

 

 

미래에 온다는 종말은 종교의 창작물이다. 세상의 마지막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마지막 때의 내막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마지막 때가 되면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지며 인간의 공로도 의도 남지 않는다. 이러한 종말이 예수님이 오심으로 세상에 온 것이다. 그래서 성도가 세상의 끝, 종말을 사는 것은 구원을 위해 열심히 믿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헛됨을 알고 예수의 피를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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